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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다한이야기/아이돌 인문학

빨리감기와 건너뛰기의 시대

by 홍차영차 2019. 4. 16.

개월 넷플릭스Netflix’ 경험할 기회가 있었다. 원하는 영화가 있다면 핸드폰이나 컴퓨터, TV 상관없이 원하는 디바이스에서 언제 어디서나 있다는 신박한 프로그램…… 그런데 달간의 무료시청기간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서비스를 끊어 버렸다. 달밖에 되지 않는 경험이었지만 점점 빨리감기건너뛰기 하지 않고 영화를 있는능력 잃어버리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실은 넷플릭스를 사용하기 전에도 이런 능력을 잃고 있었는데, 넷플릭스를 달간 이용하면서 사실을 실감하게 되었다는게 맞는 말인 같다. 이제 내가 역시 영화 편을 온전히 있는 방법은 영화관에 가거나 친구들과 함께 영화를 (공동체 상영)뿐이구나……

 

 

영화보는 것을 '능력'이라고 부르다니, 좀 오버하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 있다. 맞다. 불과 30~40년 전만해도 1~2km를 걸어다니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누구나 그럴 수 있었고, 그것을 특별한 능력이라고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레베카 솔닛(<걷기의 인문학>)부터 영화배우(<걷는 사람, 하정우>)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걷기를 예찬하고, 이를 넘어서, 걸어야 살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분명 걷기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능력'이 되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런데, 이런 비슷한 이야기를 더 근본적이고, 고고학적이고, 계보학적으로 먼저 이야기해 준 사람이 있다. 이반 일리치(1926~2002). 그는 웃고, 울고, 싸우고, 화해하고, 걷고, 삶 가운데 고통을 겪고 죽음의 의미를 짚어보는, 이렇게 현실에서 가장 사소한 요소로 여겨지지만 사실상 우리를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것들에 집중했던 사람이다. 우리는 지금 어떻게 걸어야 하고, 어떻게 화내야 하는지, 고통을 어떤 식으로 바라봐야 하는지, 친구와 어떻게 화해하는지를 잘 모르는 것 같다. 다시 말해서 21세기는 이러한 사소하면서 기본적인 인간적인 행위들이 '능력'이 되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지금 쓰고 있는 글쓰기 카테고리를 "아이돌 인문학"이라고 정했지만, 사실 여기에서 쓰고 싶은 것은 2000년생 전후 태어나는 세대의 배경이 되고 있는 여러가지 환경, 그리고 염려와 기대 속에서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내고 있는 일명 "신인류문명"에 대한 탐구이다. 공일오비가 "신인류의 사랑"이란 제목으로 노래를 부른 것이 1993년이니까, 사반세기가 지난 지금 다시 이 친구들을 "신인류"라고 부르는 것이 마땅하지 않을까. '세대'와 '시대'라는 말이 다르기는 하지만  2019년의 세대는 다른 말로 '빨리감기와 건너뛰기의 시대'라고 불러도 될 것 같다. "나는 넷플릭스도 모르고, 스마트폰도 잘 사용하지 않는데, 나랑은 상관없는 것 아닌가?" 그렇지 않다! 내가 사용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 시대의 대표적 은유는 시대를 살아가는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즉, 현재 넷플릭스를 사용하지 않는 세대라고 하더라도 혼자서만 이 새로운 시대적 은유를 벗어나서 살아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사소하지만 자본주의에서 무시되면서 잃어버렸던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면 좋겠다.

 

 

(가요톱텐에서 공일오비가 불러주는  "신인류의 탄생" ^^;;;)

 

 

2019. 4.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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