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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호메로스

이성logos의 시대에 신화는 왜 필요했을까

by 홍차영차 2018. 8. 22.

이성logos의 시대에 신화는 왜 필요했을까





분명 호메로스는 이전의 왕궁 중심의 뮈케네 문명과 다른 새로운 정치체인 폴리스polis가 형성되는 시점에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를 문자화했다. 그런데 호메로스는 왜 신화가 필요했을까?

지난주 ‘뮈토스mythos의 영웅에서 로고스logos의 영웅으로’란 말에서 언급했듯이, <일리아스>의 철학은 신화적 배경을 명확히 한다. 그래서 아킬레우스의 시대는 신과 인간이 함께 지내고, 인간이 황소에게 유혹당하기도 하고(미노타우로스), 반인반수의 존재들(켄타우로스)에 대해서 아무런 의문도 제기되지 않았던 시대, 신화의 시대였다.



이제 시대가 바뀌었다. 뮈토스에 대해 사람들은 의심을 갖게 되었고, 이제 사람들의 마음은 보이지 않고 의심은 삶의 필수품이 되었다. 영웅의 이상향도 완전히 바뀌어 힘과 용기로 대변되는 아이아스가 아니라 언변이 뛰어난 로고스의 영웅 오뒷세우스가 아킬레우스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왜 이런 시대에도 신화가 다시 필요했을까. 어떻게 신화는 여전히 호메로스의 <오뒷세우스>에서 핵심적인 부분을 차지할 수 있었을까?

<오뒷세이아>의 이야기를 크게 세 부분으로 보면, 텔레마키아(사실)-오뒷세이아의 모험(신화)-복수(사실)로 나눠져 있다. 구조상으로 사실과 사실을 잇는 중간 부분에 환상적이고 이성(logos)으로는 믿을 수 없는 ‘신화적’ 이야기가 가득차 있다. 구체적인 내용을 보더라도 <일리아스>보다 더 비이성적으로 보이는 환타지에 가깝다. 신을 의심하고, 인간들도 서로 믿지 못하는 시대에 사람들은 키르케와 칼륍소의 마법,스퀼라와 카륍디스, 세이렌의 노래, 아이올로스 섬과 파이아케스족을 믿을 수 있었을까.

새로운 시대는 그냥 오지 않는다. 또한 안다는 사실만으로 예전의 행위방식을 바꾸기는 어렵다. 안다고 해서 믿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이유를 가지고 신화가 위치하는 것이 아닐까?

신화는 흔히 비합리적, 비역사적, 비논리적이라고 하면서 근대인들에게 무시당했다. 사람들은 이제 합리와 이성의 산물인 과학의 논리와 다른 것들에 대해서는 더 이상 손톱만큼의 공간도 내주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삶을 살아가다보면 우리는 모순과 부조리한 사건들을 끊임없이 마주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성적, 과학적 사고는 이 모순을 품어낼 방법을 갖고 있지 못하다.

신화는 과학의 논리와 다른 ‘비합리의 논리’를 가지고 있다. 신화는 이 비합리의 논리를 가지고 현실에서 불가능한 모순을 품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한다. 이런 면에서 신화는 인류 최고의 철학이라고 혹은 인류 최초의 철학이라고 말할 수 있다.(레비스트로스) 이성적 사고로는 전혀 연결시킬 수 없는 대립적인 사항들을 신화는 손쉽게 해치운다. 특히나 이런 것들을 경험한 목격자가 있다면 신화의 힘은 더욱 커진다.

우리는 신화와 과학을 발전단계로서가 아니라 사물(세상)을 이해하는 두 개의 서로 다른 태도로 파악해야 한다. 신화와 과학은 함께 병존할 수 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여전히 예술 활동과 일종의 지적 활동(시)에서 이런 비합리의 논리를 발견할 수 있다.

아킬레우스에서 오뒷세우스로, 뮈토스에서 로고스의 시대로 세상이 바뀌었음을 안다고 해서 각자의 삶의 방식이 바뀌지 않는다. 이것들은 삶의 현장에, 구체성의 현장에 나오는 이야기들과 엮어질 필요가 있다. <오뒷세이아>의 시대에 호메로스는 여전히 뭐토스적 사고가 필요함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2018. 08.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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