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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마을학교, 배우는 게 있기나 해?

by 홍차영차 2017. 1. 26.

*이 글은 열일곱인생학교와 파지스쿨이 함께 한 2차 마을교육포럼(2017.1.21)의 발제글입니다. 


마을학교, 배우는 게 있기나 해?

파지스쿨, 뿔옹

 

 



영어와 수학이 아니라 맹자와 일리치

2014년 개교를 앞두고 모였던 첫 간담회에서 많은 분들은 파지스쿨 커리큘럼을 보고 ‘파지국제학교’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학교 밖 청소년/청년들이 이렇게 하드한 프로그램에 흥미를 가질 수 있을까. 좀 더 직접적으로 말해 본다면 이렇게 어려운 텍스트를 읽을 필요가 있을까라는 질문.

그런데 이 질문들은 그리 낯설지 않다. 왜냐하면 문탁에서 공부하면서 들었어왔던 질문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문탁에서는 마르크스, 스피노자, 일리치, 논어와 같은 실생활과 별반 상관없어 보이는 어려운 텍스트를 읽는다. 파지스쿨 역시 있어(?) 보이는 텍스트를 읽고, 시간과 돈이 되는 사람에게나  가능한 학교처럼 보이는 것 같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런 책읽기, 고전 읽기를 선택했을까.

 


파지스쿨 사용설명서

왜 주 2회/4블럭, 고전읽기인가? 특별한 이유는 없다. 문탁네트워크라는 공동체에서 우리들이 할 수 있는 배움의 형태를 고안했을 뿐이다. 현재 주 2회(화/목), 4과목(인문/고전/글쓰기/N프로젝트)이지만 이는 고정된 형식이 아니다. 필요하다고 생각되고, 공동체가 감당할 수 있다면 이는 3일, 3과목으로 바뀔수도 있다. 하지만 파지스쿨에는 분명 ‘특정 나이’의 아이들이 ‘의무적’으로 ‘매일 매일’ 출석해야하는 학교형태에 대한 물음이 들어 있다.

기본적으로 파지스쿨은 ‘인문학’을 공부하는 학교이다. ‘과목’이라고 했지만 맹자와 일리치, 글쓰기는 과목이 아니다. 인문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읽고, 쓰고, 낭송하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삶에 질문을 던질 수 있는가이다. 또한 이는 파지스쿨러만이 아니라 마을교사들에게도 동일하게 해당된다. 한 마디로 정의한다면 파지스쿨은 ‘청소년판 문탁’이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더 많은 지식이나, 좀 더 영리한 친구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아무런 질문 없이 살아 온 인생에 스스로 질문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고, 여기서 텍스트는  공동체에서 만나는 많은 마주침 중 하나의 계기가 될 뿐이다.

읽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인문 테스트를 읽을 때 파지스쿨러들은 이게 한글인지 외국어인지 모르겠다고 한탄한다. 읽을 수 있지만 읽을 수 없다고. 우리가 배우고자 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삶이란 주어졌다고 그냥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읽는다는 것은 외국인과 대화하는 것과 같다. 세심하게 들여다보고, 그 말이 어떤 말이지 해석해 내야 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다양한 방식의 읽기를 시도한다. 기본적으로 한 사람이 돌아가면서 발제(發題)의 형식으로 수업을 진행한다. 하지만 이는 매년 파지스쿨에 접속하는 친구들에 따라 바뀐다. 각자의 질문이 담긴 메모를 작성하기도 하고, 텍스트를 그대로 필사하기도 한다. 

읽기와 쓰기는 하나다. 쓴다는 것은 자신의 언어로 말하는 것이기에 잘 읽지 못하면 쓸 수 없다. 이것이 에세이를 쓰면서 공부를 마무리 하고, 이외에 텍스트를 몸에 새길 수 있는 다양한 방식을 고안하려는 이유이다. 아이들 각자가 스스로 문제를 만들어 시험을 보기도 하고, 파지스쿨러 모두가 함께 텍스트를 낭송하는 방식으로 공부를 마무리하기도 했다. 3기 소리는 루쉰의 산문 하나를 통째로 낭송하면서 루쉰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좀 더 이해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N프로젝트에서는 빵을 굽고, 포스터를 만들고, 목공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체험 프로그램이 아니다. N프로젝트는 일상과 공부를 분리하지 않고, 현재의 삶을 살아보겠다는 하나의 실험이다. 그리고 이는 자신의 욕망에 따라 스스로 결정하고 실험하고 마무리하면서, 자신이 고안한  삶의 방식으로 살아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법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법을 배운다

자신의 삶에 질문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학교’에서 배우는 것은 어떻게 하면 주어진 규칙(법, 기준)을 따라 잘 살 수 있을까이다. 하지만 살아가다보면 주어진 것은 아무것도 없고, 스스로 삶을 만들어 가야 한다. 그렇다면 질문해야 하지 않을까.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지. 국어/영어/수학/과학을 배우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사는 법’을 공동체 속에서 보고, 몸으로 경험하고, 배우는 것이다.

그런데 파지스쿨러들은 정말 뭔가를 배웠을까. 2기 도혜는 어렸을 때부터 대안학교를 다녔던 친구였다. 훌륭하신 부모님 밑에서 자라다 보니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의 말에 토를 단 적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도혜는 하고 싶은 것이 그다지 없다고 했고, 파지스쿨을 다닐 때에도 불안함에 못이겨 이것 저것을 배우러 다녔었다. 마지막 졸업 1~2개월을 앞두고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말했지만, 지금은 춤추는 자신이 제일 좋다고, 춤추면서 살고 싶다며 춤을 배우고 있다. 그리고 효를 주제로 썼던 도혜의 고전 에세이 제목은 “부모를 어기는 것”이었다.

돌이켜 보면 아이들의 욕망에 따라 검정고시를 함께 준비하기도 했지만, 무엇을 배웠는지에 대해 확실히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배운 것이 있다면  그저 이곳에서 우리들과의 인연을 만들었고, 삶이란 끊임없는 공부의 과정이라는 것 정도가 아닐까. 여기서 공부란 자신의 삶에 돌이킬 수 없는 변화를 만들어 내는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이 공부는 홀로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배우지 않았을까.



세상에 하나뿐인 작은 학교, 파지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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