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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스

‘상품’은 차이의 무시에서 나타난다 (1,2장)

by 홍차영차 2016. 3. 19.

‘상품’은 차이의 무시에서 나타난다

- <<자본론>>, 1장 상품 -



keywords :  상품commodity, 사용가치, 교환가치, (상품)가치, 가치형태, 유용노동useful work, 추상노동abstract work, 사회적 평균노동, 물신fetishism



자명한 일은 동시에 너무나 놀라운 일이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비판을 시작하자 마자 ‘상품분석’으로 곧바로 들어간다.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담론을 이야기 하는데, 그 시작이 의복, 컴퓨터, 자동차, 밀, 금과 같은 상품이라니. 마르크스는 어째서 자본주의의 원리나 구조가 아니라 자본주의 세상의 땅바닥에서 굴러다니는 것으로 보이는 ‘상품’ 분석부터 시작했을까? 왜냐하면 그가 보기에 자본론의 핵심을 품고 있는 것이 바로 ‘상품 그 자체’에 있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의 문제의식은 누구나 답을 알고 있는 질문처럼 보인다. 즉 어떻게 질적으로 다른 상품A(아마포)와 상품B(저고리)가 교환될 수 있을까라는 너무나 자명한 그래서 그렇게 질문했단는 것 자체가 너무나 놀라운 질문.

그렇다! 어떻게 서로 다른 질을 가지고 있고, 서로 다른 고유한 유용노동으로 만들어지는 물건이 서로 교환될 수 있느냐는 말이다. 마르크스가 1장에서 말했듯이 지금까지의 역사에서 모든 노동생산물은 분명히 개개인과 사회에게 유용성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지금처럼 단일한 화폐와 물건이 교환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 적은 없었다. 질문은 여기서 시작된다.



물건에서 상품으로

화폐를 일상으로 사용하고 있는 현재에서 보면 이런 질문은 논쟁할 필요가 없는 자명한 것이다. 상품 자체에 그만큼의 ‘가치’가 들어 있기 때문에 그만큼의 화폐를 지불할 뿐이라고 대답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물건에는 사용가치와 교환가치가 있고, 사람들이 더 유용하다고 생각하는 물건에, 즉 희소성의 원리에 의해서 가치가 정해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물건이 상품이 될 있게 만드는 부분’에 대해서 너무나 소홀히 생각했던 것 같고, ‘물건’과 ‘상품’을 같은 것으로 생각해 왔다. 그리고 그 둘 사이에 있었던 거대한 간극을 무시했던 것 같다.

물신이라고 1장의 마지막절에 나오지만 현재 우리는 물건 자체에 교환의 속성이, 가치가 붙어 있다고 생각한다. 상품의 가치형태는 물건들과의 관계만 드러날 뿐, 그 물건들의 관계 뒤에 숨어 있는 사회적인 관계들을 볼 수가 없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마르크스는 바로 상품이 보여주는 가치형태가 이런 일을 가능하게 만든다고 말한다.

쉽게 말해서, 20미터의 아마포=1개의 저고리라는 교환이 가능한 것은 아마포와 저고리 사이에 존재하는 모든 차이들을 무시하고 배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분명히 아마포를 만드는 직포(유용노동)와 저고리를 만드는 재봉(유용노동)은 완전히 다른 노동형태이다. 그렇지만 이 두 상품이 교환될 수 있다는 점에서, 즉 아마포=저고리라는 가치형태를 거치게 되면 두 물건 사이의 차이점들과 독특성들은 사라지고 오로지 추상적 인간노동이라는 일반적 노동형태만 남게 된다. 각자의 유용노동이 가지고 있었던 차이들이 사라진다. 여기서부터는 쉽다. 이제 아마포와 저고리는 그 고유성을 잃어버렸기에 둘 사이의 크기(가치량)만을 고려하면 된다. 다시 말해 아마포를 만드는 데 소요된 노동시간과 저고리를 만드는데 만드는 응고된 노동시간의 비율을 살펴보면 된다.

이렇게 보니, 상품이라는 단순한 가치형태는 자본주의가 돌아가는 핵심적인 구동원리를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차이’를 무시하면서 노동시간이라는 ‘동일성’으로 환원시키는 것. 물건이 상품이 되는 것은 그 물건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 생산자의 특이성을 모두 무시할 때 가능한 일이다. 바로 이런 작용이 가치형태에 배태되어 있다는 것이고, 이런 가치형태의 발전을 통해서 화폐형태가 발생하게 된다. 그렇기에 아마포와 저고리의 단순한 가치 교환이 화폐형태의 맹아를 품고 있다는 말이다. 이는 사실 매우 간단해 보이지만, 이 뒤에는 많은 가정과 배제가 있는 것 같다. 상품 분석에서는 쉽게 넘어갔지만, 사실 인간 평균적인 노동이라는 개념부터가 무수한 차이들을 무시해 버리는 가정이다.


경제적이며, 정치적이며, 도덕적으로 <<자본론>> 읽기

파지스쿨에서 혹은 다른 청소년프로그램에서 마을교사를 하면서 친구들과 자주 나누었던 이야기는 바로 자기 자신의 삶을 스스로 만들어 나갈 수 있는 인간이 되는 것에 대해서다. 하지만 성적이라는 한 가지 기준으로 줄 세워진 학교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학교 밖으로 나온다 한들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이런 면에서 마르크스의 상품 분석은 이런 상황에 대한 가장 원초적인 이유를 잘 보여주고 있는 듯 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매일 매일 상품들의 교환 속에서 살아간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매일 매일 이루어지는 교환에서 알게 모르게 이런 환상-가치는 물건 자체의 속성이다-을 사실이라고, 원래부터 그런 것이라는 사고가 형성되고 있다. 태어날 때부터 죽는 그 순간까지 교환이라는 가치형태를 한 번도 떠나 본 적이 없는 사람이 앞서 말했던 스스로의 삶의 예술적으로 만들어가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상상해볼 수 있을까?

이렇기에 <<자본론>>을 읽는다는 것은 경제를 이해하는 작업이면서, 정치적이고, 도덕적일 수밖에 없다. 상품의 교환을 넘어설 수 있는 관계가 개인들 사이에, 물건들 사이에서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그 어떤 이상적인 정치구조도 도덕적 이상도 현실에서는 작동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생각해서 그런 관계를 무너뜨릴 수 있는 증여와 선물의 관계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의외로 쉽게 마르크스가 말했던 자유인들의 연합체가 가능하지 않을까?


2016. 03.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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