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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거저먹는 글쓰기는 없을까?

by 홍차영차 2018. 9. 19.

2018 파지스쿨 시즌 2 - 글쓰기세미나 후기






파지스쿨에서 '글쓰기세미나'를 준비하는 것은 '철학읽기'를 준비하는 것과 많이 다르다고 생각했다.

'철학읽기'를 준비할 때는 미리 책을 읽고, 개념을 정리하고, 어떤 맥락에서 읽어야하는지를 고민한다.

그리고 세미나에서는 발제의 내용을 중심으로 토론한다. 이렇게 하면 될 것 같다는 느낌적인 느낌(?)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글쓰기세미나'는 어떻게 준비해야할지 막막했다. 시즌2는 그냥 글쓰기도 아니고 사회학적 글쓰기라니. ㅎㅎ

이 시간이 글쓰기의 테크닉을 가리키는 시간인지, 아니면 뭔가를 많이 쓰도록 격려하는 시간인지....헷갈리기도 했다.


한편으로 나는 파지스쿨의 '글쓰기세미나'를 너무 만만하게, 거저먹는 시간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기도 하다. -.-;;;

시즌 1에서는 1시간 글을 쓰고, 쓴 글을 서로 합평하면서 진행하면 되니 내가 (준비) 할 것은 없지 않을까라는 순진한 생각.

시즌 2에서는 사회학적 글쓰기를 하기로 했으니, 내가 따로 텍스트를 준비할 필요도 없고

'글쓰기 주제 - 자료 모음 - 탐구 - 글쓰기'의 모든 것을 파지스쿨러들이 할 것이라면 생각하면서

"오~ 시즌2 글쓰기시간은 거저 먹겠는데"라는 안이한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맞다. 시즌2 글쓰기는 "사회학적 글쓰기"라는 주제를 가지고 진행했다.

12번의 글쓰기시간 전체를 파지스쿨러 각자가 스스로 이끌어가야했다는 점은 예상과 같았다.

달랐던 점은 이런 글쓰기에 대한 부담이 파지스쿨러들에게 너무 컸고,

또한 파지스쿨러들이 스스로 만들어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생각보다 마~~~~이 어려웠다는 점.  ^^;;;;


사회학적 상상력이란 한 관점에서 다른 관점으로, 즉 정치적인 것에서 심리적인 것으로...... 신학교에서 군부대로 시선을 옮기는 능력이다. ...... 이러한 상상력의 발휘 이면에는 그 사회와 시대에 자신만의 특징과 본성으로 살고 있는 개인의 사회적/역사적 의미를 알고자 하는 충동이 있다. 사람들은 이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으며 사회 안에서 개인의 일생과 역사가 교차되는 조그만 점인 자신 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이해하고자 할 때 사회학적 상상력을 쓴다." (C.라이트 밀즈, <사회학적 상상력>)


        

  



이번 시즌에는 3명이나(재현, 지영, 단하) 되는 친구들이 새롭게 합류했다.

글쓰기도 어려운데, '사회학적 글쓰기'라니. 첫시간부터 모든 파지스쿨러들은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다.

사실 튜터가 이번 시즌에 한 일은 거의 없는 것 같기도 하다.

일정을 확인하고, 매시간마다 일주일동안 탐구했던 연구자료들을 함께 리뷰하고, 글쓰기의 방향을 함께 토론하는 정도.

실제로 주제를 정하고, 자료를 조사하고, 탐구하고, 책과 동여상을 보고, 인터뷰를 하고, 설문을 하고,

글을 썼던 것은 내가 아니라 파지스쿨러들이었으니까. ㅎㅎㅎ


하지만 생각보다 '스스로 생각해서 행동하는 것'이 쉽지 않았던 것 같다. (사실 이건 누구도 쉽지 않다.)

채식, 아이돌, 미디어정치, 여성의 몸과 같은 글쓰기 주제를 찾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이를 자신의 개인적인 시선/경험과 사회적/역사적 의미와 연결시킨다는 것이 뭔지를 상상하는 것은 더더욱 어려웠던 것 같다.

이런 어려움은 아이들에게 신체적으로 드러났다.

3~4주차가 지날 때쯤에 파지스쿨러들의 얼굴은 반쪽이 되어갔고,

그냥 수학문제를 풀거나, 개념을 조사하는 것과 달리 '사회학적 글쓰기'를 어떻게 해야할지는 '일주일 내내' 그들을 괴롭혔(던 것 같)다. -.-;;;;;


정확이 이것때문이라고 할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시즌 2에 합류했던 지영이와 재현이가 이때쯤 파지스쿨을 그만두게 되었다. 

그리고 시즌1부터 함께 했던 대로도 마무리 발표까지 가지 못하고 파지스쿨을 그만두었다. 

뭐가 잘못된 거지? 너무 어려웠나? 내가 너무 심하게 몰아부쳤던 걸까? 나는 왜 어른들보다 파지스쿨러들에게 더 엄격하지?

조금 더 신경써서 세밀하게 챙겼어야 했나? 아직은 스스로 사회학적 글쓰기를 하라고 하는 것은 무리였나. 더 쉽게 가야 하나? 정말 쉽게 가면 되나?

그야말로 몇주동안 진달래샘과 함께 우울모드 가운데 여러가지 이야기를 다시 점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번 사태는 나름 파지스쿨의 정체성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는 기회가 되었다.)


글쓰기란 자신의 언어를 발명하는 것이고, 삶의 문턱을 넘는 것이라는 말이 다시 떠올랐다.

우여곡절 끝에 초희, 수아, 새은 세 친구들이 팬덤, 아이돌, 여성의 브래지어란 주제로 글쓰기를 마쳤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힘들었고 고단한 작업이었을텐데 항상 예상을 넘어서 노력해준 이 친구들에게 많이 감동했다.






참, 이 세 친구 이외에 단하를 빼놓을 수 없다.

단하는 시즌 2에 새롭게 참여했는데, 낯설은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친구였다.

본인이 거의 글을 쓰지는 못했지만, 2시간이나 되는 글쓰기 시간에 자리를 지키는 것으로 나름의 공부를 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글쓰기 마지막 시간에 하나의 글쓰기를 완성해 왔다. ^^

작은 연습장에 쓴 글이었지만 또박또박 3장에 걸쳐서 자신의 삶을 스케치해왔다. 

다른 친구들과 함께 나누지는 못했지만, 단하 역시 다른 세 친구처럼 시즌2에서 작은 문턱 하나를 넘어선 것 같다.

마지막 발표회장에도 아주 잠깐이었지만  자기 자리를 지켜주었다.


조금은 높은 파도였을지 모르는 '사회학적 글쓰기'를 넘어갔으니, 시즌3는 좀 더 수월하게 넘을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모두 고맙고, 시즌3도 즐겨봅시다.

"고맙다...친구들아!"


2018. 09.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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