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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소크라테스

[그리스철학] 우정의 철학자, 소크라테스

by 홍차영차 2014. 11. 18.

우정의 철학자, 소크라테스

소크라테스의 죽음과 철학자의 삶 (4)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저작을 하나도 남기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철학자로서의 불멸의 명성을 가지고 있다. 다들 알다시피 그의 제자였던 플라톤의 대화편이 아니었다면 소크라테스는 지금까지 철학자의 원형으로 기억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유일하게 소크라테스를 만날 수 있는 대화편들이 모순점을 보여준다면 어떻게 될까? 이런 이유에서 다른 텍스트들과 모순점을 보여주는 <크리톤>의 주장을 살펴보는 것은 소크라테스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서로 다른 모습의 소크라테스 동상

 

1. 두 명의 소크라테스

   표면적으로 보면 <변론>은 국가에 맞선 개인의 주장이 담긴 책이고, <크리톤>은 국가 혹은 법에 대한 절대적 복종을 수사학적으로 제시한 책이다. 다시 말해 <변론>에 나타난 소크라테스는 일평생동안 무지의 지혜를 전하면서 아테네와 갈등을 빚게 되어 결국은 사형선고를 받았다. 반면 <크리톤>에 나타난 소크라테스는 법률을 의인화하여 법률의 결정을 무시한다면 국가가 존속할 수 없다고 말하면서 체제에 순응하는 듯하다. 간략히 설명해보면 <변론>에서 나타나는 소크라테스와 <크리톤>의 소크라테스가 서로 충돌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바로 여기서 <크리톤>을 읽는데 문제가 생긴다. 우리는 어떤 소크라테스를 진짜 소크라테스로 바라봐야할까?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처럼 자신의 목숨을 바치면서까지 법률 체계의 결정을 지킨 훌륭한 시민으로서의 소크라테스 아니면 훌륭한 사람으로서 살기 위해 아테네의 법정에서 추방이 아닌 사형의 결과를 촉구한 소크라테스일까?

   <크리톤>에 대한 일반적인 해석을 살펴보면, 법체계를 의인화하여 말하는 순응적인 소크라테스의 주장을 소크라테스의 본질적인 견해로 해석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즉 법을 대신한 그의 발언은 아테네 민주주의의 기만적인 수사법을 희화화한 것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소크라테스는 일생동안 수많은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그들에게 일관성 없음을 폭로했고, ‘무지의 무지를 가장 중요한 앎으로 살아온 사람이었다. 만약 <크리톤>의 소크라테스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다른 곳에서 보인 자신의 모습과 서로 모순될 수밖에 없고 이것은 소크라테스 삶의 신뢰성이 흔들리는 문제가 된다.

   <크리톤> 해석에 대한 혼란은 점점 더 커지는 것 같다. 왜냐하면 우리가 수사학의 희화화라는 주장에 동의한다면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오랜 친구인 크리톤의 심리를 수사학적으로 조작하는 진짜 소피스트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크리톤>을 어떻게 바라봐야 소크라테스가 삶의 끝에서 지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자기모순을 만들지 않았다고 할 수 있을까?


독배를 받는 소크라테스


2. ~래된 친구, 크리톤

   여기서 우리는 <크리톤>을 철학적인 충돌 혹은 수사학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희화화로 보는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자신과 함께한 크리톤을 이해하면서 그가 선 곳에서 자신을 이해할 수 있도록 우정으로 다가가는 소크라테스를 살펴보려고 한다.

   <크리톤>의 대화가 이루어진 시기는 대략 소크라테스의 재판이 있은 지 1개월 후이다. 시간적으로 보면 소크라테스 사형은 집행되어야 했지만 델로스로 향한 배가 늦게 도착하게 되어 이제야 그의 판결이 진행될 예정이다.

   크리톤에 대해 좀 더 알아보자. 그는 소크라테스와 거의 같은 나이로 같은 부락(demos)에서 자라온 사이로 오랜 기간 동안 친구로 지내왔다. 그는 <변론>에서 소크라테스가 법정에서 자신이 물 수 있는 벌금의 한계를 1므나로 말하기가 무섭게, 30므나의 벌금을 제의할 정도로 부유한 농부였다. 또한 <파이돈> 편에 보면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마시던 날 크리톤은 함께 아들이 함께 있었던 것으로 언급되고 있다.

   대화편을 보면 그는 소크라테스에 대해서 항상 헌신적이었고 늘 가까이 지냈으나, 철학적으로는 소크라테스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사형 집행이 되기 전에 그를 찾아와 탈출을 제안하고 강권했다는 것 자체가 그 증거이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삶을 통해서 자신의 철학을 보여주고 있는데 마지막에 가서 이제까지 그가 말해온 것은 모두 뒤집으라니. 오랜 시간 같이 있었지만 크리톤은 소크라테스의 철학을 이해할 수 없었다.


영화 '언터쳐블 : 1%의 우정' 한 장면

 

3. 논리가 아니라 사람이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철학을 이해하지 못하는 크리톤을 위해 다른 방법을 선택한다. 마치 아테네의 귀족인 알키비아데스로 하여금 자기 배려의 뜻을 이해시키기 위해 그가 가장 관심을 갖고 있는 유능한 정치가라는 소재로 이야기했던 것처럼. 소크라테스는 사람들의 평판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크리톤이 서 있는 곳에서 마지막으로 대화를 시작한다. 전통적인 가치관의 관점을 가지고.

   바로 앞에서 언급했듯이 소크라테스는 언제나 상대방의 위치에서 대화하기를 시도하는 사람이었다. <변론>에서 말한 것처럼 소크라테스는 정치인, 시인, 장인들과 이야기했을 때, 먼저 그들의 입장에서 이해하려고 했다. 그는 철학으로 시작한 것이 아니라 정치가 무엇인지, 그들이 지은 시가 무엇을 뜻하는지, 장인의 기술에 관해서부터 대화를 시작했다. 산파술이라는 것은 어쩌면 소크라테스에게 있어서 특별한 기술이 아니었다. 소크라테스는 대화하는 상대방으로 하여금 자신의 삶을 바라볼 수 있도록, 즉 성찰을 추구한 것뿐이다. 소크라테스에게 있어서 진짜 중요한 것은 대화에서의 어떤 논리성이 아니라 말하는 사람그 자체였다. 이런 이유로 소크라테스의 대화법은 해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질문을 던져서 상대방으로 하여금 말하게 하는 것이었다.

   이런 방식으로 생각해본다면 소크라테스가 크리톤에서 날카로운 질문이 아니라 수사학을 이용하여 다가간 이유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수 십 년 동안 함께 생활하면서도 자신의 철학을 이해하지 못했던 크리톤과 대화하기 위해서 소크라테스는 죽음을 앞두고 다른 방식으로 다가간 것이다. 이 마지막 대화를 통해서 크리톤은 소크라테스가 탈옥을 거부하는 이유를 이해하게 되었고, 소크라테스 역시 사형선고를 받아들이면서 마지막으로 아테네를 위한 최후의 시민 불복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소크라테스는 철학의 개념이 없던 시기에 철학하기를 발명하였다. 하지만 철학의 발명은 자신의 지적인 만족이나 과시가 아니라 삶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다. 그의 대화법인 산파술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런 면에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각자의 삶에서도 우리는 자신의 위치만을 고집하지 말고 마지막 날의 소크라테스처럼 우정으로 끊임없는 진짜 대화를 계속해서 시도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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