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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플라톤

동굴의 비유로 바라보는 배움 - 1

by 홍차영차 2014. 5. 2.

동굴의 비유로 바라보는 철학함 혹은 배움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는 인간에게 자유와 계몽을 줄 수 있는 능력이 철학에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동굴의 비유 속에 나오는 상승과 하강과정을 통해 좋음의 형상을 아는 자(철학자)가 무지한 자를 이끌어가야 한다는 계몽주의를 설명하기에 적합한 비유로 자주 인용되곤 한다. 계몽주의는 구시대적이라는 생각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현실에서 동굴의 비유는 폐기되어야 하는 이야기에 불과한 것일까? 여기서는 하이데거의 비은폐성(alētheia)’ 개념을 통해 너무나 많이 파헤쳐져서 이제는 한 조각의 보물도 남아 있지 않을 것 같은 동굴의 비유에 여전히 논의할 부분들이 많다는 사실과 그 중에서도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철학함 혹은 배움은 어떤 것인지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에게 배움의 필요성은 동굴의 비유에서 그동안 강조되었던 단계적인 앎의 과정보다는 고개를 돌리고 움직이는첫 번째 과정에 있음을 되새기고 싶다. 왜냐하면 벽 속의 비친 것(그림자)이 어떤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벽 속으로 더 깊숙이 걸어가거나, 그 그림자의 원천을 파악하기 우해서 밖으로 나가든지 우선은 움직이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1. 동굴 비유 개요

  플라톤의 <국가>에서 동굴의 비유는 왜 철학자가 나라를 다스려야 하는지에 대해 답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세 가지 비유 중 하나이다. 이에 대한 소크라테스 대답에서 핵심이 되는 것은 철학자들이 좋음()의 이데아를 아는 자들이라는 것이고, 어느 누구도 좋음을 알기 전에는 정의(正義)와 아름다움을 충분히 알 수 없다는 것이다.(507a) 소크라테스는 좋음의 이데아가 무엇인지를 알려달라는 글라우콘의 요청을 받는다. 하지는 그는 자신이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고 하면서, 좋음의 이데아를 닮은 것으로써 처음으로 태양의 비유를 말해준다. 태양이 가시(可視)적인 세계에 빛을 비추면서 시각으로 하여금 볼 수 있게 해 주듯이, 좋음의 형상이 가지(可知)적인 세계를 비추면서 인식하는 자에게 힘(dynamis)을 주어 알 수 있게 해 준다고 설명해준다.(508a) 그리고 나서 그는 선분 비유[각주:1]에 이어서 마지막으로 동굴의 비유를 통해서 좀 더 실감 있는 설명을 하게 된다.


 

그림 1. 동굴의 비유 


  동굴의 비유 첫 단계는 커다랗고 깊숙한 동굴 안에 있는 죄수의 상황에서 출발한다. 동굴 속의 죄수들은 태어날 때부터 다리와 목이 쇠사슬에 묶여져 있어 몸을 돌릴 수 없기 때문에 벽면에 비춰진 그림자만 보고 있다. 동굴 안의 모습을 좀 더 살펴보면, 동굴 벽과 입구 중간에는 담이 있으며 이 담 뒤에는 불빛이 켜져 있어서 담과 불빛 사이로 사람들이 사물들을 들고, 오가고 있다. 불빛과 사물들은 각각 동굴 밖 태양과 실물들의 모방이며 사람들은 이 모방의 모방인 동굴 벽면의 그림자를 진짜라고 생각하고 살아간다. 그들에게 이것은 현실이고 당연한 일상이다.

  이때 이 죄수들 중 누군가가 갑자기 풀려나, 고개를 돌려 몸을 움직이며 불빛을 바라보도록 강요받는다.(2단계) 그는 작은 담을 지나 벽면의 그림자를 만들었던 사물들과 불빛을 보게 되는데, 이 때 그는 어둠의 세계에 적응했던 눈으로 인해서 고통스러워하면서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다음 단계로 누군가가 거칠고 험한 동굴의 오르막길을 통해 그를 억지로 그곳에서 끌어내며 햇빛 비치는 곳으로 나오게 한다. 하지만 겨우 동굴 속 불빛에 익숙해진 눈으로 태양빛을 보기는 너무나 고통스럽다. 그는 햇빛 비치는 곳으로 나왔으나 눈이 광채로 가득 차서 진실한 것이라고는 하나도 볼 수 없게 된다. 그래서 그는 밤을 기다려 물 위에 비친 실물 혹은 달빛과 별빛에 비친 사물들을 보면서 시력이 적응하기까지 시간을 갖는다. 결국 그는 달빛에 적응하고 태양 아래의 실물들과 마침내 태양 그 자체까지도 보게 된다. 그는 태양 자체를 관찰하면서 태양이 가시적인 세계 안의 모든 것들을 관장할 뿐 아니라 동굴 안에서 보아온 모든 것들의 원인이 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3단계)

  이런 결론에 도달한 후에 그는 자연스럽게 자신이 살던 곳의 동료 죄수들을 불쌍히 여기며 동굴로 돌아가게 된다. (4단계) 다만 동굴로 돌아갈 때는 동굴에서 나올 때와 똑같은 고통을 겪어야 하는 것은 물론 그와 더불어 새로운 위험에 봉착하게 된다. 그것은 어둠 속에서 그림자만 보고 그것을 진리로 여기며 살아온 사람들이 동굴 밖에서 실물을 보고 돌아온 그의 말을 거짓으로 간주하고 죽이려 드는 위험이다.

  동굴의 비유는 동굴 안(현상계) 동굴 입구(이데아) 다시 동굴 안(현상계)으로의 연속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후 글에서는 소크라테스가 설명해주는 동굴의 비유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되는 첫 번째 과정(12단계)과 도덕적 의무감 혹은 연민만으로 쉽게 설득되지 않는 3번째 과정(34단계)에 집중하여 살펴보려고 한다.



  1. 선분 비유 : 선분 왼쪽 부분은 가시적인 영역에 해당하고 오른쪽 부분은 가지적인 영역에 해당한다. 소크라테스는 각각의 부분을 다시 두 부분으로 나누어 네 부분으로 구분됨. (510a 이하), <국가>, 플라톤, 박종현 역주 참조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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