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에게 최고의 친구는 최고의 적이다.
적이 어떻게 최고의 친구가 될 수 있을까? 니체에게 친구는 좋은 말만 해주는 사람이 아니다. 또한 뭐든지 이해해주고 공감하는 사람도 아니다. 잘했다 잘했다 해주는 사람(엄마)이 아니다. 니체에게 최고의 친구는 멀리(?) 있지만 서로에게 강한 영향력을 주고 움직하게 하며 생성하고 변화하는 힘이 되는 그런 존재다.
내 짧은 일생을 통해서 끊이지 않는 원천을 가지고 움직였던 때 역시 그랬다. 나를 무시했던 존재들, 마치 세상 모두가 나를 경멸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을 때 역설적으로 내 안에서는 끊이지 않는 동력이 솟구쳐 올랐다. 일평생 가장 열심히 공부했던 것은 나의 의지가 아니라 나에게 모욕감을 주었던 친구 덕분이었다. 이런 복수심에 불탈 때에는 그 어떤 것도 나를 막지 못하고, 하지 못할 일이 없는 것 같은 고양된 상태를 경험하게 된다! 복수는 나의 힘이라는 말은 거의 절대적으로 모두가 공감하는 말이 아닐까.
감당할 수 없는 고통과 좌절이 찾아왔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거대한 기회다. (아무에게나 위대한 고통이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더 큰 고통일수록, 더 큰 절망일수록 복수심은 더 커진다. 파괴하고 싶고 죽여버리고 싶고, 부셔버리고 싶은 충동들! 달리 보면 이러한 복수심은 일생을 살아가면서 다른 어떤 것으로도 움직이지 못했던 나의 몸과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된다. 물론 죽이고 파괴하고 부셔버리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된다. 한 번이라도 복수심이 불타서 일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안다. 처음엔 복수심으로 공부하고, 책을 읽고, 악착같은 마음으로 운동을 하고, 10원이라고 절약하면서 돈을 벌려고 하다보면 복수의 힘은 나를 키우는 끝없는 원천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된 복수심이라면 결코 파괴하는 것으로 끝날 수 없다.
지금 당장 힘들어 죽을 것 같은 상황 속에 있는 사람에게 고통을 생성의 힘으로 바꾸라는 것은 말도 안된다고, 이건 그냥 하는 말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돌이켜 보라. 위대한 사건과 인물들에게서 '위대한 복수심'이 없었던 적은 한 번도 없다. (단지 말로 표현하지 않을 뿐이다.)
고대 그리스의 영웅들이 보여주었던 '고귀함' 역시 이런 (고통과 절망의) 기회 속에서 형성되었다. 헤라클레스가 영웅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원래 '영웅'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12가지 과업을 통과하면서 영웅으로 거듭났기 때문이 아닐까.
니체를 읽으면서, <우상의 황혼>을 읽으면서 마음의 평안과 위로를 얻는 것도 좋다. 그런데 더 바라는 것은 니체의 말이 골수를 찌르는 비수가 되어 더 할 수 없는 큰 고통을 느껴보기를, 더 이상 외면하지 말고 자신이 직면한 문제, 저 심연의 괴물과 당당하게 맞설 수 있기를 바란다. 복수는 나의 힘!
어느 시대에나 사람들은 인간을 '개선'하려고 했다. ... 야수 같은 인간을 길들이는 것(Zähmung)도 특정한 종류의 인간을 길러내는 것(Züchtuhng)도 '개선'이라고 불려왔다. ... 어떤 짐슴을 길들이는 것을 '개선'이라 부르는 것은 우리 귀에는 거의 우스갯소리처럼 들린다. 동물원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아는 사람이라면 그런 곳에서 야수들이 과연 '개선'되는지 의심할 것이다. 야수들은 그곳에서 약화되고 무해하게 만들어진다. 공포감에 짓눌리고 고통, 상처와 기아에 시달리면서 병약한 야수가 되는 것이다. 사제에 의해 '개선되어' 길들여진 인간의 경우에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중세 초기에는 교회가 사실상 동물원이었으며, 사람들은 어디서나 '금발의 야수'의 가장 아름다운 예에 해당하는 자들을 사로잡기 위해서 사냥을 했다. (니체 <우상의 황혼> 아카넷 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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