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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루스트 읽기

표음문자와 부사

by 홍차영차 2022. 4. 21.

프루스트 읽기 <갇힌 여인>을 읽고 있어요. 아래 문자와 '부사'에 대한 부분이 아주 흥미롭니다. 주어, 동사가 아니라 부사가 더 많은 것을 드러내준다는 점!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일단 발췌만 올려봅니다.

 
 
나는 문자를 일련의 상징으로 간주한 후에야 표음문자를 사용한 민족들과는 반대되는 움직임을 내 삶에서 따르고 있었다. 여러해 동안 사람들이 내게 자발적으로 제공해 온 직접적인 표현을 통해서만 그들의 실제 삶과 생각을 모색해 온 내가, 지금은 그들의 잘못으로 인해 진리의 합리적이고 분석적인 표현과는 다른 증언에만 중요성을 부여하게 된 것이다. 말 자체도 당황한 사람의 얼굴에서 피가 치솟거나 갑자기 침묵하는 식으로 해석되는 경우에만 뭔가를 가르쳐 주었다. 이런 저런 부사(副詞)가 불쑥 솟아 나오는 경우, 대화 상대자가 명시적으로 말하지 않아도 두 관념이 비의도적이고 때로는 위험한 접근으로 충돌하면서 분출되는 경우, 그 부사는 담화 전체보다 내게 더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으므로, 나는 그 관념들을 그에 적합한 분석 방법이나 전기 분해술로 도출할 수 있었다. 알베르틴은 때로 자기 말 속에 이런 저런 관념의 소중한 혼합물을 섞어 질질 끌었으며, 나는 그 혼합물을 보다 명확한 관념으로 바꾸기 위해 서둘러 '처리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9권 '갇힌여인' 142~143쪽)

 

세미나하면서 알려준 '통사론'이란 시도 함께 적어놓습니다.

 

 

 

통사론


주어와 서술어만 있으면 문장은 성립되지만
그것은 위기와 절정이 빠져버린 플롯같다.
'그는 우두커니 그녀를 바라보았다.'라는 문장에서
부사어 '우두커니'와 목적어 '그녀를' 제외해버려도
'그는 바라보았다.'는 문장은 이루어진다.
그러나 우리 삶에서 '그는 바라보았다.'는 행위가
뭐 그리 중요한가
우리 삶에서 중요한 것은
주어나 서술어가 아니라
차라리 부사어가 아닐까
주어와 서술어만으로 이루어진 문장에는
눈물도 보이지 않고
가슴 설레임도 없고
한바탕 웃음도 없고
고뇌도 없다.
우리 삶은 그처럼
결말만 있는 플롯은 아니지 않은가.

'그는 힘없이 밥을 먹었다.'에서
중요한 것은 그가 밥을 먹은 사실이 아니라
'힘없이' 먹었다는 것이다.

역사는 주어와 서술어만으로도 이루어지지만
시는 부사어를 사랑한다. 


- 박상천, <5679는 나를 불안케 한다>(문학아카데미,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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