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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창문 불빛에서 나오는 전혀 다른 감정

by 홍차영차 2021. 10. 14.

어떻게 똑같은 대상에서 전혀 다른 감정이 나올 수 있을까

 

 

 

“안 돼요. 오늘 밤엔 카틀레야가 없어요. 제가 몸이 불편하다는 걸 알잖아요.”
“오히려 당신 기분이 좋아질 수도 있을 텐데. 하지만 우기지는 않겠소.”
그녀는 돌아가지 전에 불을 꺼 달라고 했다. 그는 손수 침대 커튼을 닫고 집을 나왔다. 그러나 집에 돌아오자 갑자기 어쩌면 오데트가 오늘 밤에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어 단지 피곤한 척한 것뿐이며, 불을 꺼 달라고 부탁한 것도 실은 그녀가 자려고 한다는 걸 믿게 하려고 그런 것으로, 그가 그녀 집에서 나오자마자 불을 다시 켜고 그녀 곁에서 밤을 함께 보내기로 한 남자를 맞아들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그는 다시 집을 나와 삯마차를 잡아타고는 그녀 집 가까이 가서 그가 전에 문을 열어 달라고 침실 창문을 두드리러 간적 있는, 집 뒤편 길과 수직을 이루는 골목에서 마차를 멈추게 했다. … 몇 걸음 걷자 거의 그녀 집 문 앞에 닿았다. 모든 창문의 불이 꺼진 지도 오랜 거리의 어둠 속에서, 창문 단 하나만이 방 안을 가득 채우는 빛으로 넘흐르는 것을 보았다. 그렇게도 많은 밤, 그가 그 길에 들어서면 멀리서도 그를 알아보고는 기쁘게 해 주던 불빛으로 “그녀가 바로 저기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요.”하고 알려줬는데, 지금은 “그녀가 기다리던 남자와 같이 있어요.”라고 말하며 그를 고문했다. 154
… 문을 두드렸다. 듣지 못한 것 같았다. 더 세게 두드렸다. 대화가 넘추었다. 한 남자가 물었다. 그는 자기가 아는 오데트의 남자 친구 가운데 누구 목소리인지 알아내려고 애썼다.
“누구요?”
… 그는 앞을 보았다. 그 앞 창가에는 늙은 두 남자가 있었고, 그중 한 사람은 램프 불을 들고 있었다. 그때 방 안이 눈에 들어왔다. 낯선 방이었다. 늦은 시간 오데트의 집에 도착할 때면, 거의 비슷한 창문들 가운데서 단 하나 불빛이 켜진 것을 그녀 집 창문이라고 알아보던 습관 때문에, 옆집 창문을 잘못 알고 두드렸던 것이다. 그는 사과를 하고 그곳을 떠나 집으로 돌아왔다.  2권, 157쪽

 

 

기분이 나쁘면 자신 외부에 있는 사람, 사물에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사람이 이런 말을 해서 기분이 나쁜 거야 아니면 자동차를 왜 이렇게 주차한거야라는 이유들. 하지만 스피노자 말대로 우리의 관념은 외부 물체의 본성뿐만 아니라 자기 신체의 본성을 함축한다. 덧붙여 말하기를, 그 대상에 대한 관념을 형성하는데는 물체의 본성보다 자기 신체의 본성이 더 강력하게 작용한다고.

스완에게 그 창문 불빛은 언제나 설레는 사랑의 신호였고, 자신을 희망과 기쁨으로 이끌어주는 불빛이었다. 하지만 전혀 다른 상황에서 그 불빛, 사랑스러웠던 창문 불빛은 불행의 원인이자 고통의 신호가 된다. 

어떻게 똑같은 대상에서 이렇게 다른 감정이 나올 수 있을까? 창문 불빛이라는 관념이 전혀 다른 맥락으로 관념의 연쇄를 형성했기 때문이다. 오데트를 만나러 가는 것은 똑같았지만, 약속을 잡고 가던 밤길의 불빛과 의심을 품고 바라보는 불빛은 전혀 다른 맥락에서 해석되기 때문이다. 똑같은 관념이지만 전혀 다른 관념의 연쇄가 형성괴면서 내 신체에는 완전히 다른, 정반대의 감정이 만들어질 수 있다.

관념이 정서에 앞서 있다는 말도 생각해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관념은 재현적 사유방식이고, 대상을 다시 재현representation하는 사유이다. 하지만 정서는 비재현적 사유방식으로 뭔가를 재현하는 것이 아닌 정동적으로 움직이는 이행 자체를 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똑같은 관념이라고 하더라더 어떤 때는 아무런 정서를 일으키지 않을수도 있고, 때로는 사랑은 때로는 분노를 일으킬 수도 있다. 그래서 그 관념이 어떤 정동을 일으킬지는 다른 관념들과의 맥락속에서 파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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