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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家)'출하지 못하는 이유

by 홍차영차 2018. 5. 12.

내가 '가(家)'출하지 못하는 이유





영화를 좋아해서 집에서 자주 보지만, 본 영화마다 뭔가를 끄적거리지는 않는다. 그런데 오늘 <소공녀>를 봤다. ^^



"하루 한 잔의 위스키와 담배 한개피, 그리고 남자친구"가 세상의 가장 큰 낙이라는 주인공 미소는 특별한 불만 없이 가사도우미를 하면서 하루 일당으로 4만5천원을 벌면서 잘 살아왔다. 하지만 방세가 5만원이 오르자 미소는 '위스키'와 '담배'가 아닌 '집(家)'을 버리는 선택을 한다.  바로 여기다. 어떻게 미소는 이렇게 집을 쉽게 떠날 수 있었을까? 반대로 우리는 왜 집을 떠나기를 어려워할까? 뻔뻔한 주인공 캐릭터의 뻔한 전개가 진행되는건가? -.-;



미소는 집을 떠나 대학 시절 함께했던 밴드의 친구들을 찾아간다. 그곳에서 한나절, 단 하루, 혹은 며칠 머물 수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미소 자신이 대학 시절 그랬던 것처럼. 아, 그렇구나! 미소가 집을 떠날 수 있었던 건, 나를 받아줄, 나에게 문을 열어줄 친구들을 믿었기 때문이다. 부자 친구, 방이 많은 친구를 기대한 것이 아니라 가진 것과 상관없이 함께 나눌 친구들을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부자건 가난하건 결혼했건 하지 않았건 남자건 여자건 관계없이 미소와 함께 지냈던 기간에 위안과 감사한 마음을 가질 수 있게 해준 사람은 '집'이 있는 친구들이 아니라 '집'을 버린 미소였다.

사실 우리가 집을 나서지 못하는 이유는 집이 너무 좋아서가 아니다. 집 이외에 갈 곳이 없기 때문이다. 집을 나선 나에게 자신의 문을 열어줄 누군가가 있다는 확신이 없어서인것 같다. 현재 우리들이 지내고 있는 집은 안식처라기보다는 '감옥'이 되어가는 듯하다. 다른 사람도 들어오지 못하지만 나도 밖으로 나갈 수 없다. 우리가 유일하게 믿을 건 가족밖에 없다고 말하면서 핵가족내부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하면서 가족 자체가 서로에게 압력으로 작용하는 것처럼말이다. 럭셔리한 가구와 좋은 시설로 치장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감옥은 감옥일 뿐이다.


삶이란 우연한 마주침의 연속이(어야 한)다. 스피노자의 말을 잠시 빌려본다면, 인간이란 계속된 변용의 연속일 뿐이다. 한시라도 변용하지 않는다면 죽은 것과 다름없다. 그렇다면 새로운 것과 마주침이 없는 삶은 죽은 삶과 다름없지 않을까? 지구상의 생명체로서 우리는 이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집에 갇혀 살기를 스스로 선택하면서 다른 삶과의 마주칠 기회를 스스로 거부하고 있는 건 아닐까. 어느 지역에 가더라도 나 하나쯤 받아줄 친구가 있다면, 혹은 가출을 낯선 곳에서 만난 사람과 친구가 될 기회로 삼을 수 있다면 집을 떠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수도 있다.



똑같이 집을 떠나는 것인데, 가출(家出)과 출가(家)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다. 가출(家出)이 집을 떠나 다른 집을 떠나는 길이라면, 출가(家)는 폐쇄된 집이 아니라 열린 집으로 나가는 걸음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세상 모두를 친구로, 집으로 삼겠다는 것이 바로 출가이지 않을까.


소공녀, 미소는 자신의 머리 둘 곳이 없는 것에 두려워하지 않는다. 가벼운 삶을 물려받은 것에 불만도 갖지 않는다. 한강 고수부지의 불빛이 있는 텐트를 보여주면서 영화가 끝난다. 


삶을 가볍게 만들고 싶고, 가벼워진 삶 속에서 떠나는 삶을 살고 싶다.


2018. 5.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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