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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스/알튀세르

유물론적 변증'법'은 없다

by 홍차영차 2017. 2. 15.

<마르크스를 위하여>

- 루이 알튀세르 -



“이제까지 철학자들은 단지 세계를 해석해왔을 뿐이다.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혁시키는 일이다.”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 11번


맑스는 <독일이데올로기>에서 '철학에서 이론으로, 이데올로기에서 과학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철학을 버리고 이론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말은 어떤 뜻일까?

흔히 맑스의 유물론적 변증법을 헤겔 변증법의 전도라고 말한다. 하지만 알튀세르가 다시 읽은 맑스주의는 헤겔 변증법의 단순한 전도가 아니라 거부이며 완전한 폐기이다.그렇기에 완전히 다른 새로운 이론적 전제가 만들어진다.


한 마디로 유물론적 변증법이란 이론적 실천, 실천 일반으로서의 대문자 이론Theory이다. 그냥 이론이 아니라 이론적 실천으로의 이론Theory! 헤겔 변증법은 "두 개의 대립물이 있는 단순한 과정"이다. 결국 목적론적 결과로 나타난다. 하지만 주어진 세상을 살펴보면 아무리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도 단순한 것에 이르지는 않는다. '항상 그 자체로 복잡한 전체', '항상-이미-주어진 것'만이 있을 뿐이다. 유물론적 변증법은 단순한 것으로부터 출발해 복잡해졌다는 신화를 버린다. 세상은 처음부터 복잡한 것으로부터 출발했다. 그리고 단순한 것은 복잡한 과정의 산물일 뿐이다. 이렇게 맑스주의는 근원적 기원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철학적(이데올로기적) 자만을 거부한다.


이론과 이론적 실천으로의 일반이론Theory의 차이는 무엇인가? <자본론>은 대문자 이론Theory의 실천적 해법을 드러내고 있다. 이론Theory은 없지만 그 안에 실천적인 해법이 들어있다. 알튀세르는 바로 지금 필요한 것이 '이론적 실천'이라고 말한다. <자본론>은 존재하지만 이를 구성하고 있는 현실적 구체성의 조건들은 달라졌다. <자본론>이 현실에서 작동하기 위한 이론적 실천이란 바로 이런 '현실적 조건'들을 밝혀내는 것이다. 그 과정들이 필요하다. 유물론적 변증법은 단순한 이론이 아니다. 실천이고 과정일 뿐이다.


알튀세르가 유물론적 변증법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은 '엄말한' '고된' '지적노동'이다. 단순하게 살펴봐서는 보이지 않는다. '맑스'가 19세기에 영국에서 자본과 노동자들의 관계를 바라보았던 엄밀한 눈이 필요하다.



알튀세르의 삶 자체가 '이론적 실천'의 삶을 살아왔던 것 같다. 고정된 '이론', 맑스주의에 머물지 않고 계속해서 변화해가는,자신이 주장했던 바를, 그 원리까지도 서슴치 않고 던져버리면서 새로운 조건들 속에서, 매순간 일반이론으로 나아갔던  과정으로서의 삶.<자본론을 읽는다>는 그의 한 마디가 다시 새롭게 느껴진다.


"그러나 언젠가는 <자본론>을 엄밀히 읽지 않으면 안된다. 4권 모두를 원문으로 한줄 한줄씩 완벽하게 읽어야 한다. 제2권의 건조하고 평탄한 고원으로부터 이윤, 이자, 지대의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기 전에 처음의 몇 장 또는 단순재생산 및 확대재생산의 도식을 열번씩 되풀이해 읽어야 한다. 그리고 <자본론>을 프랑스어판으로 읽어야 하며, 최소한 마르크스의 기본적인 개념이 표출되어 있는 기본적인 이론을 다룬 장이나 지면은 독일어 원본으로 읽어야만 한다." 

<자본론을 읽는다> 1장


알튀세르가 보여준 <마르크스를 위하여>는 오래된 책(고전)을 왜 읽어야 하는지, 어떻게 읽고 써야할까에 대한 대답으로 들린다. 현재 '문탁'이라는 공동체가 존재한다. 벌써 실천적 해법으로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 필요한 것은 '문탁'의 실천적 해법으로 이론Theory으로 만들려는 '지적 노동'이 필요하다.


2017.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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