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격월로 발행되는 대안교육 전문지 <민들레> 103호, 2016년 3~4월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자율과 공생의 문탁네트워크
경기도 용인, 도심을 지나 한적한 골목에 자리 잡은 문탁네트워크(이하 문탁). 2009년 동네 친구 몇몇이 이반 일리치를 읽다가 ‘공부가 구원이 될 수 있을까’를 증명하고 싶어 문을 연 공간이다. 리모델링으로 한참 분주하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마을 공유지 874-6에 들어서자 말끔하게 공사가 끝나 있었다. 874-6이라 쓰고 파지사유 (破之思惟, 破之私有, 破之事由)라 읽는 이곳은 익숙한 습속과 사유, 구조와 관념을 깨뜨리고 ‘그렇다’고 믿었던 것들을 다시 묻는다는 뜻으로 생겨난 문탁의 대표적인 공유지이다. 여느 카페처럼 주문 받고 계산하던 카운터를 없애고 스스로 찻값을 지불하고 차를 마시도록 구조가 바뀌었다. “매니저가 없고, 자율 카페로 바뀌었어요. 지난주까지 바쁘다가 이제 좀 정리가 됐죠.” 초창기부터 함께했던 연 구원 정성미(노라)님이 우리를 반기며 자리를 안내했다. 구조의 변화를 꾀했다는 건 문탁의 활동에도 변화가 있다는 걸 뜻할 터, 더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겠구나 지레 흥미진진했다. 건너편에 있던 홍영택(뿔옹)님도 함께 자리하며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위로 성장하기보다 옆으로 전염시키고 싶어요.”
장희숙(이하 장): 입구도 바뀌었고, 중간에 접이식 투명 문을 달아 활용도를 높였네요. 예전도 좋았는데 이렇게 바뀌니 또 새로워요. 의도적으로 구조를 바꾼 건 문탁의 정신적인 변화를 상징하는 것 같은데요.
정성미(이하 노라):맞아요. 건너편 건물 2층 세미나실과 같이 있던 주방을 이곳 1층으로 옮긴 것이 제일 큰 변화예요. 처음에 어떤 분이 주방을 옮기자 제안했을 땐, 다들 뜬금없는 소리다 했어요. ‘이렇게 통유리로 된 카페에서 어떻게 밥을 먹나’ 하는 반응이었죠. 그런데 자연스레 그 얘기가 계속 나오고 자꾸 듣다 보니 ‘어, 그것도 괜찮겠다’ 싶은 거예요. 본격적으로 힘을 모아 두어 달 만에 공사해서 주방을 이리로 옮겼어요. 어제 처음 여기서 밥을 먹었는데 정말 좋았어요. ‘아, 이래서 옮기자고 했구나’ 싶었죠. 저마다 편한 자리에 둘러 앉아 밥 먹고 차 마시는데, 공동 식사라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어요. 최근 2년 사이 문탁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거든요. 원래 밥을 먹던 2층은 세미나실이 나눠져 있어서 함께 먹을 수가 없었어요. 사람이 점점 늘어나니까 각자 밥 먹고 제 할 일 하러 흩어지면서 자연스러운 만남이나 이야기가 잘 이뤄지지 않은 느낌이 있었거든요.
홍영택(이하 뿔옹): 처음에 ‘파지사유’라는 이 공간을 열었을 때는 일반 카페가 아니라 모두의 ‘공유지’라고 생각했어요. 이름도 그렇게 붙였고요. 그런데 주방을 이곳으로 옮기자는 의견이 처음 나왔을 때, 아주 사소한 일인데도 거부감부터 드는 거예요. 왜 그런가 생각해보니 평소 제도나 틀을 만들지 말자고 하면서도 스스로 어떤 생각 안에 갇혀 있었던 것 같아요. 규모가 커지니까 회사처럼 분리되는 느낌도 있고. 그런 면에서 이번 리모델링은 공간 뿐 아니라 고착화되려는 이 공동체의 그 무엇을 흔드는 작업이었던 거 같아요.
노라 규모가 커지면서 서로의 역할에 대한 고민도 있었어요. 파지사유 매니저가 따로 있었는데, 활동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몇 사람들에게 너무 하중이 쏠리는 거예요. 말로는 우리 모두의 공간이라고 하면서 어느새 자기가 맡은 일에만 집중하게 되는 것 같아서 다시 한 번 섞이는 게 필요하겠다고 판단한 거죠. 작년 말 워크숍에서 제일 많이 나온 얘기가 “섞이자”였어요. 사실 하던 걸 계속하고 싶은 습성도 있고, 하다 보면 그걸 더 잘하고 싶은 마음도 커지는데 그러면서 틀이 생기잖아요. 역할을 유연하게 교차하자는 뜻이 공간 구조를 바꾸는 데 반영되었어요. 공간이 바뀌면서 우리의 정체성, 역할도 바뀐 거 같아요.
장:작은 모임으로 시작한 인문학공동체가 오늘에 이르기까지, 저절로 규모가 계속 커진 건 그만큼 자리를 잡았다는 뜻 아닐까요. 실험해보고자 했던 삶이 실현되고 있다는 점에서 좀 더 좋아지고 있다, 나아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노라:드나드는 사람이 많아졌지만 저희는 사람들이 그냥 강좌만 듣고 떠나길 바라는 건 아니에요. 공부와 관련해선 강좌와 세미나가 있는데요. 강좌는 강의만 듣는 거예요. 강좌보단 세미나가 더 적극성이 필요하죠. 한 달 2만원 회비로 모든 세미나에 함께할 수 있어요. 세미나 회원이 70~100명 정도 돼요. 강좌를 계기로 세미나도 같이 만들고, 더 밀착해서 자기 삶을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면 좋겠는데 강의만 듣고 스쳐가는 분들이 많은 현상이 저희는 좀 낯선 거죠. 허명이 아닌가, 숫자만큼 질적으로도 좋아진 것이냐 이런 성찰을 하게 됐죠.
뿔옹:일 년에 한 번 가을마다 인문학 축제를 하는데, 작년 주제가 ‘반(反)성장과 좋은 삶’이었어요. 공부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자본주의나 문명에 대해 질문을 던지게 되는데, 함께 잘 살아보자고 만든 이곳에서 우리마저도 ‘성장의 관점’에서 보고 있는 건 아닌가 고민이 생겼어 요. 그러다 보니 성장은 뭐고, 반(反)성장은 어떤 것인지 질문이 생긴 거죠. 성장이나 발전은 수직적인 느낌이라면, 우리가 원하는 건 위로 올라가는 것보다 옆으로 퍼져가는 느낌, ‘전염’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사람들이 많이 오면 물론 좋죠. 파지스쿨이나 청소년 강좌도 자리가 꽉 차면 좋겠지만 1, 그렇다고 단순한 양적 팽창을 원하는 건 아니에요. 이 안에서 개인과 개인의 고민이 보여야 하고, 한 사람 한 사람의 공부와 실천이 엮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많아지고 일이 늘어나도, 공부와 이어지지 못하면 각자 맡은 역할 열심히 하는 조직 이 되어버릴 거예요. 저는 제일 중요한 게 관계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생각하는 성장은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수평적인 넓어짐’이에요.
노라:규모에 따른 변화를 조절하는 데 큰 힘이 된 게 작년 인문학 축제였어요.‘반(反)성장과 좋은 삶’이라는 주제를 좀 뜬금없이 생각했던 사람들도 점점 더 진지하게 문탁의 삶, 자신의 삶 속으로 파고들며 서로를 성찰하는 계기가 된 것 같아요.
“삶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앎은 소용이 없어요.”
장:책 읽고 공부하는 모임이나 인문학공동체와는 다르게 서로의 삶 이 아주 밀착되어 있다는 느낌이 드는데요.
뿔옹:막막한 어느 순간, 공부가 삶을 바꿀 수 있겠다 싶었어요. 처음엔 여기저기 인문학공동체를 기웃거렸는데, 결국 문탁이 저한테 잘 맞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공부와 삶이 분리되지 않는다는 점이 가장 인상적이었죠. 전 파지스쿨에서 청소년들을 만나고 있는데 ‘이 아이들을 바꾸겠다’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 없어요. 뭔가 바꾸고 싶은 게 있다면 그건 바로 ‘나 자신’이죠. 내가 하는 것들을 통해 내 삶이 바뀌고 자연스럽게 좋은 사람, 시민으로 변화해가는 거 아닐까 싶어요. 제가 교사로서 이반 일리치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일리치가 얘기한 공존과 자율이 있는 삶을 정말 실현해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아이들을 만나는 거죠. 여기선 가르치는 걸로 끝나지 않고, 자기가 강의하거나 세미나한 내용이 바로 삶으로 드러나거든요. 그러니까 아이들도 에세이 쓸 때 힘들어해요. 정말 제대로 된 공부를 해보면, 공부가 무섭다는 느낌이 들어요. 뭔가 깊숙하게 알게 되면 그걸 외면할 수 없어지거든요. 문탁에서 오랫동안 같이한 친구들이 뭔가 새로운 세계를 알게 되는 걸 무서워하는 건 ‘앎을 어떻게 삶에 적용할까’를 고민하기 때문이에요. 그 부담감, 불편함이 언제가 그 친구들을 실천으로 이끌겠죠. 저희는 어찌 보면 그걸 제일 원하고 있는 거 같아요.
노라:‘실천을 고민하지 않는 것은 공부가 아니라’는 생각은 문탁 사람들 대부분이 하고 있을 걸요. 최근 어떤 분에게 ‘지적 허영’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우리에겐 가장 충격적인 말이었어요. ‘왜 그렇게 쓸 데 없이 공부를 많이 해? 지적 허영 아니야?’ 이런 뉘앙스였는데 우리 가 충격을 받은 건 그 공부를 어떻게 삶으로 펼칠까 항상 고민하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 파지사유 한쪽에 마련된 기억의교실에는 단원고 2학년 7반 학생의 책상이 놓여 있다.
장:앎과 삶의 연결은 모든 교육과 학문의 궁극적 이상일 텐데요. 공부 하는 것들을 삶에 반영해가는 방식들이 궁금해요.
뿔옹:혼자는 힘든데 같이 실천할 수 있으니까 좋아요. 대표적인 예로 2014년 문탁에서 ‘765 릴레이시위’를 했어요. 탈핵을 공부하다가 누군가 그동안 인연이 닿았던 밀양 송전탑 문제에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고 했어요. “우리가 뭔가 행동해야 하지 않을까?” 같이 고민하다가 밀양 송전탑이 765Kw니까 76.5일 동안 분당에 있는 미금역 사거리에서 하루 한 시간씩 피켓 시위를 하기로 했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핵발전소나 전기에 대한 리플렛도 나눠드리고요. 문탁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참여했어요. 아주 어린 친구부터 청년, 어르신까지요. 책으로만 보는 것과 길에서 피켓을 들고 있을 때의 느낌은 아주 다르고, 밀양에 직접 가서 보는 것은 또 달라요.
노라:여기서는 말하는 게 겁날 정도로, 말을 꺼내면 그게 정말로 실현되고 일이 커져요. 세미나 끝에는 항상 그런 이야기가 나오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뭘까?” 혼자 집에서 읽었다면 그냥 지나갈 일인데, 함께 읽기 때문에 같이 할 수 있는 힘이 생기죠. 제가 미처 생각지 못한 실천을 하고 있는 친구를 이 안에서 만나기도 하고요. (카페 입구에 있는 작은 책상을 가리키며) 저게 단원고 2학년 7반 아이의 책상이에요. 기억의 교실이란 이름을 붙여 저 작은 공간에 꾸리고 있죠. 지역에서 하는 행사인데 같이 참석하고 계신 분의 제안으로 저기 갖다 놓게 됐어요. 누군가의 실천으로 갖다놓은 단원고 책상에 앉아보고, 글도 써보고 하면 세월호에 대한 느낌이 아주 달라지죠. 그렇게 같이 실천하고 공부하는 것들이 서로 연결되는 거예요.
뿔옹:공부를 정말 제대로 하면, 실천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 같아요. 그런 세상을 알았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겠어요. 며칠 전에 밥 먹으면서 “용인에 녹색당 플래카드 걸어야 하는데 돈이 없단다, 하나에 만 원이라던데” 이런 얘기가 나오니까 자연스레 같이 밥 먹던 사람 들이 돈을 걷어 보냈어요. 공식화하지 않아도 알음알음 그렇게 실천하는 거예요. 그런 고민들 속에서 가구를 제작하고 수선하는 마을목공소 월든도 생기고, 재봉틀이나 손바느질로 물건 만드는 봄날길쌈방, 천연 화장품 만드는 자누리 생활건강,‘틈이라고 하는 웹진 발행 같은 일들 이 마구 뒤섞여 생겨났죠.
“할 수 있는 만큼 새로운 일들을 시도해요”
뿔옹: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 새로운 일들을 시도해요. 경제를 공부하다 보면 ‘그럼 자본주의를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되죠. 그래서 대안화폐 ‘복’이라는 걸 만들었어요. 복 회원은 문탁에서 자신이 잘하는 일을 활동으로 연계해서 복을 벌고, 그 ‘복’은 이곳에서 생산되는 물건을 사거나 프로그램 회비 내는 데 써요. 모두의 ‘복’ 보유 현황은 매달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어요. 작년에 이 안에서 거래된 ‘복’이 1억 복이 넘었더라고요. 그런데 이 대안화폐 또한 우리가 돈처럼 쓰는 게 아닌가 하는 고민도 하고, 정말 우리가 복을 시도한 이유가 뭘 까 다시 생각해보기도 해요. 공부와 이런 고민들이 오가다 보니 자본주의에서 자유롭게 자립을 해보겠다고 하시는 분들이 생기기도 해요.
노라:직장을 그만두고 이 안에서 버는 최소한의 생활비로 살아보는 거예요. 한 달에 딱 얼마만 벌고 가난하게 살겠다는 거죠. 이곳에서는 똑같이 일을 해도 각각 다른 금액의 복이 지급돼요. 예를 들어 저는 남편이 벌고, 다른 분은 혼자 벌어서 삶을 유지해야 하니까요. 똑같은 일을 했기 때문에 똑같은 임금을 가져가야 한다는 생각을 깬 거죠. 어떤 상황인지 고려해서 각각 다르게 주고, 이곳에서의 수입으로만 살아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흔쾌히 자기 복을 몰아주기도 하고요.
뿔옹:사실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생각보다 무척 많아요. 삶을 그렇게 바꾸기가 어려워서 그렇죠. 자립을 해보고 싶다고 하면 그 개인의 시도를 어떻게든 응원하고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그게 참 힘이 돼요. 새로운 실험을 해볼 수 있는 동력이 되기도 하고요.
노라:도시 속 생활이지만 이곳에서 지내다 보면 다른 소비가 많이 줄어요. 세미나를 여러 개 하니까 책값이 많이 들긴 하는데, ‘이어서가’ 라는 공유서재가 있고 홈페이지에 댓글을 올려서 서로 책을 빌려주기도 해요. 물건도 서로 공유하고요. 그리고 또 하나 선물이란 게 있어요. 우리는 스스로 ‘선물과 우정의 공동체’라고 말하는데, 실질적으로 밥값 2천 원을 받아서는 주방 운영이 안 되잖아요. 그런데 쌀이나 여러 식재료를 이곳에 선물로 주는 거예요. “이번 달에 기쁜 일이 있었어요” 하면서 쌀을 보내기도 하고, 집에 있는 채소를 가져오고 그래서 밥값 2천 원을 받아도 주방지기 활동비를 주고 돈이 남아요. 그래서 남은 돈은 젊은 청년들을 위한 ‘길위기금’에 보내고 있어요.
뿔옹:청년을 위한 ‘길위기금’은 공부를 하고 싶다거나, 뭔가 나름대로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싶은 청년들 누구나 신청할 수 있어요. 구체적인 결과를 강제하지는 않아요.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싶다니 응원합니다!” 하면서 지원을 해주죠. 다 끝난 다음에 뭘 했는지 꼭 글을 받기는 해요.
노라:보고서가 아니어도 일종의 기본소득 같은 이 실험을 하면서 그 돈을 어떻게 썼는지, 누구를 만났는지 궁금하니까요. 작년에 너댓 팀을 그렇게 지원했어요. 며칠 후에 복 포틀래치 가 있을 거예요. 그것도 세미나 하다가 얘기가 나왔는데 “그거 재밌겠다!” 해서 시도해보게 된 거예요. ‘복’을 많이 쌓은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한꺼번에 나눠주는 거죠. 그런데 사람 심리라는 게 참 묘해요. 복이 아주 많이 쌓이니까 흔쾌히 내놓기 싫은 마음도 생기는 거예요. 그럴 땐 “왜 그런 마음이 드는지 생각해보자” 하고 얘기를 나눠요. 책으로 공부할 때는 당연히 부의 축적을 비판하고 부자들 세금 많이 내야 한다 하지만 막상 내가 많은 것을 쥐고 있으니 놓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알게 되는 거죠.
장:새로운 시도들도 재밌지만,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생각들을 공개적으로 나누면서 정말 많은 공부가 될 것 같아요. “넌 왜 갖고 있는 돈을 나누지 않아?” 이렇게 묻는 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이렇게 크고 작은 일들이 벌어지는데, 결정과 실행 단위는 정해져 있나요?
노라:정해져 있지 않아요. 그때그때 필요한 사람들이 결합해요. 늘 공개되어 있다는 게 특징이긴 하죠. 주로 먼저 얘기 꺼낸 사람이 관심 있는 사람 누구든 모이라고 공지를 해요. 모일 때마다 사람이 달라지니까 계속 다시 설명해야 하긴 하지만 늘 개방된 구조를 유지하려고 노력하죠. 예전에 어떤 강사분이 오셔서 다른 공동체와 문탁의 다른 점은 ‘세미나를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어요. 같이 공부를 한다는 게 정말 큰 힘이 되는 거 같아요. 그러면서 자기를 바꾸고 조율해가니까.
장:그냥 공부가 아니고 사유하며 삶을 다듬는, 그야말로 자신을 연마하는 일종의 수련 같은 거네요.
뿔옹:맞아요. 수련. 저희가 보는 책들이 좀 일반적이지는 않으니까 어떤 분은 지적 허영이다, 잘난 척 한다, 이렇게 보실 수도 있을 거 같아요. 학자가 아닌 사람이 푸코를 읽고 마르크스를 읽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니까요. 그런데 우리에겐 단순한 공부가 아니라, 성찰과 수련의 근 본이 되고 있어요. 그리고 또 하나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는 건 ‘밥’이에요. 신기한 게 아무리 오래 강좌를 들어도 밥을 같이 안 드시면 이곳이 어딘지 잘 모르시는 것 같아요. 그냥 독서 공동체 정도로 생각하신다 할까요. 그런데 오자마자 자진해서 밥 당번 하러 오는 분들은 금방 가까워져요. 20~30명의 회원들을 위해 밥을 준비하다보면 공동체와의 접속이 깊어지는 것 같아요.
노라:적당히 거리를 두고 필요한 공부를 하면서 적당히 ‘자원봉사’한다는 마음을 가진 분들과는 갈등은 없지만 쉽게 가까워지지가 않아요. 그래서 우리는 갈등은 ‘일어나야 하는 거’라고 봐요. 사람 사이의 감정을 풀어가는 게 정말 좋은 공부잖아요. 규모가 커지니까 예전보다 갈등이 있는데, 과정의 일부로 보고 중요하게 생각하죠. 중간에 그만두는 분도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서로의 입장이 다시 이해가 되기도 하고 그래요. 얼마 전엔 이런 일이 있었어요. 리모델링을 하면서 책장을 복도에 두기로 결정했는데 와보니까 다른 곳에 놓여 있는 거예요. 근데 사람들이 “우리는 이렇게 결정했는데 왜 여기 놓았어?”라고 하는 게 아니라 “ 아, 저 분은 저기 놓고 싶었구나” 하는 거예요. 그 자리가 좀 별로라고는 생각하지만 거기 놓고 싶었던 그 사람의 의견을 존중해주고 싶은 거죠. 원칙이라도 서로의 감정을 존중하며 유연하게 바꿀 수 있는 것, 이게 갈등을 풀어가는 과정 아닐까 싶어요. 물론 갈등이 있으면 힘들고 아프지만 ‘갈등은 없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니 좀 여유가 생기는 것 같아요.
장:시스템이 정해져 있어서 거기 맞추는 게 아니라, 개개인의 삶의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마음이 모이고 그 방법을 같이 찾다 보니까 나중에 시스템이 갖춰지는 재미난 방식인데요.
뿔옹:저는 그것을 ‘우정’이라 부를 수 있을 거 같아요. 사실 완벽한 만장일치는 불가능하잖아요. 억지로 만장일치를 시키고 나서 더 불편할 수도 있고요. “이 사람에게 무척 중요한 거니까 내 의견과 다르지만 한 번 해보자” 했을 때 놀라운 경험을 여러 번 했어요. 그 사람 의견대로 해봤는데 좋은 거예요. 내가 원하는 걸 해야 좋은 결과를 얻을 것만 같았는데 내 뜻이 아닌 타인의 의견에 따랐더니 더 새로운 장이 펼쳐지는 경험, 그 사람 덕분에 막혀 있던 내 선택이 더 넓어지는 경험을 하게 되는 거죠. 이걸 우정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노라:작년 인문학 축제 때 반(反)성장을 주제로 나왔던 이야기는 사회나 제도에 대한 것도 있었지만 뜨거운 논쟁을 일으킨 건 개인의 이야기였어요. 탈핵을 공부하면서 전기를 적게 써야겠다거나 자동차를 좀 덜 타고 자전거를 타야겠다 하는 개인적 성찰들. 특히 스마트폰에 대 한 이슈도 뜨겁게 타올랐고요. 스마트폰을 쓰지 않는 사람들이 배제 되는 문제, 빠르긴 하지만 제대로 소통되지 않는 현상에 대해 여러 이야기가 나왔어요. 20대는 40~50대에게 “자동차를 타지 마라” 40~50대는 젊은 사람들에게 “카톡 좀 그만 해라”, 서로 “그것만은 포기할 수 없다!” 하면서 접점을 찾을 수 없는 뜨거운 논쟁을 벌였죠.
뿔옹:“전체적으로 이렇게 하자”는 건 아무것도 없지만 서로가 잘 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투명하게 이야기해요. 실제로 그런 논쟁 후에 고민을 하더니 자동차를 팔고 대중교통으로 다니는 분도 있어요.
노라:초기에는 아줌마들이 많고 대학생이나 젊은 사람, 남자가 없는 것이 특징이었는데 지금은 청년부터 엄마 따라오는 아이들까지 여러 세대 사람들이 어울리고 있어서 활동이 더 다양해졌어요. 작년 인문학 축제를 기점으로 연말과 올해 초에 걸쳐서 뭔가 무질서 속에서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가는 게 느껴져요.
뿔옹:얼마 전 리모델링을 하면서 ‘아, 몇 년에 한 번은 이사를 해야겠구나’ 생각했어요. 일손이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강제 규율도 없는 자율적 상황에서 누구는 일을 많이 하느라 힘들고, 누구는 못 나와서 힘든 과정을 겪었어요. 그러면서 단순히 공간이 바뀐 게 아니라 이 안에 있는 구성원들의 관계와 감정들도 흔들리면서 다시 자리를 잡는 느낌이 있었거든요. 다툼과 갈등도 일어나지만, 우리에겐 그게 좋은 공부가 되었던 것 같아요. 그런 일이 벌어져서 더 좋았어요. 공간만 근사하게 바꾼 게 아니라, 공간이 바뀌면서 사람도 바뀌는구나,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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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이야기 속에 인상 깊게 자주 등장하는 표현은 “공부하다 보니, 자연스럽게’였다. 대표도 없고 조직표도 없지만 역동적으로 일이 생겨나는 건 구성원 개인의 자발성이 동력이라는 뜻이다. 의도하되 형식화 하지 않은 실험과 도전. 짧은 시간 동안 강한 변화를 겪으면서도 본연의 추구를 잃지 않는 문탁의 힘은 ‘자율적인’ 성찰과 자정 능력에 있지 않을까 싶었다. 공부와 삶을 세상과 연결해가는 공생의 네트워크 속에 작은 민주주의의 꽃이 피어나고 있는 듯했다.
- 1년 과정의 파지스쿨은 '공부와 밥과 우정의 청소년/청년 공동체'로 열일곱 이상의 청소년, 청년이 모여 글쓰기, 고전, 인문, N프로젝트 통해 공부와 삶을 이어가는 네트워크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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