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강의 & 세미나/Inter-view

자율과 공생의 문탁네트워크

by 홍차영차 2016. 2. 17.

* 이 글은 격월로 발행되는 대안교육 전문지 <민들레> 103호, 2016년 3~4월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자율과 공생의 문탁네트워크

www.moontaknet.com 




경기도 용인도심을 지나 한적한 골목에 자리 잡은 문탁네트워크(이하 문탁). 2009년 동네 친구 몇몇이 이반 일리치를 읽다가 공부가 구원이 될 수 있을까를 증명하고 싶어 문을 연 공간이다리모델링으로 한참 분주하다는 소식을 들었는데마을 공유지 874-6에 들어서자 말끔하게 공사가 끝나 있었다. 874-6이라 쓰고 파지사유 (破之思惟破之私有破之事由)라 읽는 이곳은 익숙한 습속과 사유구조와 관념을 깨뜨리고 그렇다고 믿었던 것들을 다시 묻는다는 뜻으로 생겨난 문탁의 대표적인 공유지이다여느 카페처럼 주문 받고 계산하던 카운터를 없애고 스스로 찻값을 지불하고 차를 마시도록 구조가 바뀌었다. “매니저가 없고자율 카페로 바뀌었어요지난주까지 바쁘다가 이제 좀 정리가 됐죠.” 초창기부터 함께했던 연 구원 정성미(노라)님이 우리를 반기며 자리를 안내했다구조의 변화를 꾀했다는 건 문탁의 활동에도 변화가 있다는 걸 뜻할 터더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겠구나 지레 흥미진진했다건너편에 있던 홍영택(뿔옹)님도 함께 자리하며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위로 성장하기보다 옆으로 전염시키고 싶어요.”

 

장희숙(이하 장): 입구도 바뀌었고중간에 접이식 투명 문을 달아 활용도를 높였네요예전도 좋았는데 이렇게 바뀌니 또 새로워요의도적으로 구조를 바꾼 건 문탁의 정신적인 변화를 상징하는 것 같은데요

정성미(이하 노라):맞아요건너편 건물 2층 세미나실과 같이 있던 주방을 이곳 1층으로 옮긴 것이 제일 큰 변화예요처음에 어떤 분이 주방을 옮기자 제안했을 땐다들 뜬금없는 소리다 했어요. ‘이렇게 통유리로 된 카페에서 어떻게 밥을 먹나’ 하는 반응이었죠그런데 자연스레 그 얘기가 계속 나오고 자꾸 듣다 보니 그것도 괜찮겠다’ 싶은 거예요본격적으로 힘을 모아 두어 달 만에 공사해서 주방을 이리로 옮겼어요어제 처음 여기서 밥을 먹었는데 정말 좋았어요. ‘이래서 옮기자고 했구나’ 싶었죠저마다 편한 자리에 둘러 앉아 밥 먹고 차 마시는데공동 식사라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어요최근 2년 사이 문탁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거든요원래 밥을 먹던 2층은 세미나실이 나눠져 있어서 함께 먹을 수가 없었어요사람이 점점 늘어나니까 각자 밥 먹고 제 할 일 하러 흩어지면서 자연스러운 만남이나 이야기가 잘 이뤄지지 않은 느낌이 있었거든요.

홍영택(이하 뿔옹)처음에 파지사유라는 이 공간을 열었을 때는 일반 카페가 아니라 모두의 공유지라고 생각했어요이름도 그렇게 붙였고요그런데 주방을 이곳으로 옮기자는 의견이 처음 나왔을 때아주 사소한 일인데도 거부감부터 드는 거예요왜 그런가 생각해보니 평소 제도나 틀을 만들지 말자고 하면서도 스스로 어떤 생각 안에 갇혀 있었던 것 같아요규모가 커지니까 회사처럼 분리되는 느낌도 있고그런 면에서 이번 리모델링은 공간 뿐 아니라 고착화되려는 이 공동체의 그 무엇을 흔드는 작업이었던 거 같아요.

노라 규모가 커지면서 서로의 역할에 대한 고민도 있었어요파지사유 매니저가 따로 있었는데활동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몇 사람들에게 너무 하중이 쏠리는 거예요말로는 우리 모두의 공간이라고 하면서 어느새 자기가 맡은 일에만 집중하게 되는 것 같아서 다시 한 번 섞이는 게 필요하겠다고 판단한 거죠작년 말 워크숍에서 제일 많이 나온 얘기가 섞이자였어요사실 하던 걸 계속하고 싶은 습성도 있고하다 보면 그걸 더 잘하고 싶은 마음도 커지는데 그러면서 틀이 생기잖아요역할을 유연하게 교차하자는 뜻이 공간 구조를 바꾸는 데 반영되었어요공간이 바뀌면서 우리의 정체성역할도 바뀐 거 같아요.


:작은 모임으로 시작한 인문학공동체가 오늘에 이르기까지저절로 규모가 계속 커진 건 그만큼 자리를 잡았다는 뜻 아닐까요실험해보고자 했던 삶이 실현되고 있다는 점에서 좀 더 좋아지고 있다나아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노라:드나드는 사람이 많아졌지만 저희는 사람들이 그냥 강좌만 듣고 떠나길 바라는 건 아니에요공부와 관련해선 강좌와 세미나가 있는데요강좌는 강의만 듣는 거예요강좌보단 세미나가 더 적극성이 필요하죠한 달 2만원 회비로 모든 세미나에 함께할 수 있어요세미나 회원이 70~100명 정도 돼요강좌를 계기로 세미나도 같이 만들고더 밀착해서 자기 삶을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면 좋겠는데 강의만 듣고 스쳐가는 분들이 많은 현상이 저희는 좀 낯선 거죠허명이 아닌가숫자만큼 질적으로도 좋아진 것이냐 이런 성찰을 하게 됐죠.

뿔옹:일 년에 한 번 가을마다 인문학 축제를 하는데작년 주제가 ()성장과 좋은 삶이었어요공부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자본주의나 문명에 대해 질문을 던지게 되는데함께 잘 살아보자고 만든 이곳에서 우리마저도 성장의 관점에서 보고 있는 건 아닌가 고민이 생겼어 요그러다 보니 성장은 뭐고()성장은 어떤 것인지 질문이 생긴 거죠성장이나 발전은 수직적인 느낌이라면우리가 원하는 건 위로 올라가는 것보다 옆으로 퍼져가는 느낌, ‘전염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사람들이 많이 오면 물론 좋죠파지스쿨[각주:1]이나 청소년 강좌도 자리가 꽉 차면 좋겠지만그렇다고 단순한 양적 팽창을 원하는 건 아니에요이 안에서 개인과 개인의 고민이 보여야 하고한 사람 한 사람의 공부와 실천이 엮여야 한다고 생각해요사람들이 많아지고 일이 늘어나도공부와 이어지지 못하면 각자 맡은 역할 열심히 하는 조직 이 되어버릴 거예요저는 제일 중요한 게 관계라고 생각해요우리가 생각하는 성장은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수평적인 넓어짐이에요.

노라:규모에 따른 변화를 조절하는 데 큰 힘이 된 게 작년 인문학 축제였어요.‘()성장과 좋은 삶이라는 주제를 좀 뜬금없이 생각했던 사람들도 점점 더 진지하게 문탁의 삶자신의 삶 속으로 파고들며 서로를 성찰하는 계기가 된 것 같아요.

 

삶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앎은 소용이 없어요.”

 

:책 읽고 공부하는 모임이나 인문학공동체와는 다르게 서로의 삶 이 아주 밀착되어 있다는 느낌이 드는데요.

뿔옹:막막한 어느 순간공부가 삶을 바꿀 수 있겠다 싶었어요처음엔 여기저기 인문학공동체를 기웃거렸는데결국 문탁이 저한테 잘 맞았다는 생각이 들어요공부와 삶이 분리되지 않는다는 점이 가장 인상적이었죠전 파지스쿨에서 청소년들을 만나고 있는데 이 아이들을 바꾸겠다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 없어요뭔가 바꾸고 싶은 게 있다면 그건 바로 나 자신이죠내가 하는 것들을 통해 내 삶이 바뀌고 자연스럽게 좋은 사람시민으로 변화해가는 거 아닐까 싶어요제가 교사로서 이반 일리치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일리치가 얘기한 공존과 자율이 있는 삶을 정말 실현해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아이들을 만나는 거죠여기선 가르치는 걸로 끝나지 않고자기가 강의하거나 세미나한 내용이 바로 삶으로 드러나거든요그러니까 아이들도 에세이 쓸 때 힘들어해요정말 제대로 된 공부를 해보면공부가 무섭다는 느낌이 들어요뭔가 깊숙하게 알게 되면 그걸 외면할 수 없어지거든요문탁에서 오랫동안 같이한 친구들이 뭔가 새로운 세계를 알게 되는 걸 무서워하는 건 앎을 어떻게 삶에 적용할까를 고민하기 때문이에요그 부담감불편함이 언제가 그 친구들을 실천으로 이끌겠죠저희는 어찌 보면 그걸 제일 원하고 있는 거 같아요.

노라:실천을 고민하지 않는 것은 공부가 아니라는 생각은 문탁 사람들 대부분이 하고 있을 걸요최근 어떤 분에게 지적 허영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우리에겐 가장 충격적인 말이었어요. ‘왜 그렇게 쓸 데 없이 공부를 많이 해지적 허영 아니야?’ 이런 뉘앙스였는데 우리 가 충격을 받은 건 그 공부를 어떻게 삶으로 펼칠까 항상 고민하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 파지사유 한쪽에 마련된 기억의교실에는 단원고 2학년 7반 학생의 책상이 놓여 있다.


:앎과 삶의 연결은 모든 교육과 학문의 궁극적 이상일 텐데요공부 하는 것들을 삶에 반영해가는 방식들이 궁금해요.

뿔옹:혼자는 힘든데 같이 실천할 수 있으니까 좋아요대표적인 예로 2014년 문탁에서 ‘765 릴레이시위를 했어요탈핵을 공부하다가 누군가 그동안 인연이 닿았던 밀양 송전탑 문제에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고 했어요. “우리가 뭔가 행동해야 하지 않을까?” 같이 고민하다가 밀양 송전탑이 765Kw니까 76.5일 동안 분당에 있는 미금역 사거리에서 하루 한 시간씩 피켓 시위를 하기로 했죠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핵발전소나 전기에 대한 리플렛도 나눠드리고요문탁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참여했어요아주 어린 친구부터 청년어르신까지요책으로만 보는 것과 길에서 피켓을 들고 있을 때의 느낌은 아주 다르고밀양에 직접 가서 보는 것은 또 달라요.

노라:여기서는 말하는 게 겁날 정도로말을 꺼내면 그게 정말로 실현되고 일이 커져요세미나 끝에는 항상 그런 이야기가 나오거든요. “그래서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뭘까?” 혼자 집에서 읽었다면 그냥 지나갈 일인데함께 읽기 때문에 같이 할 수 있는 힘이 생기죠제가 미처 생각지 못한 실천을 하고 있는 친구를 이 안에서 만나기도 하고요(카페 입구에 있는 작은 책상을 가리키며) 저게 단원고 2학년 7반 아이의 책상이에요기억의 교실이란 이름을 붙여 저 작은 공간에 꾸리고 있죠지역에서 하는 행사인데 같이 참석하고 계신 분의 제안으로 저기 갖다 놓게 됐어요누군가의 실천으로 갖다놓은 단원고 책상에 앉아보고글도 써보고 하면 세월호에 대한 느낌이 아주 달라지죠그렇게 같이 실천하고 공부하는 것들이 서로 연결되는 거예요.

뿔옹:공부를 정말 제대로 하면실천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 같아요그런 세상을 알았는데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겠어요며칠 전에 밥 먹으면서 용인에 녹색당 플래카드 걸어야 하는데 돈이 없단다하나에 만 원이라던데” 이런 얘기가 나오니까 자연스레 같이 밥 먹던 사람 들이 돈을 걷어 보냈어요공식화하지 않아도 알음알음 그렇게 실천하는 거예요그런 고민들 속에서 가구를 제작하고 수선하는 마을목공소 월든도 생기고재봉틀이나 손바느질로 물건 만드는 봄날길쌈방천연 화장품 만드는 자누리 생활건강,이라고 하는 웹진 발행 같은 일들 이 마구 뒤섞여 생겨났죠.



할 수 있는 만큼 새로운 일들을 시도해요” 

 

뿔옹: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 새로운 일들을 시도해요경제를 공부하다 보면 그럼 자본주의를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되죠그래서 대안화폐 이라는 걸 만들었어요복 회원은 문탁에서 자신이 잘하는 일을 활동으로 연계해서 복을 벌고그 은 이곳에서 생산되는 물건을 사거나 프로그램 회비 내는 데 써요모두의 ’ 보유 현황은 매달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어요작년에 이 안에서 거래된 이 1억 복이 넘었더라고요그런데 이 대안화폐 또한 우리가 돈처럼 쓰는 게 아닌가 하는 고민도 하고정말 우리가 복을 시도한 이유가 뭘 까 다시 생각해보기도 해요공부와 이런 고민들이 오가다 보니 자본주의에서 자유롭게 자립을 해보겠다고 하시는 분들이 생기기도 해요.

노라:직장을 그만두고 이 안에서 버는 최소한의 생활비로 살아보는 거예요한 달에 딱 얼마만 벌고 가난하게 살겠다는 거죠이곳에서는 똑같이 일을 해도 각각 다른 금액의 복이 지급돼요예를 들어 저는 남편이 벌고다른 분은 혼자 벌어서 삶을 유지해야 하니까요똑같은 일을 했기 때문에 똑같은 임금을 가져가야 한다는 생각을 깬 거죠어떤 상황인지 고려해서 각각 다르게 주고이곳에서의 수입으로만 살아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흔쾌히 자기 복을 몰아주기도 하고요.

뿔옹:사실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생각보다 무척 많아요삶을 그렇게 바꾸기가 어려워서 그렇죠자립을 해보고 싶다고 하면 그 개인의 시도를 어떻게든 응원하고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그게 참 힘이 돼요새로운 실험을 해볼 수 있는 동력이 되기도 하고요.

노라:도시 속 생활이지만 이곳에서 지내다 보면 다른 소비가 많이 줄어요세미나를 여러 개 하니까 책값이 많이 들긴 하는데, ‘이어서가’ 라는 공유서재가 있고 홈페이지에 댓글을 올려서 서로 책을 빌려주기도 해요물건도 서로 공유하고요그리고 또 하나 선물이란 게 있어요우리는 스스로 선물과 우정의 공동체라고 말하는데실질적으로 밥값 2천 원을 받아서는 주방 운영이 안 되잖아요그런데 쌀이나 여러 식재료를 이곳에 선물로 주는 거예요. “이번 달에 기쁜 일이 있었어요” 하면서 쌀을 보내기도 하고집에 있는 채소를 가져오고 그래서 밥값 2천 원을 받아도 주방지기 활동비를 주고 돈이 남아요그래서 남은 돈은 젊은 청년들을 위한 길위기금에 보내고 있어요.

뿔옹:청년을 위한 길위기금은 공부를 하고 싶다거나뭔가 나름대로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싶은 청년들 누구나 신청할 수 있어요구체적인 결과를 강제하지는 않아요.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싶다니 응원합니다!” 하면서 지원을 해주죠다 끝난 다음에 뭘 했는지 꼭 글을 받기는 해요.

노라:보고서가 아니어도 일종의 기본소득 같은 이 실험을 하면서 그 돈을 어떻게 썼는지누구를 만났는지 궁금하니까요작년에 너댓 팀을 그렇게 지원했어요며칠 후에 복 포틀래치 가 있을 거예요그것도 세미나 하다가 얘기가 나왔는데 그거 재밌겠다!” 해서 시도해보게 된 거예요. ‘을 많이 쌓은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한꺼번에 나눠주는 거죠그런데 사람 심리라는 게 참 묘해요복이 아주 많이 쌓이니까 흔쾌히 내놓기 싫은 마음도 생기는 거예요그럴 땐 왜 그런 마음이 드는지 생각해보자” 하고 얘기를 나눠요책으로 공부할 때는 당연히 부의 축적을 비판하고 부자들 세금 많이 내야 한다 하지만 막상 내가 많은 것을 쥐고 있으니 놓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알게 되는 거죠.


:새로운 시도들도 재밌지만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생각들을 공개적으로 나누면서 정말 많은 공부가 될 것 같아요. “넌 왜 갖고 있는 돈을 나누지 않아?” 이렇게 묻는 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이렇게 크고 작은 일들이 벌어지는데결정과 실행 단위는 정해져 있나요?

노라:정해져 있지 않아요그때그때 필요한 사람들이 결합해요늘 공개되어 있다는 게 특징이긴 하죠주로 먼저 얘기 꺼낸 사람이 관심 있는 사람 누구든 모이라고 공지를 해요모일 때마다 사람이 달라지니까 계속 다시 설명해야 하긴 하지만 늘 개방된 구조를 유지하려고 노력하죠예전에 어떤 강사분이 오셔서 다른 공동체와 문탁의 다른 점은 세미나를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어요같이 공부를 한다는 게 정말 큰 힘이 되는 거 같아요그러면서 자기를 바꾸고 조율해가니까.

 

:그냥 공부가 아니고 사유하며 삶을 다듬는그야말로 자신을 연마하는 일종의 수련 같은 거네요.

:맞아요수련저희가 보는 책들이 좀 일반적이지는 않으니까 어떤 분은 지적 허영이다잘난 척 한다이렇게 보실 수도 있을 거 같아요학자가 아닌 사람이 푸코를 읽고 마르크스를 읽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니까요그런데 우리에겐 단순한 공부가 아니라성찰과 수련의 근 본이 되고 있어요그리고 또 하나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는 건 이에요신기한 게 아무리 오래 강좌를 들어도 밥을 같이 안 드시면 이곳이 어딘지 잘 모르시는 것 같아요그냥 독서 공동체 정도로 생각하신다 할까요그런데 오자마자 자진해서 밥 당번 하러 오는 분들은 금방 가까워져요. 20~30명의 회원들을 위해 밥을 준비하다보면 공동체와의 접속이 깊어지는 것 같아요.

노라:적당히 거리를 두고 필요한 공부를 하면서 적당히 자원봉사한다는 마음을 가진 분들과는 갈등은 없지만 쉽게 가까워지지가 않아요그래서 우리는 갈등은 일어나야 하는 거라고 봐요사람 사이의 감정을 풀어가는 게 정말 좋은 공부잖아요규모가 커지니까 예전보다 갈등이 있는데과정의 일부로 보고 중요하게 생각하죠중간에 그만두는 분도 있지만시간이 지나면 서로의 입장이 다시 이해가 되기도 하고 그래요얼마 전엔 이런 일이 있었어요리모델링을 하면서 책장을 복도에 두기로 결정했는데 와보니까 다른 곳에 놓여 있는 거예요근데 사람들이 우리는 이렇게 결정했는데 왜 여기 놓았어?”라고 하는 게 아니라 “ 저 분은 저기 놓고 싶었구나” 하는 거예요그 자리가 좀 별로라고는 생각하지만 거기 놓고 싶었던 그 사람의 의견을 존중해주고 싶은 거죠원칙이라도 서로의 감정을 존중하며 유연하게 바꿀 수 있는 것이게 갈등을 풀어가는 과정 아닐까 싶어요물론 갈등이 있으면 힘들고 아프지만 갈등은 없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니 좀 여유가 생기는 것 같아요.

 

:시스템이 정해져 있어서 거기 맞추는 게 아니라개개인의 삶의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마음이 모이고 그 방법을 같이 찾다 보니까 나중에 시스템이 갖춰지는 재미난 방식인데요.

뿔옹:저는 그것을 우정이라 부를 수 있을 거 같아요사실 완벽한 만장일치는 불가능하잖아요억지로 만장일치를 시키고 나서 더 불편할 수도 있고요. “이 사람에게 무척 중요한 거니까 내 의견과 다르지만 한 번 해보자” 했을 때 놀라운 경험을 여러 번 했어요그 사람 의견대로 해봤는데 좋은 거예요내가 원하는 걸 해야 좋은 결과를 얻을 것만 같았는데 내 뜻이 아닌 타인의 의견에 따랐더니 더 새로운 장이 펼쳐지는 경험그 사람 덕분에 막혀 있던 내 선택이 더 넓어지는 경험을 하게 되는 거죠이걸 우정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노라:작년 인문학 축제 때 반()성장을 주제로 나왔던 이야기는 사회나 제도에 대한 것도 있었지만 뜨거운 논쟁을 일으킨 건 개인의 이야기였어요탈핵을 공부하면서 전기를 적게 써야겠다거나 자동차를 좀 덜 타고 자전거를 타야겠다 하는 개인적 성찰들특히 스마트폰에 대 한 이슈도 뜨겁게 타올랐고요스마트폰을 쓰지 않는 사람들이 배제 되는 문제빠르긴 하지만 제대로 소통되지 않는 현상에 대해 여러 이야기가 나왔어요. 20대는 40~50대에게 자동차를 타지 마라” 40~50대는 젊은 사람들에게 카톡 좀 그만 해라”, 서로 그것만은 포기할 수 없다!” 하면서 접점을 찾을 수 없는 뜨거운 논쟁을 벌였죠.

뿔옹:전체적으로 이렇게 하자는 건 아무것도 없지만 서로가 잘 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투명하게 이야기해요실제로 그런 논쟁 후에 고민을 하더니 자동차를 팔고 대중교통으로 다니는 분도 있어요.

노라:초기에는 아줌마들이 많고 대학생이나 젊은 사람남자가 없는 것이 특징이었는데 지금은 청년부터 엄마 따라오는 아이들까지 여러 세대 사람들이 어울리고 있어서 활동이 더 다양해졌어요작년 인문학 축제를 기점으로 연말과 올해 초에 걸쳐서 뭔가 무질서 속에서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가는 게 느껴져요.

뿔옹:얼마 전 리모델링을 하면서 몇 년에 한 번은 이사를 해야겠구나’ 생각했어요일손이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강제 규율도 없는 자율적 상황에서 누구는 일을 많이 하느라 힘들고누구는 못 나와서 힘든 과정을 겪었어요그러면서 단순히 공간이 바뀐 게 아니라 이 안에 있는 구성원들의 관계와 감정들도 흔들리면서 다시 자리를 잡는 느낌이 있었거든요다툼과 갈등도 일어나지만우리에겐 그게 좋은 공부가 되었던 것 같아요그런 일이 벌어져서 더 좋았어요공간만 근사하게 바꾼 게 아니라공간이 바뀌면서 사람도 바뀌는구나생각했어요.”

* * * 

그들의 이야기 속에 인상 깊게 자주 등장하는 표현은 공부하다 보니자연스럽게였다대표도 없고 조직표도 없지만 역동적으로 일이 생겨나는 건 구성원 개인의 자발성이 동력이라는 뜻이다의도하되 형식화 하지 않은 실험과 도전짧은 시간 동안 강한 변화를 겪으면서도 본연의 추구를 잃지 않는 문탁의 힘은 자율적인’ 성찰과 자정 능력에 있지 않을까 싶었다공부와 삶을 세상과 연결해가는 공생의 네트워크 속에 작은 민주주의의 꽃이 피어나고 있는 듯했다.





  1. 1년 과정의 파지스쿨은 '공부와 밥과 우정의 청소년/청년 공동체'로 열일곱 이상의 청소년, 청년이 모여 글쓰기, 고전, 인문, N프로젝트 통해 공부와 삶을 이어가는 네트워크이다. [본문으로]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