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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스토리

[국가/학교/가족] 우리가 알던 가족의 종말

by 홍차영차 2013. 11. 27.



우리가 알던 가족의 종말     by 야마다 마사히로 (그린비)

 

가족의 구조 조정, 기생적 싱글? 처음 책을 접하게 되었을 때, 가족도 기업처럼 구조 조정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하는 것 혹은 함께 살고 있는 자식들을 기생하고 있다고 표현하고 있어 좀 심하지 않은가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가족’의 형태는 기껏해야 몇십년의 이력을 가지고 있을 뿐 언제나 이상으로 추구하던 모습이 아니었다. 더 높은 생산력과 고도의 노동력을 지속적으로 공급할 수 있도록 산업자본주의에 의해서 형성된 근대적 형태일 뿐.

 

이 책이 일본에서 출판 된 것은 1999년이고 인용된 자료들은 80년대 말부터 90년대 초반까지 일본의 사회구조적 모습이다. 그런데, 책을 읽다 보면 일본 사회에서 드러나는 문제점들과 자료들은 과거의 일본 모습이 아니라 바로 지금의 우리 대한민국을 분석해 놓은 것으로 착각할 정도로 유사한 점이 많았다. 일본은 전후 고도 성장기를 맞아서 남편-, 부인-전업주부 형태의 가족이 형성되었다. 이러한 가족은 지역 공동체를 떠나서 독립적으로 기능하게 되었고, 산업자본주의가 요구하는 생산력의 고도화와 노동력의 고도화를 이룰 수 있게 만들었다. 과거와는 달리 여성이 전업주부로 있게 되어 남성은 일에만 몰두할 수 있고, 가족은 아이들에 대한 교육에 더욱 힘을 쏟아 자녀들로 하여금 자신들보다 높은 학력-노동력의 고도화-을 가질 수 있도록 하였다.

 

경제가 성장할 때에는 이러한 남편-샐러리맨, 부인-전업주부의 가족 형태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1960년대까지 유럽과 미국의 가족 형태를 살펴보면 위에서 언급한 가족제도가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경제가 고도성장기를 지나 저성장 경제에 들어서면서부터 미국과 유럽의 가족 형태가 변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저성장 경제 모습이 일본에서는 80년대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문제없는 이상적인 모습을 보이는 애정이 가득한 가정은 미국이나 일본 모두 비슷하다. 다만, 재미있는 것은 가정에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다. 미국의 경우 부부간의 애정이 식고, 대화가 통하지 않을 경우 가족의 질서보다는 개인의 감정을 우선시하여 가족 안에서 적극적 구조조정이 발생한다. 하지만, 일본의 경우 문제가 생겼을 때에는 개인의 감정을 드러내기 보다는 가족의 질서를 더 우위에 두게 되어 제대로 된 구조 조정이 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일본 가정 내에서는 해결되지 않는 가족 내에서의 감정 규제로 인해서 가정 내 이혼, 아내들의 사추기와 같은 외상청구서가 발생한다.

 


저성장의 경제가 형성되면서 드러나는 다른 문제점들 중 하나는 저출산과 기생적 싱글의 출현이다. 저출산이라고 하면 결혼한 부부들이 아이들을 적게 낳는 것이라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통계를 잘 살펴보면 출산율이 낮아지는 이유는 미혼 독신들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결혼한 부부들은 예나 지금이나 아이들을 낳고 있다. 다만, 결혼하지 않는 독신들이 늘어나기 때문에 출산율이 낮아지는 것이다. 특히, 미혼 여성들이 부모와 함께 사는 경우가 증가하는데, 이들은 부모에게 생활비는 거의 내지 않으면서 급여의 대부분을 마음대로 사용하고 집안일은 어머니가 해 주고 있다. 이런 생활에 익숙해지다 보면 자신의 부모보다 더 높은 경제력을 가진 남자를 만날 때까지 결혼하지 않게 된다. 야마다 마사히로는 이를 부모에게 기생하는 싱글이라 부른다. 사실, 이는 부모들이 자녀의 기생을 허용하기 때문이다. 남성들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아버지보다 더 좋은 학벌을 갖기도 힘들뿐더러, 높은 학력을 갖추었다 하더라고 더 나은 경제력을 갖추기가 어려워 경제력을 가진 남성으로 결혼을 하기가 힘들어진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식어진 감정으로 가족을 유지할 필요는 없는 것인가 혹은 더 나은 경제력을 가진 남자가 없으면 결혼하지 말아야 되는가? 이 책의 시사점은 다음에 있다고 본다. 우리가 알던 ‘가족’이라는 형태는 불변의 존재가 아니라는 것. 현재 가족 제도는 사회 구조적으로 알맞게 형성되었던 형태이므로, 사회가 고도성장기에서 저성장구조로 변했으니 가족의 형태와 우리의 의식도 변할 필요가 있다고 강하게 이야기한다. 남성은 여성을 대등한 존재로 바라 볼 수 있어야 하며, 사회는 여성이 차별받지 않고 남성과 동등한 수입을 얻을 수 있는 직장 환경이 필요하다. 질서 구조 속에서만 가족을 대해서는 안되고, 상호 충분한 소통으로 개인의 감정을 중요시 해야한다.  

 

결국,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변해야 하는 것은 나의 의식이다. 이제 고민할 것은 어떻게 하면 변화된 사회구조 속에서 나의 의식을 적응하게 만들 것인가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시대를 따라가서도 안 될 것이다. 왜냐하면 세상은 계속해서 변화해 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전근대 시대에서 근대로의 이행과 달리 지금은 조금 더 변화 속도를 높이고 있는 상황이니 이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고민하는 철학하기는 내가 살아가는 데 피할 수 없는 책무가 되는 것이다.


2013.1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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