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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호메로스

일리아스, 영웅들의 전장에서 싹튼 운명의 서사시

by 홍차영차 2013. 8. 15.



일리아스, 영웅들의 전장에서 싹튼 운명의 서사시 by 강대진 (그린비)

 

신앙을 갖기 시작해서 20대 초까지는 신앙서적이나 신학서적은 거의 읽지 않았다. 당시에 내가 그러한 책을 읽지 않은 이유는 신앙을 위해서 그러한 '관련'서적을 읽는 시간에 바로 원전인 성경을 보는 것이 더 옳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러한 나의 신앙 패턴을 바꾸게 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독서를 통해서 성경을 더욱 잘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우연찮게 읽게 된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책들을 읽으면서 성경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새로운 관점은 얻게 되었고, 이후로는 자연스럽게 책을 통해서 조나단 에드워즈, 아더 핑크 같은 좋은 저자들의 책들을 연이어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신학 서적을 보면서 기본적인 구약성경의 구조는 어떻게 되어 있는지, 각각의 성경들간의 관계는 어떤지, 그리고 신구약을 이어주는 전체 맥락을 이해하게 되면서 꿀처럼 달다는 성경의 참맛을 실제 경험하게 되었다. 이후로 좋은 신학서적이 주는 이로움을 몸소 체험하면서 이제는 남들에게도 이러한 관련 서적들을 읽어볼 것을 권하게 되었다. (블로그 초반에 소개한 책들 영적침체, ’Why does God allow war’ by 로이드 존스)

 

이와 같은 경험 이후로 나는 고전 원서와 평론 혹은 리라이팅의 관계를 책의 농도 차이로 이해하고 설명해 주고 있다. 즉, 너무 짙은 농도를 감당할 수 없을 때는 낮은 농도의 책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다. 무협지나 만화를 읽다 보면 평범하게 보이던 한 사람이, 우연하게 신비로운 약을 먹고 엄청난 내공과 무술 실력을 갖게되어, 원수를 갚고 천하를 주름잡게 된다는 이야기를 많이 접하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모두가 그 약을 먹고 무술 천재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설정이다. 주인공은 항상 잠재적인 공력 혹은 하늘이 내려준 타고난 몸을 가지고 있었다. 즉 내공이 약하거나 혹은 신체적으로, 심리적으로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이 신비의 약을 먹게 되었을 때는 죽음에 이르거나 거의 죽을 정도로 몸과 마음이 망가져 버리기 것이다. 그 엄청난 내공에 알맞은 신체적, 심리적인 변용이 뒤따라야 함은 말할 필요도 없이 당연한 것이다.

 

고전과 리라이팅은 바로 그런 관계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고농도의 약을 먹을 수 있는 공력, 즉 고전을 읽을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하는데,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을 때에는 바로 고전읽기를 시도하기 보다는 읽기 위한 공력을 먼저 쌓아가는 것이 낫다고 생각된다. 혹여 고전을 읽으려고 시도했다가, 이제 다시는 고전을 읽지 않겠다는 상한 맘을 갖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나에게는 서양 고전의 제일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일리아스’, ‘오뒷세이아가 바로 이런 경우이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나는 그리스/로마 신화에 대한 관심도 지식도 전무했던 터라 원전을 읽기 전에 역사적 배경, 지리적 위치, 서사 구조에 대한 이해 등 공력을 먼저 쌓는 것이 필요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바로 그린비 출판사의 리라이팅 클래식의 일리아스이다.

 


본론으로 들어가보면 역시 알지 못하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여행은 나에게 새로운 지적 호기심과 열정을 다시 살아나게 했다. 트로이아 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나, 트로이아 전쟁의 원인이 된 그 유명한 파리스의 심판이나 아킬레우스라는 이름조차 익숙하지 않았으므로 처음 몇 권을 읽어갈 때에는 만만치 않은 인내심이 요구되기도 했다. 하지만, 책을 읽어 갈수록 4일간의 전투를 통해서 트로이아 전쟁 전체를 이해할 수 있도록 배치해 놓은 이야기 구조라든지, 영화적 기법처럼 느껴지는 장면과 장면을 연결하는 호메로스의 묘사기법은 박진감이 넘쳤고, 당시의 전쟁 모습을 상상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공력이 조금씩 쌓아 지는 것 같다는 느낌.

 

 ‘일리아스에 관한 첫 책을 읽으면서 새롭게 느끼게 된 것은 이 책은 단지 트로이아 전쟁을 묘사한 스펙타클한 전쟁사에만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니 그보다 더 인상 깊이 기억되는 것은 전쟁에 등장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심리 묘사와 사람들간의 그리고 사람과 신과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이다. 인간사의 흥망성쇠를 개인들의 심리 변화나 전쟁의 순간적인 상황이 달라지는 것으로 이 짧은 전투 안에서 느낄 수 있도록 했으며, 때로는 신들의 개입으로 혹은 개인적인 마음 상태의 변화로 흔들리는 인간 본연의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다. 2000년도 휠씬 더 된 이야기이지만, 이러한 인간의 심리 상태를 살펴보게 되면 인간 본연의 모습은 한 치의 발전도 없었던 것처럼 저자의 묘사에 격한 공감을 느끼게 된다.

 

서양의 많은 문학, 철학, 영화, 연설 등에서 왜 그리스/로마 신화의 장면 장면을 언급하고, 강조하고 싶은 상황이나 자신의 심리를 묘사할 때 영웅들의 비유를 인용하는 이유를 조금은 알 수 있게 되었다. ‘일리아스오뒷세이아를 통해서 서양 문화 뿐 아니라 우리 인간에 대한 이해를 더 깊이 할 수 있겠다는 지적인 욕심 외에도 그리스/로마 신화는 그 자체로도 재미와 호기심을 주기에 충분하고, 생각할 것들이 많이 있는 것 같다. 어떻게 희랍인들은 이렇게 오랜 전에 이런 멋진 문화를 만들어 낼 수 있었을까? 다른 지역과는 달리 그들의 신들은 인간과 동일한 면 혹은 인간들보다도 더 인간적인 모습을 많이 보여주는데 그 원인이 무엇일까? 이런 찬란한 문화를 만들었던 그리스인들은 왜 무너지게 되었을까? 

 

이런 점들을 생각하면서 오뒷세이아를 읽어보고 싶고, 리라이팅 저자가 강조한대로 원전을 읽어보고 싶다. 모두 함께 고전문학의 바다로 함께 빠져 보기를 권해 본다.

 

2013. 08.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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