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의 글에서 '시각 중심적 세계'니, '세계와 문자 사이의 간극'이라고 말한 것은 아래와 같은 정신공간의 변화 - 구술문화에서 문자문화로의 변화를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즉, '시각 중심적 세계'라는 것은 단순하게 문자, TV, 컴퓨터 같은 기술들이 많이 생겼다는 것을 넘어서 우리가 인식 중심의, 의식과 이성 중심의 세계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뜻합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강의나 세미나에서 자주 이야기했던 것이어서 혹시 처음 접하시는 분들은 정신분석과 예술을 참고해주세요.)

시각중심적 세계가 되었다는 것은 자기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보다는 일종의 가면(페르소나)을 쓰고 사회적 생활을 하는 시대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처음 자아가 발명된 데에 최초의 시각적 기술이라고 할 수 있는 문자였다는 사실입니다. 이후에 비주얼 텍스트라고 하는 현재와 같은 책의 모습(을 갖추게 된 기술),과 컴퓨터와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디지털 문자로 인해가 내면의 복잡성이 아주 높아졌죠. 20세기까지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사회적 가면이 자신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아왔습니다. 20세기말부터 이런 모습에 일종의 균열이 일어났죠. 사회적 가면을 벗고 자신의 본 모습을 드러내려는 시도들.
시각중심적 세계가 되었다는 것과 음악(예술)과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바로 앞에서 보았던 유메카 나카가와의 연주를 우리는 보았던 걸까요 아니면 들었던 걸까요? 뭘 그렇게 구분하냐, 그렇게 구분할 수 있는거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조금 더 세밀하게 보면, 우리는 처음 나카가와의 연주를 (듣지 않고) 보았다고 말해야 합니다. 본다라는 것은 '인식'한다 혹은 '이해'한다라는 말과 상통합니다 구술 문화의 특징이기보다는 문자 문화의 특징이 드러나는 부분이죠.
나카가와의 연주를 처음에 쇼츠로 접하게 되면 우리는 음악을 듣는 것이 아니라 보게 됩니다. 보게 되었다는 것은 그 표정과 몸짓을 보면서 '슬픈 감정'이라고 이해하고 모방하게 됩니다. (모방 부분은 조금 뒤에 스피노자의 감정역학을 통해서 이야기하겠습니다.) 쇼츠를 보게 되면서 듣기 전에 먼저 '슬프다'라고 인식하게 되면 이후에 들리는 연주는 슬프게 들립니다. 만약에 그 괴리가 크다면 당연히 연주가 이상하다든가 인위적이라고 느끼게 되겠죠.
뇌과학적으로 보면 현재 감각정보를 받아들이는 대뇌피질에서 시각이 차지하는 비율은 30%가 넘는다고 합니다. (<더 브레인> 참고) 즉, 시각적으로 먼저 그것을 '슬프다'고 인식하면 당연히 뇌가 슬픈 감정일 때의 세팅으로 바뀝니다. 그러면 이후에 듣게 되는 연주는 자연스럽게, 비슷한 범주에 들어오는 감각정보라면 '슬프게' 느껴지게 됩니다.
그러면 음악을 들을 때는 보기 전에 듣는 게 맞는거구나 생각할 수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맞습니다. 사실 음악은, 소리는 어떤 의미를 갖지 않습니다. 도-미-솔이 도대체 무슨 의미를 갖겠습니까? 솔-시-레는 어떻구요. 하지만 역설적으로 시각적인 정보, 다시 말해서 그 음악에 대한 이해(인식)는 음악을 잘 듣는데 큰 역할을 합니다.
예를 들어 제가 말러 1번 교향곡을 들을 때, 초반에 나오는 팀파니 소리를 전혀 듣지 못했습니다. 이 팀파니 소리가 교향곡의 분위기를 바꿔주기 때문에 중요한 부분이었습니다. 그런데 말러 1번 스코어를 보면서, 팀파니 소리가 바로 이 부분에서 나타난다는 설명을 듣고 난 이후, 즉 인식하게 되면 놀랍게도 그 소리가 들립니다. 스코어를 보지 않고도 팀파니 소리의 변화가 아주 세밀하게 들린다는 사실입니다.
어떻게 해서 들리지 않던 소리가 들리게 될까요? 니체가 이야기를 가져와 보겠습니다. "우리는 보이는대로 읽지 않고 들리는 대로 듣지 않는다." (<즐거운 학문> 참고) 우리가 책을 읽을 때 우리는 책에 있는 단어를 보이는 그대로 읽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소리내서 책을 읽다보면 우리는 보이는대로 읽지 않는다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습니다. 의외로 우리는 자신이 이전에 알고 있던 단어, 혹은 자신의 머릿 속에서 자주 생각하던 단어와 비슷한 것이 나오면 그 단어로 읽게 됩니다. 소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뇌의 뉴런들이 이전에 들었던 패턴에 맞춰서 길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새로운 리듬이나 선율이 나오면 이전에 들었던 가장 비슷한 길과 연결시키려고 합니다. 우리의 감각 체계는 물론이고 인식 체계는 익숙한 것을 좋아하고 새로운 것을 배척합니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새로운 뉴런 패턴을 형성해야 하기 때문에 에너지가 더 많이 소비되고 일종의 고통이 수반됩니다. 즉, 아직 듣지 못했지만, 시각적으로, 인식적으로 팀파니 소리의 공간을 열어놓으면 들리게 됩니다. 그렇지 않을 때는 마치 컴퓨터가 중요하지 않은 소음들을 없는 것처럼 처리하는 방식이 자신의 감각에서도 작동한다는 사실입니다. ^^;
시각 중심적 세계에서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이런 상황에 처해있습니다.
처음에 분석하지 않고 탐구하지 않고 인상으로만 감각만으로 음악을 들어도 됩니다. 인상적 마주침을 부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 음악을 더 잘 알고 싶다면 탐구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인식하고 이해하면 그 음악이 열어놓은 새로운 공간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의외로 마음대로 상상하지 못합니다. 오로지 자신의 경험 안에서 자유롭다고 상상할 뿐입니다. 하지만 열린 마음으로, 열린 감각으로 새로운 음악을 들을 때, 문학을 읽을 때 상상의 경계가 무너집니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상상 너머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훨씬 더 풍요로운 세계를 맛볼 수 있습니다.
시각 중심적 세계에서 '시각적인 것에만' 몰두한다면 세계를 더 작아집니다. 반대로 시각 중심적 세계에서 '시각(인식)의 특성'을 맘껏 활용한다면 다른 감각들과 합쳐져서 이전에는 경험해보지 못한 것들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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