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오르기 첫째날 - 오랜만에 몸을 써서 그런가. 저녁까지는 괜찮았는데 감기몸살이 새벽까지 비명을 질러댔다. 새벽내내 기침과 한기가 느껴져서 몇겹의 이불과 옷을 입고 잤다. 새벽까지 계속되는 기침에, "아, 이 상태로는 오늘 가지 못하겠는걸." 하고 생각했다. 그렇게 8시쯤 일어나서 소파에 누워 음악을 듣다보니 몸이 좀 괜찮아진다.
책을 읽을 정도로 정신이 멀쩡하지 않으니 이전에 초안을 만들었던 세미나 공지를 올리고 가야겠다. 오타도 점검 못하고, 12시반까지 3개의 공지를 후다닥 올리고 백남준아트센터로 갔다. 오늘은 전혀 막힘이 없어서 1시간도 걸리지 않은 느낌이다. 오늘은 20분 전쯤 도착해서 백남준아트센터의 전시를 살짝 둘러봤다. 스쳐지나가듯 보았지만 백남준은 비디오아티스트라기보다는 그냥 예술가 아니면 행위예술가에 더 가까운 느낌이다. 다음에는 시간을 들여서 찬찬히 한번 봐야겠다. 2시 곧바로 시작!




손나예의 설명으로 호흡 모아보기 움직임 시작.
두 사람이 짝을 이뤄서 한 사람이 누워있는 사람의 몸을 터치하고 있으면, 누워있는 사람은 호흡을 그곳으로 모아본다. 호흡을 모아보다가 누워있는 사람은 스스로 소리를 내면서 그 소리가 어떻게 몸에서 움직이는지, 그곳으로 모이는지를 느껴본다.
첫번째 움직임은 말 그대로 호흡에 대한 연습이다. 그런데 호흡을 손으로, 혹은 위장으로, 허벅지나 발바닥으로 보낸다는 게 뭘까? 내가 한 것은 발바닥에 집중하고 호흡을 그곳으로 보낸다고 생각하는 방식이었다. 재미난 점은, 심장 가까이 혹은 폐 가까이에 있는 곳으로 호흡을 보낼 때는 들숨을 하게 되고, 손바닥이나 허벅지로 호흡을 보낸다고 할 때는 날숨을 쉰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것인데 좀 신기했다.
함께 짝을 했던 분 - 한국무용전공-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런 작업은 춤에 있어서 아주 중요하다고. 팔로 호흡하고, 몸으로 호흡하는 연습을 많이 한다고. 사실 이 움직임은 뭐가 뭔지 잘 모르겠다. -.-;
바로 이어서 김원영의 설명으로 두 사람이 함께 장력으로 움직이는 작업을 해보았다.
오늘 몸오르기 작업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작업이다. 한 사람은 리더가 되고, 다른 한 사람은 팔로워가 된다. 리더는 손 바닥으로 팔로워의 손목부분에 접촉한다. 손목을 잡는게 아니라 그냥 닿아있다는게 중요하다. 팔로워는 눈을 감고, 리더의 움직임에 따라서 몸을 움직여본다.
이게 생각보다 어려웠다. 어려웠다. 손목을 잡지 않았기 때문에 팔로워를 리더가 이끌기 위해서는 서로 아주 집중된 감각을 유지하면서 감각을 좀 더 확장해야했다.
손목을 미는 방향으로 인도하는 것은 당연히 쉽다. 압력이 강하니 그쪽으로 움직이면 된다. 문제는 미는게 아니라 내쪽으로 이끌때다. 그러면 리더의 손바닥은 팔로워의 손목을 미는것이 아니라 손목과 떨어지는 방향으로 움직여야 한다. 팔로워가 리더와의 접촉에 민감하게 반응해야만 떨어지지 않고 함께 움직일 수 있다.
리더가 이끌고 팔로워가 따라간다고 했지만, 실제로 이 작업을 해보면 누가 누구를 이끄는가가 명확하지 않다. 수동과 능동의 혼합이다. 이쪽으로 움직인것이 과연 리더의 의지인지 아니면 손바닥과 손목 사이의 접촉을 상호적으로 반응하면서 이뤄진 것인지 혼동되기 때문이다. 이건 내 의지야라고 말하지만 사실 많은 선택들은 이렇게 이뤄지는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움직임에는 수동도 능동도 없다.
이어서 조금더 확장된 움직임이 이어졌다. 리더는 팔로워를 움직이게 하는데, 어느정도 움직이고 손바닥을 떼면 팔로워는 그 방향으로 계속 움직인다. 마치 물 위에서 종이배를 밀어보내면 그냥 그 방향으로 살살 움직이는 배처럼 움직이면 된다. 누군가와 부딪힐것 같으면 리더가 다시 손바닥으로 움직임을 막고 다른 방향으로 보낸다.
리더의 역할도 흥미로웠지만 여기에서는 팔로워가 되는 순간 아주 재미난 경험을 하게 된다. 리더를 신뢰하면서 돛단배처럼 보내진 방향으로 몸을 살살 움직이면 뭔가 아주 자유로운 기분이 들었다. 분면 이건 리더에 의해서 보내진 것인데 왜 나는 자유롭다고 느낄까? 물결 위에서 물결따라 움직이는 배를 생각해보면 그 배야말로 정말 자유로운 것이 아닐까.
마지막에는 더 확장되어서, 리더의 손바닥과 떨어진 팔로워는 다른 리더의 이끔을 받아서 가기도 하고, 또는 팔로워끼라 만나기도 하며, 3~4명의 팔로워-리더가 혼합되어서 움직이기도 했다.


잠시 쉬고, 이후에는 하은빈의 주도로 '움직이는 조각상' 작업을 했다.
움직이고 멈추고를 반복하면서 마치 '움직이는 조각상'이 되보기. 움직일 때는 내면의 충동을 잘 파악해서 움직이거나 외부의 소리나 주변상황에 맞추어서 그에 맞는 동작을 만든면 된다.
몸오르기 작업에서 어쩌면 가장 접근성이 좋은 방식이었다. 나는 거대한 나무처럼, 움직이다가 서고, 뿌리가 되어 땅바닥에 박히기도 하고, 벽면을 타고오르기도 하는 모습으로 조각상을 만들어보았다. 그런데 이렇게 각자가 하는 모습이 20여명이 집단적으로 움직이다 보니, 이것 자체가 하나의 작품인것 처럼 보였다. (관람객들이 보기에는 아주 흥미로웠거나 아니면 미친 사람들...로 보이지 않았을까.)
이 작업도 처음에는 홀로 움직이는 조각상으로 형상화했는데, 중반 이후에는 서로가 연결되고 반응하면서 3~4명이 함께 움직이는 조각상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2명 이상과 연결해서 하는 작업은 좀 어렵게 느껴졌다. 일단 한명정도와의 호흡이나 반응이 내 역량이었던듯 하다. ^^;
물론 마지막에 거의 30분이 되는 즉흥공연을 했지만, 이보다 더 재미나고 폭발적이었던 것은 바로 '움직임 씨앗 키우기'였다.
몸오르기 참석자들이 전시관을 둘러보면서 자신을 각각의 장소에 심고, 그곳에서 씨앗을 심듯이 자신을 심고, 그곳에서 자신만의 동작을 키워오면 된다.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면 자신이 키워온 동작을 가지고 TV정원에 와서 심으면 된다.
설명은 이랬지만 사람들은 1층 전시관 여러곳에서 마치 미친 사람들처럼(?) 자신만의 움직임을 형성했다. 벽에 붙어서 움직이는 사람, 철제난간에 오르락내리락 하는 사람, 물고기가 있는 전시물 앞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는 사람들. 정말 오늘 왔던 사람들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전시-공연을 보았을것 같다.
나는 백남준의 자석에 영향받는TV를 모티브로 동작을 만들었다. 원래의 화면이란 없다. 자석이 움직이는대로 기상천외한 모습으로 변하는 TV속 총천연색의 변화. 손으로 전파가 계속해서 왔다갔다하는 듯한 파동을 만들고, 주변에 사람들이나 소리가 있으면 그에 맞게 진폭과 크기가 변하는 동작을 만들어봤다.
그런데 사람들이 TV정원에 모였을때는, '움직임 키우기'라기보다는 일종의 광란의 춤을 추는 사태(?)가 발생했다. 타무라 료의 음악이 아주 강렬했던 것이 문제였던것도 같다. 사람들은 서로 엉켜서 움직이고, 광신도가 신들에게 기도하는 듯한 모습들으 보여줬다. 그 와중에 나는 여전히 나의 모티브를 유지하면서 '씨앗에서 나무로 또 꽃이 피고 져서 날라가는' 모습을 형상화했다는 사실.
마지막 즉흥공연에서 어제와 오늘 함께 했던 장력움직임이나 전달하고받기, 움직이는 조각상과 같은 움직임을 적극적으로 표현했다. 내가 했던 것은 여기에서 관객과 참여자의 경계를 무너트려보기였다. 나는 실제 우리를 지켜보는 관람객들 옆에서 똑같이 즉흥공연을 보기도 했고, 또 무대(crossing the line)로 가서는 반대로 나는 이 공연과 상관없다는 듯한 태도로 공연자들을 냉정하게 처다보았다. 또 무대 위에서 반대로 우리를 지켜보는 사람들을 똑바로 바라봤다.

IS THIS DANCE? YES. MAYBE. WHY NOT?
어제 3시간 반, 오늘 3시간 반. 꼬박 7시간동안 '몸오르기'를 했다.
20명이 넘는 사람들, 김원영-손나예-하은빈-타무라료와 함께.
마지막에 이야기를 하면서는 모두가 공통적으로 각자가 자신의 몸에 몰입하면서 서로가 쑥스럼 없이 몸오르기를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무용이나 공연을 하는 분들이 많았는데, 이 분들도 오랜만에 아주 본연적인 감각을 회복하고 확장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개인적으로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오늘도 '내면으로부터의 시선'에 내가 묶이지 않았다는 사실.
'이렇게 움직이면 창피하지 않나', '여기서 이렇게 바라보면 부담스럽지 않을까', '지금 나가서 해도 될까' 이런 물음이 잘 생기지 않았다. 한 마디로, 나는 어제와 오늘 '아무런 의미를 생각하지 않는 7시간'을 보내서 좋았다. 의미가 없다고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은 것이 아니다. 의미가 없어도, 목적과 목표가 없어도 삶은 일어나고 또 건강하게 지나간다. 아니 그럴때 더더욱 일체감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
물론 이런 후기를 쓰면서도 나는 이런 것까지 이렇께 '의미화'시키는구나라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몸오르기'를 통해서 조금 더 나에게 솔직한 나를 발견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이런 경험을 어떻게 풀어낼지 아니 내 몸속에서 어떻게 소화가될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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