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주일동안 꼼짝못하게 만들었던 감기가 좀 나아졌다. 그래도 몸은 달달하니 따뜻하고 계속 땀이 난다. -.-; "오늘이 '몸오르기' 하는 날인데 갈까? 말까? 괜히 몸만 축내는 거 아닌가." 그래도 몸이 좀 나아졌으니 몸에 대한 탐구를 계속해야하지 않겠어? 이번에 좋은 기회가 될것 같은데......
8월인가 인스타그램에서 백남준아트센터에서 하는 "몸오르기" 광고를 보자마자 신청했다. 원래 낯선곳에서 하는 활동에 참여하는 것도 좋아하지 않고, 또 몸을 쓰고, 춤을 추는 것도 쑥스러워하는데 보자마자 신청하다니 신기하다. 하지만 난 이미 알고 있었다. 몸이 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요즘 나의 테마가 바로 "나도 모르는 몸, 나에게 낯선 몸"이기 때문이다.
멍때리기의 철학과 연결하여 일종의 '멍때리기 기술' 가능성을 탐사하는 것이라고 할까. 얼마전에 몽양여운형프로젝트를 하면서 확실히 이게(무용/색면작업) 직접적으로 무의식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경험했다. 몽양여운형에서는 "신체, 법이 쓰이는 서판"이란 문구를 가지고 여러가지 시도를 했는데, 확실히 몸은 무의식과 연결되어 있는 듯 하다. 몸을 쓰게 되면 자연스럽게 의식적 사고는 사라지고 몰입하게 된다. 또 나에게 낯선 몸을 경험하면 나도 모르는 나로 가는 문이 열린다는 사실을.
그래, 좀 땀이 나고 열이 나도 가보자.
곧바로 백남준아트센터로 출발.


아직은 한기를 많이 느껴서 긴판에 목도리, 외투를 챙겨서 백남준아트센터로 갔다. 들어가보니 이미 참석자 20여분이 와서 몸을 풀고 있었다. 와... 자연스럽게 몸을 푼다고 했는데, 참석자들 대부분이 무용전공자나 움직임을 좋아하는 분들이었고 이외에도 예술관련 작업을 하는 분들이 거의 대다수였다. 음 ...... 여기서도 나만 철학공부하는 사람이자 자기 몸에 대해 무지한 사람인듯... ^^;;;
간단한 소개를 하고 아트센터 로비에서 '몸오르기'작업을 시작했다. "3시간 30분이나 시간이 있는데, 급하게 진행하네."라고 생각했는데 끝날 때쯤에는 이 시간이 언제갔는지 모를 정도로 빨리 지나갔다. 로비에서 활동이 진행되고 있어서, 전시를 보러 오신 분들이 몸오르기 프로젝프를 구경할 수 있다. 내일도 있으니 구경와도 좋을듯.
첫번째 몸오르기
김원영의 주도로 진행되었는데 작업 지시는 아주 간단했다. 마치 뭔가를 전달한다는 듯이 팔을 쭈욱 뻗어서 상대방에서 something을 전달하고, 또 something을 다시 전달받는다. "음... 이게 뭔말인가? 뭘 전달하라는 건가? 팔을 뻗으면 그냥 전달이 되는건가?"라는 잡생각과 동시에 첫번째 몸작업을 시작했다.
움직이지 않고 대상을 보면서, 사람이나 사물에게 전달하고 받는 작업은 좀 어색했다. "내가 잘하고 있는건가? 아무것도 이뤄지지 않는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런데 걸으면서 움직이면서 상대방에게 (주로 사람에게) 전달하고 전달받으면서 움직이는 작업에서는 정말 something - 신비한 사건이 일어났다. (사진을 찍을 수 없어서 아쉬웠다.)
나와 상대 사이에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데, 바라보고 손을 뻗는데 다가가야겠다는 생각(충동)이 일어났다. 손을 뻗으면서 가까이 가니 상대가 뭔가를 전달하려는 것을 알아차리고 받아들였다. 여기서 손은 수동과 능동, 동작(action)과 반응(reaction)을 구분하기 어려웠다. 그냥 자연스러웠다. 상대의 손과 몸이 이렇게 움직이니 내 손은 그에 반응하면서 움직이면서 뭔가 자연스런 흐름을 형성했다.
신기하고, 또 신비했던 것은 (모든 사람과 그랬던 것은 아닌데) 상대방과 나 사이에 일종의 장이 생기는 것 같았고, 기(氣) 혹은 에너지를 교환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당시에는 상당히 물질적인 느낌까지 받았다. 이렇게 주고 받기를 하다보니 (만약 바깥에서 바라보았다면) 20여 사람의 모습은 집단무용을, 짜여진 움직임을 보는 것처럼 보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전 설명도 거의 없고, 그저 "팔을 뻗어서 주고 받아 보세요."라는 주문이었는데, 온전히 몰입해서 나의 몸의 기운뿐 아니라 다른 사람과의 연결감도 느낄 수 있어서 놀라웠다. 30~40분 정도 이런 시간을 가졌는데, 첫번째 몸오르기를 하면서 거의 '의식적인 생각'을 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자연스럽게 '멍때리기'가 가능해졌다.
두번째 몸오르기
손나예의 설명으로 시작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몸에서 두 점을 접촉한다. 그러면 그 사람은 자신의 몸의 두 점 사이가 어떻게 연결하는지, 둘 사이에 일종의 실 혹은 고무줄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움직여보자. 자신의 몸 두 점 사이의 관계를 자유롭게 움직이면서 탐사해보자.
몸오르기 작업 전체에서 가장 흥미로운 작업이었다. 다른 사람이 내 몸의 손가락과 머리에 손을 대고 있으면, 나는 몸과 손가락 사이의 몸을 계속해서 움직인다. 팔을 구부리기도 하고, 머리를 돌리기도 한다. 머리과 손가락을 가장 가깝게 연결시켜보기도 하고, 또 가장 멀리 떨어트리기도 한다. 내 몸에 손을 대고 있는 사람 역시 나의 움직임에 맞춰서 움직여야 (반응해야) 했으므로, 이 또한 마치 둘 사이의 대화 혹은 춤처럼 보였으리라.
이 작업은 둘에서 셋으로 확장된다.
이제 두 사람이 한 사람의 몸의 한 부분씩을 접촉하면, 가운데 있는 사람이 자신의 몸의 두 지점 사이를 움직이면서 자신의 몸을 탐사한다. 그런데 이제 세명이 되다 보니 가운데 사람의 몸움직임이 좀 더 활발해지고, 역동적이 된다. 그리고 가운데 한사람을 중심으로 양 옆의 사람까지 확장된 사람처럼 움직이게 된다.
그냥 몸의 두 점 사이를 잡고, 몸을 확인하는 작업을 하는데 이게 마치 전혀 의식하지 않는 춤이 되어버린 느낌이다. 특히 세 명이서 할 때에는 가운데 사람뿐만 아니라 양쪽의 사람들도 가운데 사람의 몸의 움직임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움직여야 하다보니 좀 더 아름다운 춤에 가까워졌다. 춤과 일상적 움직임 사이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기분이다.
두번째 몸오르기는 거의 40분 정도를 한 느낌인데, 움직임을 하면서 의식적인 긴장감이 하나도 들지 않았다. 그저 내 몸을 움직이고, 또 내가 접촉한 몸의 움직임에만 집중하면서 움직이다보니 완전한 '멍때리기'를 경험할 수 있었다. 얼마되지 않은 시간이었는데 몸을 움직이는 것이 얼마나 정신적인 긴장감을 풀어주는데 좋은 방법인지를 몸으로 직접 경험한 시간이었다.
두번째까지 마무리고 하고 쉬면서 함께 했던 무용하시는 분과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이러한 분위기가 형성된 것은 참석한 대다수가 (타자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온전히 자신의 몸과 움직임에서 몰두할 수 있었기 때문인것 같다고. 차라리 서로를 모르기 때문에 더 편했을까? (물론, 여기에도 스스로에 대한 시선으로 편하지 움직이지 못하는 분들도 있었다.)
사실 제일 놀라운 점은 내가 다른 사람의 시선뿐 아니라 내면에서 바라보는 나의 시선조차도 의식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정확히 1년 전쯤에 화합생사-양평굿이라는 모임에 참석했었다. 여기에서 참석하고 싶었던 것은 송지용이 진행하는 댄스만달라였다. 작년에도 '춤과 무의식'이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양평에서 댄스만달라를 할 수 있다고 해서 곧바로 신청! 댄스만달라에 참석한 사람 대부분 춤을 추거나, 몸움직임을 좋아하는 분들이었는데 1시간 반동안의 시간동안 아주 특별한 경험을 했으나 나 스스로는 제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내면의 시선이 나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살펴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에게 낯선 몸을 경험한 시간이었다고 해야 하나.
그런데, 이번 '몸오르기'에서는 내 몸이 움직이는게 이상하지 않았다. 아니 몸움직임이 거의 의식되지 않았다는게 맞을 것 같다. 머리로 움직이는게 아니라 팔이 움직이고, 허벅지의 근육이 스스로 움직이는 것 같은 기분. (상상적 자아인) 나는 사라지고 오로지 춤추고, 해방된 육체가 움직이는 나만 존재할 뿐이다. (조금 과장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일리아스>의 호메로스적 인간들이 이렇게 움직이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했고,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대장이 마지막에 조르바와 함께 춤을 추는 장면이 떠올랐다. ㅋㅋㅋ)



세번째 몸오르기는 즉흥(?) 공연이었다.
하은빈 역시 간단한 설명만 주고 바로 공연(?)을 시작했다. 로비에 가상의 선을 긋고, 그 선을 넘어가면(crossing the line) 무대로 가는 것이고 다시 선을 넘어오면 관객이 된다는 것.
"음...이건 또 뭔가? 갑자기 공연을, 그것도 즉흥(현대무용?)공연을 하라니..." 타무라 료의 즉흥적인 타악기 음악소리가 시작하자 원하는 사람들이 나와서 춤을 추기도 하고, 또 소파에 앉기도, 걸어다니기도 했다.
총 3번의 즉흥공연을 했는데, 처음에는 언제끝내야하는지 몰라서 좀 길어지기도 했고, 세번째에서는 일종의 테마(조금 불순해지자)를 가지고 극을 했다. 즉흥공연을 하면서 중요한 부분은 타무라 료의 음악이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 음악에는 선율적인 부분을 거의 없고, 주로 타악기 위주의 템포가 주어졌는데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시작과 마무리, 극적 흐름을 높히고 끝내기에 충분했다.
각각의 공연은 15분 전후 정도로 마무리되었는데, 보고 있으면 말로는 표현할 수 없지만 뭔가가 전하고 받고 이어지고 끊어지는 것이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부하다고 생각된다.
내일 두번째이자 마지막 작업을 진행하는데, 내일 마무리에는 관객 앞에서 이런 즉흥공연을 할 예정이라고 (현장에서) 들었다. 앗... 긴장이다. 다시 내 시선을 다시 느끼는거 아닐까. 몸에서는 땀이 쉴새 없이 났지만 의식의 긴장감은 확실히 줄어든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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