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10년 동안 영화관에 가본 적이 거의 없다. 굳이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볼 이유가 없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대형TV로 원하는 시간에 편안하게 집에서 봐도 충분했다. 그리고 이제는 대형화면도 필요 없고, 작은 노트북이나 스마트폰으로 영화요약을 보는 게 더 편해졌다. 즉, 영화라는 형식은 더 이상 상상력을 자극하지 못하고, 새로운 감각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영화(movie)는 끝났다 - 영화를 볼 수 없는신체에서 말했던 것처럼 이는 단순히 한국영화감독의 문제가 아니라 영화를 둘러싼 환경과 구조가 바뀌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영화가 주었던 상상력과 감각적 자극을 어디에서 발견할 수 있을까? 최근에는 영화처럼 자주 가지는 못하지만 연극과 같은 공연을 보러갔다. 개인적으로만 봐도 1년동안 연극도 보고, 국악이나 현대무용 같은 공연을 더 찾게된것 같다. 역설적으로 기술이 더 발달하게 되면서, 영상을 보면서 느끼는 감각적(신체적) 자극이나 상상력은 점점 더 줄어드는 것 같다. 특히 최근에 AI영상이 도래하면서 이러한 생각은 더 커지는 것 같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AI영상이나 너무나 사실적인 3D영상들이 상상력을 자극하지 못한다는게 좀 신기하고 놀랍게 느껴진다. 돌이켜 보면, 처음 <터미네이터1>(1984)가 나왔을 때나 <쥬라기공원1>(1993)이 나왔을 때만해도 그 상상력과 기술에 탄복했다. 그런데 지금은 더 사실적이고, 너무나도 멋지게 보이는 영상들이 더 이상 아무런 감탄도 주지 못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이제는 유튜브나 쇼츠의 영상들을 보면서 항상 의심한다. 이것도 AI로 만들어진 것 아닌가. 그런데 AI로 만들어졌든 사람이 작업해서 만들었던 똑같은 영상 아닌가?
우리는 결과만 좋으면 멋지면 되는것 아닌가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우리가 감탄하고 상상력의 자극을 받는 것은 불가능에 대한 도전이고 모험이다. 불가능해보이는 것들을, 상상하지 못하는 것들을 보여주었을 때 감각적 자극이 일어나고 그 노력을 인정하게 된다. 누구나 AI도구를 이용해서 가공의 영상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로 인해서 우리는 더 이상 영상으로 감탄하는 경험을 하기 어렵게 되었다!
놀랍게도 이런 감각과 상상력에 대한 자극이 연극에서는, 공연형태에서는 가능한 것 같다. 신기한 것은 연극작품 자체의 수준의 좋고 나쁨과는 크게 상관없다는 점이다. 물론, 훌륭한 연출과 음악, 미술이 더해진다면 좋겠지만 평범한 연극 한편을 보더라도 일상에서는 느낄 수 없는 감각이 깨워진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연극이나 공연들은 현장에 가야만 볼 수 있고, 또 일회적이고 우연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똑같은 연극이라도 매회마다 연기는 달라진다.
문학 전성시대(全盛時代)라고 하면서 왠 영화, 연극 이야기만 하는가. 영화관에 가지 않게 되고, 연극을 보게 되면서 다시금 문학의 힘을 느끼기 때문이다. 넷플릭스와 유튜브에서 원하는 거의 모든 영화, 영상들을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속도로 볼 수 있는 시대가 되었지만 역설적으로 바로 그렇기 때문에 영화나 영상들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었졌다. 그런 신체가 되었다고 할까.
그렇다면 문학은 어떤가. 문학을 읽으면서 여전히 책장 한쪽씩을 넘기면서 읽는 수밖에 없다. 물론, 전자책이나 읽어주는 방식이 있지만 원형적 문학의 형태는 지금도 여전히 힘을 발휘하는 것 같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너무나도 쉽게 유튜브와 쇼츠 영상에 빠지게 되는 시대가 되었다. 하지만 이렇게 극단으로 영상이 지배하는 시대가 되었다는 것은, 반대로 문학에 대한 즉 글을 읽고 상상하게 되는 능력에 대한 갈증이 심하게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아무도 책을 읽지 않는 시대라고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지금만큼 시집이 많이 출판된 적도 없었고 또 지금처럼 많은 출판이 이뤄진 적도 없었다. 단언컨대 문학의 전성시대(全盛時代)가 도래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문학은 하나의 세계다. 문학은 시각을 통해서 읽지만 (그래서 묵독이 아니라 낭독으로 읽으면 더 좋다.) 읽으면서 우리는 하나의 우주를 경험한다. (낭독)읽기는 단순히 시각만 자극하지 않고 청각 촉각에도 영향을 주며 평소에는 감각할 수 없었던 것들이 올라온다. 특히 시가 그렇다. 또한 이러한 면모때문에 현대인들이 시를 읽기 어려워하는 이유다. 문학이 만들어내는 세계는 단순히 글자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글자와 글자 사이의 빈 공백을 통해서 우리는 작가도 상상하지 못했던 것들을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신적 불안과 어려움을 많이 겪고 있는 이 시대에 문학은 그 모든 것들을 이겨내는 무한한 장소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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