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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조건으로서거짓

낱말에도 무게가 있다면 좋겠다

by 홍차영차 2025. 7. 10.

 

문자와 낱말에도 무게가 있다면 자신이 하는 말에 조금 더 조심하지 않을까. 자신이 한 약속을 지키려고 좀 더 노력하게 되지 않을까. 자신의 말과 행동 사이의 그 어쩔 수 없는 간극 때문에 불안해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요즘 책을 읽을 때는 어떤 책이든 소리내서 읽을때가 많다. 그것이 역사책이든 철학책이든 아니면 소설이든 시집이든. 특히 시를 읽을 때는 소리내서 읽을 때가 많다. 시는 곧 음악이니까. 소리내서 읽지 않으면 시를 '읽어버릴' 때가 많기 때문이다. 몇 줄 되지 않는 시를 '읽어버리면' 시를 전혀 이해할 수 없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시를 낭독하게 되면, 다양한 목소리로 시를 소리내서 읽다보면 평소에는 마주치지 못했던 전혀 새로운 감각이 솟구친다. 아니 내 안에 이런(?) 것들이 있었나 하며 놀라게 된다.

 

김은지의 <여름 외투>를 소리내서 읽다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실은 낱말은 무게를 갖고 있었다는. 다만 우리가 책을 읽고, 책 속의 낱말과 문자들을 단지 떠다니는 개념들로만 생각하게 되면서 무게를 잃어버렸다. 문자가 무게를 잃어버리면서 약속은 다 헛된 거짓말이 되었고, 말은 믿는 사림들은 바보가 되었다. 상처받은 인간들이 속출했고, 이제 사람들은 그 상처를 숨기고 스스로도 이제 그 말의 무게를 믿지 못하게 되었다.

낱말이 무게를 잃지 않았을 때 우리는 말만으로 충분했다. 이 세계의 작동방식은 지금과 상당히 달랐다. 구두로 약속을 하면 그것을 들었던 모든 사람들에게 그 무게가 전달된다. 당연히 약속을 지키지 않을 수 없다.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그 무게가 그 사람을 짓눌러버리기 때문이다. 그건 그 말을 한 사람뿐만 아니라 그말을 듣고 있었던 모두에게 동일하다. 듣고 싶지 않았든, 우연히 들었던 상관없다.

 

잃어버린 낱말의 무게를 느낄 수 있는 방법이 바로 낭독이다. 소리내서 책을 읽어내려가면 낱말들에 무게가 느껴진다.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를 소리내서 읽다보면 평범한 나는 알 수 없을 것 같은 문장들이 무게를 갖는다. 마치 내가 그 문장들을 말하는 순간 그 무게가 전달되는 듯하다. 소리내서 읽은 낱말들, 무게를 갖게 된 낱말들이 전달되면 그 무게는 에너지가 되어 내 속에 나도 모르고 있던 존재를 일깨우는 듯 하다.

 

 

사람들은 아름다움이라는 말을 너무 가볍게 사용한다. 말에 대한 감각이 없어 말을 너무 쉽게 사용함으로써 그 말의 힘을 잃어버리고 있다. 별 것 아닌 것들을 기술하면ㅁ서 온갖 것에 그 말을 갖다 쓰기 때문에 그 이름에 값하는 대상은 위엄을 상실하고 만다. 그저 아무것이나 아름답다고 말한다. 옷도 아름답고, 강아지도 아름답고, 설교도 아름답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작 아름다움 자체를 만나게 되면 그것을 알아보지 못한다. 사람들은 쓸데없는 생각을 돼먹지 않은 과장된 수사로 장식하려는 버릇이 있어 그 때문에 감수성이 무뎌지고 만다. (서머싯 몸 <달과 6펜스> 191~192쪽 민음사)

 

 

말에도 낱말에도 무게가 있으면 좋겠다.

어쩌면 무게를 잃어버린 문자에 다시 무게를 돌려주는 작업이 바로 예술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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