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라캉 읽기

오드라데크Odradek -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닌 것

by 홍차영차 2025. 11. 13.

 

오드라데크Odradek는 무엇인가? 사람인가 아니면 물건 혹은 그것?

 

자프란스키가 풀어주는 카프카의 이야기를 읽다가 깜짝 놀랐다. <가장家長의 근심>라는 단편은 마치 라캉의 무의식, 특히 간극으로서 무의식을 소설로 풀어주는 것 같았다. 아버지의-이름으로도 덮혀지지 않는 어떤 틈이자 자신에게도 낯설고 두려운 욕망의 이름! 2페이지밖에 안되는 단편소설 전체가 오드라데크가 어떤 것인지로 채워져있다. 누구라고 해야할지 무엇이라고 해야할지 헷갈리지만 카프카는 오드라데크를 '그'라고 부른다.

 

'의미가 없어 보이지만 완성된 것'이고, 잡으려고 해도 '붙잡히지 않으며', 모든 곳에 있지만 어디에도 없다. 말을 하기도 하지만 전혀 말을 하지 않기도 하며, 한동안 보이지 않을 때도 있다. 또한 그의 웃음소리는 인간의 폐를 가지고는 만들어낼 수 없는 웃음이다. 그는 마치 '나무토막'같다. 가장 흥미로운 구절은 그가 '내가 죽은 뒤에도 살아 있으리라'는 생각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소설의 제목은 <가장(아버지)의 근심>이다.

 

카프카가 그려놓은 '오드라데크'는 마치 라캉이 묘사하는 무의식과 흡사하다. '존재하는 것도 그렇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닌 것'이며,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닌 것'으로서의 무의식. 간극으로서 무의식은 어디에도 있지만 찾으려고 탐구하면 보이지 않고, 그 모습이 보일 때는 낯설고 두렵다. 그것은 나(내부)이면서도 내가 아닌듯(외부)하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내가 죽은 뒤에도 계속해서 살아남을 수 있다. 아버지의-이름으로 세상을 덮으려는 '가장의 근심'이 아니고 뭐란 말인가.

 

오드라데크에 대한 묘사는 또한 카프카의 글쓰기 - 마치 예술을처럼 보인다.

글쓰기(예술)은 어디에도 있지만 어디에도 없고, 잡으려고 하면 잡히지 않는다. 예술은 아무 효용도 없는 쓸모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아닌 것은 아니'다. 그리고 글쓰기-예술은 내가 죽은 뒤에서 살아남을 것이다.

 

 

<가장의 근심>에 나오는 오드라데크는 카프카를 읽는 키워드가 될 수 있을것 같다.

벌레로 변해버린 그레고르(<변신>), 자신도 모르는 이유로 고소를 당해서 죽게 되는 K(<소송>). 자기 내부에 자신도 모르는 욕망이 가득한걸 낯설게 경험하는 <시골의사> 그리고 어디에도 도달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주변을 맴도는 <성>까지. 이외의 단편들도 '오드라데크'-간극으로서 무의식-의 관점에서 읽어보면 흥미로울것 같다.

 

 

 

어떤 이들은 오드라데크Odradek라는 말이 슬라브에서 나왔다고 말한다. ...... 만약 오드라데크라 불리는 존재가 실제로 없다면, 그 누구도 그런 연구를 몰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 (오드라데크는) 그 전체가 의미 없어 보이지만, 그 나름대로는 완성된 것 ...... 움직임이 많아서 붙잡을 수 없고 ...... 천장에 있다가 계단에 있기도 하고 복도에 있는가 하면 현관에 있기도 하다. 가끔 그는 몇 달 동안 보이지 않을 때도 있다. ...... 가끔 우리가 문밖으로 나올 때, 그가 저 아래 난간에 기대어 있으면, 우리는 그에게 말을 걸고 싶어진다. ...... "넌 이름이 뭐니?" "오드라데크" "넌 어디서 살지?" "정해지지 않은 집"하고 그는 웃을 것이다. 그러나 그 웃음은 폐를 가지고 만들어낼 수 없는 그런 웃음이다. ...... 그는 흔히 오랜 동안 말이 없다. 마치 나무토막처럼. 그는 나무토막인 것 같기도 하다.

나는 그가 어떻게 될까 하고 헛되이 자문해본다. 그가 도대체 죽을 수도 있을까? ...... 그가 아무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내가 죽고 난 후에도 그가 살아 있으리라는 생각이 나에게는 몹시 고통스럽다. (프란츠 카프카 <변신 단편전집> 중 가장家長의 근심 241~242쪽)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