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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캉 읽기

신령님이 보고 계셔 (sub. 정신분석가는 현대화된 무당인가)

by 홍차영차 2025. 8. 30.

어떻게 이게 내 손에 들어왔는지 모르겠다.

<틈새 연대기 -해방과 추방 사이를 떠도는 몸의 질문> 이라는 제목의 책을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여기서 '몸의 질문'이라는 말에 끌렸던 것 같다. 그렇게 살펴봤는데 어라 글쓴이가 '무당'이다. 이렇게 끌리는 저자를 만났을 때는 첫책을 읽어본다. 첫책이란 자기 고백일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나는 신당 대신 카페에서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점사를 보고 색색의 한복 대신 편안한 무색 면바지를 입고 다닌다."

 

호기심을 갖게 하는 서문을 읽기 시작해서 곧바로 책 한 권을 다 읽었다. 내가 상상했던 모습을 구현하고 있던 무당이 이미 있었구나. 놀라면서도 어쩌면 이런 무당이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전에 그리스 비극을 살펴보면서 아테네에서 열리던 '디오뉘소스 축제'가 우리나라에 퍼져있던 무당 굿과 아주 비슷하다는 점을 이야기했다. 디오뉘소스 축제에서 벌어졌던 그리스 비극은 로고스 중심의 이성적인 나라 아테네에서 점점 더 커져가는 사회적, 정치적 간극을 해소하기 위한 굿이자 정치적 행위였다.

우리나라 무당과 굿 역시 마찬가지다. 굿이 열린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부족했던 음식을 다함께 나누고 예술적인 광경을 보면서 사회적인 경계가 허무는 계기이고, 점점 커져가는 대립을 해소하는 시간이다. 오로지 광신적인 무당과 굿만 떠올려서 안된다. 커다란 굿을 열때는 배경이 되는 그림, 그리고 흥겹게 신을 불러내고 또 사람들을 흥분시키는 음악과 소리, 그리고 알듯 말듯한 싯구같은 말과 문장. 무당은 일종의 종합예술인이고, 굿은 다원예술이 펼쳐지는 일종의 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그동안 쌓였던 한을 풀고 상호간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한 마디로 억압된 무의식을 해소하는 계기로 작동한다.

 

예술을 근대인의 필수적인 생존욕구라고 부른 이유다. 문자의 발명과 함께 속마음이 생겼고, 문자 기술이 점점 더 발전하면서 내면의 복잡성이 점점 더 커졌다. 그런데 이렇게 속마음이 점점 더 복잡해지면서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능력을 잃어버렸다. 이제 사람들은 의식적인 세계밖에 없는 것처럼 행동한다. 왜냐하면 억압된 무의식이란 보이지 않는 것이고,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은 가치없는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순간에, 근대의 초기부터 역설적으로 비언어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는 예술이 점점 더 번성하기 시작했다.

 

근대가 되었다는 것은 이제 산타클로스나 신(화)을 믿을 수 없는 정신공간이 되었다는 뜻이다. 과학과 이성의 시대에 신화와 무녀, 무당과 굿은 소멸해갔다. 하지만 억압된 무의식은 점점 더 커져갔다. 아무도 이 문제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다. 당연하게 사람들은 불안을 갖게 되고, 항시적인 불안감을 갖게 되는 것인 인간의 존재조건처럼 되어버렸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다시 무당을 데려와서 점을 쳐주면 해결될까? 아니면 다시 이성 이전의 신과 신화를 가져오면 해결될까? 신(성)을 믿기에는 너무 속된(똑똑하고 영리한) 정신을 가졌다. 바로 여기서 '정신분석'이 탄생했다.

 

어떤 면에서 '정신분석가'는 무당의 현대판 버전이라고 할 수있다. 다들 한 번쯤 무당을 찾아가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지 않은가? 하지만 내 이성이, 주변의 시선이 신경쓰일 뿐이다. 미신적이고 비이성적이며 광기적인 무당을 찾지 않으면서 어떻게 정신적인, 영적인 부분을 해결할 수 있을까? 바로 '정신분석'이다.

 

프로이트는 무의식을 발견하고 과학적 체계를 마련하려고 했다. 하지만 프로이트를 계승한다는 라캉은 정신분석은 근본적으로 과학적일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조금은 신비적인, 조금 과하게 말하면 미친 해석을 내놓는다. 라캉의 정신분석은 '과학적인 언어'와 '이성적인 논리'로 위장된 '점사(占辭, 점괘에 나타난 말)'가 아닐까. 정신분석과 정신분석가를 너무 폄하하는 것이 아니냐고?

 

반대로 우리는 무당을 너무 비과학적이라고 무시하고 있는 건 아닐까?

<신령님이 보고 계셔>를 쓴 '홍칼리'는 우리가 상상하는 무당과는 전혀 다르다. 무조건 부적을 쓰라고 하거나 굿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하지 않는다. 무당 홍칼리는 어떤 면에서 심리상담가같기도 하고, 또 정신분석가처럼 보인다. 사주명리도 보고, 점사도 보지만 무조건적인 해석을 하지 않는다. 말 그대로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감각을 의지하면서 해석한다.

 

신기한 것은 (아니 당연한 것이기도 하다.) 홍칼리는 무당이 자신이 하는 여러 역할 중에 하나라고 말한다. 홍칼리는 '그림을 그리는 작가'이기도 하고, 노래도 부르고, 또 웹툰을 그려서 올리고, 유튜브에 한달의 운세를 올려놓기도 한다. 홍칼리는 무엇이낙. 무당인가 화가인가 웹툰 작가인가.

물론, 무당 홍칼리는 여러 신들을 모시고 있다. 어렸을 적 교회를 다녔기에 내림굿을 받을 때 십자가를 보기도 했다. 그리고 신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귀울인다. 하지만 이러한 작업은, 나에게는, 정신분석가가 열심히 정신분석학을 공부하고, 다양한 사례를 찾아보면서 임상을 하는 것과 다르게 보이지 않는다. 도리어 정신분석가들은 필수적으로 예술적인 활동을 해야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홍칼리의 활동에 놀란 것은 내가 철학을 하면서 하려고 했던 작업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지금 철학의 활동을 예술과 연계하려는 작업을 하려고 하는데, 사실 이유는 무당 홍칼리와 다르지 않다. 나를 돌보고, 또 다른 사람들 역시 나와 같은 어려움을 갖고 있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철학적 사유' 혹은 '무의식'을 인정하는 활동을 하고 싶을 뿐이다. 철학 강의나 글만으로 한정하지 않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연결시켜보고 싶다. 물론 현재로서 나는 홍칼리(무당)가 될 수 없다. 여기에 바로 길이 있다. 누구나 무당이 되거나 예술가가 될 수는 없다. 꼭 그래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자신의 고유성을 있는 그대로 맞이하다보면, (니체식으로 보면) 수천년전부터 이어져온 우주의 역사가 낳은 '나'를 대면할 때 ,지금까지 인류사에서 누구도 보여주지 못한 나만의 색과 형태를 보여줄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간다는 것은 나뿐 아니라 우주를 풍요롭게 하는 일이다.

 

 

 

보충)

선입견 없이 바라본다면 <신령님이 보고 계서>의 작가이자 무당 홍칼리가 하는 활동은 딱 심리삼당사와 비슷하다고 보입니다. 홍칼리는 점사를 하거나 해석을 할 때도 무조건적인 방식으로 이야기하지 않고 찾아온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그 상황에 비추어서 해석하더군요. 이점은 라캉 정신분석이 강조하는 바 - 정신분석에서 핵심이 정신분석가가 아니라 분석주체(환자)라는 말과 상통하는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현대의 정신분석가는 예전 무당이 맡고 있던 활동의 일부를 분리해서 맡고 있는것처럼 보입니다. 고대로부터 무녀, 무당과 같은 사람들이 했던 굿이나 축제는 단순히 예술적 활동이 아니었고, 개인의 삶과 공동체의 삶과 연계된 종합적 활동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가령 아테네의 디오뉘소스 축제 - 그리스 비극) 이로부터 점점 더 분리되고 해체되면서 종교, 정치, 예술/운동, 학문(정신분석)과 같은 부분이 생겨났다고 여겨집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정신분석가'는 무당이 맡고 있던 부분 - 공동체적 억압(법)과 사회 계층간의 대립을 현대적인(언어적인) 방식으로 대처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외의 무의식적 억압들은 다양한 예술이나 종교, 운동과 같은 활동이 맡고 있다고 생각되네요.

흥미로운 점은 홍칼리는 점사만 보는게 아니라 스스로 예술적 활동을 함께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문제는, 똑똑하고 이성적이고 의식적이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현대인들에게 이 점사를 믿는것이 쉽지 않다는 점입니다. 잘못하면 점사에 빠져서 아니 무당(독재적 해석가)에 빠져 버릴 위험이 크기때문이죠. 또한 현대인들은 너무나 의식적이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이렇게 신비적인 부분을 무시하면서도 한편으로 믿고싶어하는 욕망이 크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저는 정신분석학이, 특히 라캉의 정신분석학이 현대철학이나 문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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