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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캉은 2강을 "여기 계신 대부분의 분들은 제가 제기했던 '무의식은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다'라는 명제를 어느 정도 이해하고 계실겁니다."(37쪽)라고 시작한다. 하지만 2강 '프로이트의 무의식과 우리의 무의식'은 자신이 1963년까지 이야기했던 무의식에 변화를 주고 있다. 1964년에 시작된 <세미나11>에서 '언어구조로서의 무의식'이 아니라 '균열, 간극, 공백으로서의 무의식'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왜 라캉은 '무의식은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다'라는 명제에서 멈추지 않았을까. 아마도 '(언어) 구조의 효과'로 나타나는 무의식으로는 주체의 역동성을 표현하기 어려웠기 때문일 것이다. 라캉은 '언어 구조의 효과'로서 주체를 이야기하면서도 계속 주체를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이 주체를 무의식적 주체로 이야기하든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든 주체만의 역동성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능동성, 독특성이라는 단어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바로 이 고민에서 라캉이 만난 것이 칸트의 <부정량 개념에 대한 시론> 논문이다. 칸트 역시 데카르트처럼 어떤 확실한 근거를 찾으려고 했(던 것 같)다. 즉 어떤 사건이나 움직임의 원인은 무엇인가? 이에 대한 가장 유명한 논의가 바로 아리스토텔레스의 4원인이다. 칸트는 이성의 준칙에 따라서 그 원인을 파악하려고 했는데, 극한까지 밀어부치더라도 분석될 수 없는 '간극'이 있다는 것. (아마도) 칸트는 이 분석을 통해서 이러한 인과과성의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선험적 범주가 필요하다는 것을 발견했을 것이다. 원인이라고 생각하는 그곳에는 분석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남기 때문이다. 그리고 라캉은 바로 이곳에서 간극, 균열, 결여, 공백으로서의 무의식을 발견한다.
무의식의 동력학적 개념이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당연히 충분하지 않습니다. ... 오늘 제가 참조점으로 삼게 될 것은 바로 원인cause 기능입니다. (38쪽)
철학적 비판이란 관점에서 제가 방대한 참고문헌을 떠올리게 하는 영역으로 들어서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 만일 우리가 원인 기능을 이해할 때 언제나 마주쳤던 간극이 (칸트의) <부정량 개념에 대한 시론> 속에서 얼마나 바짝 좁혀지고 있는지만 지적하고 넘어간다면 ...... 즉 만약 이성의 준칙이 항상 어떤 비교나 등가성이라면, 원인은 결코 분석될 수 없는 개념, 이성으로는 이해 불가능한 개념이 되며 원인의 기능에는 본질적으로 어떤 '간극'이 남아 있게 된다는 겁니다. 칸트는 실제로 <프롤레고메나>에서 '간극'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39쪽)
반면 원인에 대해 말할 때 거기에는 언제나 반개념적이고 규정되지 않은 무언가가 있습니다. [원인이라는 표현이 쓰이는 경우] 거기에는 어떤 구멍이 있고 그 틈새로 무언가가 흔들릴 뿐이지요. 요컨대 뭔가 잘못된[절뚝거리는] 것에만 원인이 있다는 겁니다. (40쪽)
자, 저는 프로이트의 무의식이 위치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 원인과 그것이 영향을 미치는 것 사이에서 항상 무언가 잘못된 [절뚝거리는] 것이 존재하는 지점이라는 것을 대략적으로나마 보여주드리고자 합니다. ...... 무의식은 우리에게 간극을 보여주며 신경증은 바로 이 간극을 통해 결정될 수 없는 어떤 실재에 다시 연결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40쪽)
이 간극 속에서 무엇인가가 일어납니다. 이 간극이 일단 메워지면 신경증은 치료되는 것일까요? 결국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계속 남아 있게 됩니다. ...... 프로이트의 텍스트들을 읽어보신다면, 제가 소개하고 있는 용어들이 지침이 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그가 출발한 지점, 즉 <신경증의 병인론>부터 보시기 바랍니다. 원인에 특징적인 것이라 할 수 있는 구멍, 틈새, 간극 속에서 그는 무엇을 발견할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실현되지 않은 것non-réalisé'의 차원에 속하는 어떤 것입니다. (41쪽)
물론 이 시대, 이 시점, 지금의 저는 원인과 관련해 이러한 간극이 발생하는 지점에 시니피앙의 법칙을 도입할 수 있는 위치에 있습니다. (42쪽)
'무의식은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다'라는 말은 무의식이 일종의 장(field)처럼 이해된다. 이 장의 흐름(효과) 속에서 주체가 움직인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라캉은 <세미나11>에서는 무의식을 좀 더 세밀하게 규정하기 시작한다. 즉, 무의식은 단순한 언어적 구조가 아니라 '언어적 구조 속에 생기는 틈'이다.
'간극, 균열, 결여, 공백'로서의 무의식이 드러날 때가 바로 무의식적 주체와 만나는 순간이다. 프로이트가 말했던 꿈의 배꼽(42쪽) - 해석이 도달할 수 없는 무의식의 핵 -, 실현되지 않은 것, 태어나지 않은 것'이란 단어들이 나오는 이유다. 이 '간극, 결여로서의 무의식'은 상징계의 균열로서 드러나게 되는데, 이 공백 덕분에 욕망하는 주체가 움직이게 된다. 다음에 나오게 될 것 같은데, 이 욕망하는 주체가 움직이게 되는 원인이 바로 대상a이다. 만약 '간극, 균열, 결여'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욕망은 곧바로 죽어버린다. 증상으로서 드러나는 간극은 무의식을 파악할 수 있는 통로라고 할 수 있다. 라캉 정신분석이 '증상을 없애는 데' 목표를 세우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간단하게나마 간극으로서의 무의식을 살펴봤다면 이제 '윤리적 위상으로서의 무의식'을 살펴볼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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