춥다.
항상 창문을 열고 새벽 낭독을 했는데 오늘은 제법 춥다. 낭독을 마치고선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오늘은 <아침놀> 2권을 낭독하기 시작했는데 특별히 마음에 떠오르는 구절은 없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인상적인 구절은 없었다. 대신 오늘 구절들은 뭔가 내면을 건드리는 문장들이 많았던 것 같다.
<아침놀> 서문을 보면 '지하에서 작업하고 있는 한 사람'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는데, 오늘 직접 저 깊은 지하에서 작업하는 니체의 뒷모습을 본 것 같다. 고통과 위험을 무릎쓰고 직접 내려가서 깊이 파내려가는 모습이다. 그 위험스런 충동이 나에게도 전해지는 기분이다.
낭독을 다 마치고 나서는 “은유(metaphor)는 나로 하여금 문학에 대해 절망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변신(metamorphosis)을 말했던 카프카가 떠올랐다. 왜냐하면 은유란 니체의 언어로 보면 '자신이 부여한 법칙'이 아니라 '어딘가에서 받거나 발견하고 명령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나를 완전히 해체할 때에야, 오래된 관습이라는 이유로 받아들인 그 도덕의 옷을 벗어버릴 때에야 삶은 시작된다. "어떠한 지침도 주어져서는" 안된다. 은유가 아니라 변신(변태)이다.
108 몇 가지 주장들. - 개인이 자신의 행복을 바라는 한, 그에게 행복에 이르는 길에 대한 어떠한 지침도 주어서는 안 된다. 개인의 행복은 어느 누구에게도 알려져 있지 않은 자신만의 고유한 법칙들에서 솟아나기 때문에, 밖에서 주어지는 지침은 그의 행복을 방해하고 저지하게 될 뿐이다. 이른바 '도덕적인' 지침들은 사실 개인과 대립되는 것이며 개인의 행복을 전혀 바라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이러한 지침들은 '인류의 행복과 안녕'과도 무관하다. ...... 사람들은 이 법칙을 자신에게 부여하려 하지 않고 어딘가에서 받거나 어딘가에서 발견하기를 바라며, 혹은 어딘가로부터 명령받기를 바란다. (니체 <아침놀> 117~1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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