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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온 우주적 감각과 납작해진 글자

by 홍차영차 2025. 9. 10.

 

온갖 이유들을 (사후적으로) 찾아보지만 모르겠다.

 

어제와 다른 점은 별로 없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어제는 일이 좀 많았다. 철학+그림(색면작업)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저녁에 세미나까지 하다보니 평소보다 더 피곤했다. 단맛이 땡겨서 배 한조각을 먹고 11시쯤 일찍 잠이 들었다.

 

낭독 소리가 입체적으로 다가온다. 입체적이라는 말로는 부족하다. 각자가 낭독하는 목소리가 민감하게 느껴진다. 소리들이 귀와 신체에 파동처럼 다가오고 눈을 감고 들으니 다양한 이미지들로 내 주위를 감싼다. 그냥 소리로만 들리는게 아니다. 다양한 이미지와 자극으로 다가온다. 소리(형식)만 들었던 것도 아니다. 내용도 더 풍부하게 이해된다. 각각의 단어들과 문장들이 엮여져서 다가온다. "이게 텍스트(visual text) 발명 이전에 선창에 이은 통독의 느낌일까?" 문장과 문장 사이가 포도밭(pagina)처럼 느껴진 것은 아니지만(이반 일리치 <텍스트의 포도밭>) 마치 우주선에서 우주광경을 보는듯한 느낌이다.

 

간혹 인상적인 구절에 밑줄을 치기위해 눈을 뜨는데, 이렇게 눈을 뜨고 읽게 되는 순간(묵독) 글자들이 납작해진다. 온 우주적 감각으로 다가오던 글자들이 종이 위에 납작해진 기분이 든다. 눈만으로 보는 글자는 오로지 눈과 머리만 자극할 뿐이다. 문자의 배제성, 낭독의 힘에 대해서 수없이 이야기했지만 이렇게까지 경험한 적은 거의 없었던 듯하다. 눈을 감고 듣게 되는 글들은 단순히 글로만 다가오지 않고 내 안의 다양한 감각들과 만나서 상상치 못했던 부분들을 깨닫게 되는 것 같다. 니체를 알 것만 같은 느낌이랄까.

 

감각이 살아있다는 느낌은 단지 낭독으로 끝나지 않았다.

곧바로 에스메콰르텟이 연주하는 보로딘 현악사중주 2번을 들었다. 현악기들의 소리는 신체상태에 따라 아주 다르게 다가온다. 날카로운 소음처럼 다가올 때도 있고 저 깊은 넓은 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처럼 들릴때도 있다. 오늘이 그랬다. 바이올린과 비올라, 첼로의 선율들이 마치 거미줄처럼 파동을 형성해서 몸을 감싸는 기분이다. 보로딘의 음악이 아주 입체적으로 들리고, 신체에 새겨지는 기분이다.

 

다음주 월요일은 어떨까. 이런 감각이 계속 유지될까. 궁금해진다.

 

 

 

117 감옥에서. - 내 눈이 지금 좋든지 나쁘든지 간에 나는 아주 가까운 거리밖에 보지 못한다. 내가 활동하고 사는 공간은 이렇듯 작은 곳이다. 이 지평성이 크고 작은 직접적인 내 운명을 규정하고, 나는 이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와 같이 모든 존재는 그 자신에게 특유한 하나의 원에 둘러싸여 있으며, 이 원에는 중심이 있다. 마찬가지로 귀도 우리를 하나의 작은 공간에 가두며, 촉각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감각은 우리를 감옥의 벽 속에 가두듯이 가두는데, 우리는 이런 지평에 따라서 세계를 측정하면서, 이것은 가깝고 저것은 멀고, 이것은 크고 저적은 작고, 이것은 딱딱하고 저것은 부드럽다고 부른다. 우리는 이러한 측정을 감각이라고 부른다. 이 모든 것은 오류 그 자체다. ...... 우리의 감각 기관이 갖는 습관으로 인해 우리는 감각의 거짓과 기만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이 감각 기관들이 다시 우리의 모든 판단과 '인식'의 기초가 된다. 이것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실제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뒷길도 샛길도 없다! (니체 <아침놀> 134~1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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