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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성스러운 잔혹함

by 홍차영차 2025. 8. 6.

오늘은 눈에 밟히는 구절들이 많다. 특히 예술과 생산, 여성에 대한 이야기들.
그동안 니체가 품어왔던(임신) 사상이 '가련하고' '불구의 형태'였다는 것을 자백하는 것처럼 보인다. 숱한 좌절과 핍박에도 불구하고 지켜내고 낳았던 것? "죽기에도 부족할 만큼의 삶"밖에 없을것 같은 아이를 어떻게 해야할까.

"죽여라!"

잔인하다고 비난하지만 성자의 말대로 "그 아이를 살게 하는 것이 더 잔인한 일"이 아닐까.
73번을 뒤잇는 예술과 진리, 여성에 대한 이야기는 자기가 낳은 사상을 죽이고 다시 잉태하려는, 아니 잉태할 수 있을까라는 의심을 가지고 다시 시도하는 모습처럼 보인다.


성스러운 것은 마치 잔혹한 것처럼 보인다? 아니 성스러운 것은 언제나 잔혹했다. 아닌가.

 


73 성스러운 잔혹성 - 갓 태어난 아이를 손에 든 남자가 성자를 찾아왔다. 그가 물었다. "이 아이를 어찌해야 하나요? 이 아이는 가련하고, 불구인데다, 죽기에도 부족할 만큼의 삶밖에는 없습니다." 성자가 무서운 목소리를 말했다. "죽여라. 죽이고 사흘 낯 사흘 밤 동안 아이를 팔에 안고 이 일을 기억에 새겨라. 그러면 네가 아이를 낳을 만한 때가 아닐 때에 아이를 낳는 일이 다시는 없겠지." 이 말을 듣고 그는 실망하여 그곳을 떠났다. 많은 사람들이 성자가 아이를 죽이라는 잔인한 충고를 했다고 그를 비난했다. "하지만 그 아이를 살게 하는 것이 더 잔인한 일이 아닐까?" 성자는 이렇게 말했다. (니체 <즐거운 학문> 138쪽)

77 선한 양심을 지닌 동물 - ...... 민중적인 것은 언제 어느 때나 가면이다! 그래서 멜로디와 카덴차, 오페라의 리듬에 들어 있는 도약과 즐거움 속에는 모두 가면을 쓴 어떤 것이 함께 내달린다. 하물며 고대의 삶에 대해 무엇을 이해할 수 있단 말인가! 141

80 예술과 자연 - 그리스인들은 (혹은 적어도 아테네인들은) 뛰어난 연설을 듣는 것을 좋아했다. ... 그래서 그들은 무대 위의 정열조차도 그것이 능숙한 말로 표현되기를 요구했으며, 극적인 시구의 부자연스러움도 기꺼이 감수했다 - 자연 속에서의 정열은 극히 눌언이고 말이 없고 당황스럽게 표현되기 때문이다. 자연 속에서의 정열이 말로 표현되는 경우에도 그것은 혼란스럽고 비합리적이라서 스스로에게 수치로 느껴질 뿐이다. ...... 삶의 파멸을 향해 다가가는 비극의 주인공이 여전히 말과 논거와 웅변벅인 몸짓, 그리고 전체적으로 맑은 정신을 보여주는 것이 이제 우리에게는 열렬한 기쁨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현실의 인간은 이런 경우 대부분 분별을 잃고, 하물며 아름다운 말은 전혀 하지 못한다. 144

81 시의 기원 - 인간에게서 환상적인 것을 애호하고, 직감적 도덕 본능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추론한다. "인간이 모든 시대에 걸쳐 유용한 것을 최고로 신성한 것으로 존중한다면 도대체 시가 왜 세상에 생겨났겠는가? 이 운율을 붙인 말로 명료한 전달을 돕기는커녕 오히려 방해하고, 게다가 모든 유용한 합목적성을 조소하기라도 하듯이 세상 모든 곳에서 솟아나오고, 또 솟아나고 있지 않은가! 시가 지닌 야생적 아름다움의 비합리성은 너희들 공리주의자들을 반박하고 있다. 유용함에서 풀려나고 싶어 하는 것 - 이것이 인류를 고양시켜왔고, 인류에게 도덕과 예술의 영감을 불어넣었다!" 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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