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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도덕'에 대한 하나의 반박문(Streitschrift)

by 홍차영차 2025. 5. 18.

 

우리는 우리 자신을 알지 못한다. 우리 인식하는 자들조차 자신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다. 여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 관해서 탐구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우리가 어느날 우리 자신을 발견하는 일은 어떻게 일어날 수 있을까? "네 보물이 있는 그곳에 네 마음도 있느니라"라는 말은 옳은 말이다.

니체 <도덕의 계보> 아카넷 11쪽

 

 

<도덕의 계보>의 원제목은 <Zur Genealogie der Moral - Eine Streitschrift(도덕의 계보 - 하나의 반박문)>이다. 무엇에 대한 반박문일까? 기존 도덕에 대한 반박문 - 그동안 질문하지 않았던, 결코 질문할 수 없었던, 원래부터 그랬던 것이라고 믿었던 '도덕'에 대한 반박문이다. 네이버 사전을 살펴보니 Eine Streitschrift는 반박문, 항의서라고 나오는데, 조금 더 들어가서 보니 Streit는 전투, 싸움, 불화라는 뜻을 갖고 있다. 즉 <도덕의 계보>는 이전에 질문하지 않고 절대적인 진리라고 믿었던 '도덕'과의 전투, 논쟁을 펼치겠다는 뜻이다.

흥미로운 점은 프로이트-라캉의 정신분석학을 공부하게 되면서 니체의 텍스트들에서 정신분석학 혹은 무의식과 연결할 수 있는 수많은 구절들을 발견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알지 못한다."는 <도덕의 계보> 첫 문장은 곧바로 의식만으로는 자신을 알 수 없다는 말처럼 들린다. "우리 인식하는 자들조차 자신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다"는 다음 문장을 보면 좀 더 확신하게 된다.

또한 니체는 자신이 "아무도 알지 못하는 은밀한 정원"(17쪽)을 발견했으며, , "저 광대하고 멀리 떨어져 있는 감쪽같이 숨겨진 땅"을 여행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문장들은 20세기 프로이트-라캉이 본격적으로 탐구하기 시작한 빙산의 일각으로 불리는 "무의식"에 대한 니체식 표현이지 않을까.

 

사실은 이러한 가치들이 갖는 가치 자체가 우선 문제시되어야 한다고.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이런 가치들을 발생하게 하고 발전시키고 변화시킨 조건과 환경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다고. (결과로서의, 징후로서의, 가면으로서의, 위선으로서의, 질병으로서의, 오해로서의 도덕, 그러나 또한 원인으로서의, 치유로서의, 자극제로서의, 속박으로서의, 독약으로서의 도덕) 그와 같은 지식은 이제껏 결코 존재한 적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은 그것을 원하지도 않았다. 사람들은 이러한 가치들이 갖는 가치를 주어진 것으로서, 사실로서, 의문의 여지가 없는 것으로 여겨왔다. '선한 사람'을 '악한 사람'보다 훨씬 더 높이 평가하면서 '선한 사람'이 '악한 사람'보다 일반적으로 인간의 진보와 복지 그리고 번영에 훨씬 더 이바지 한다는 통념을 조금이라고 의심해본 사람은 지금까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만일 그 반대가 진실이라면? 즉 '선한 사람'에게 퇴보의 징후가 숨겨져 있다면, 또한 어쩌면 현재를 위해서 미래를 희생기키는 위험, 유혹, 독약, 마취제가 숨겨져 있다면? ... 그리하여 바로 도덕이, 인간이란 유형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강력함과 훌륭함에 이르지 못하게 되는 것에 책임이 있다면? 그 결과 도독이야말로 위험한 것들 가운데서도 가장 위험한 것이라면?

니체 <도덕의 계보> 아카넷 21~22쪽

 

 

절대적 진리라고 여겨지면서 한 번도 반박하는 질문을 받아보지 않았던 도덕! 왜냐하면 도덕은 (프로이트-라캉 식으로 보면) 태어나면서부터 (혹은 태어나기 이전부터) 영향을 받아서 형성된 의식, 자아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에게 "비이기적인 것의 가치, 즉 동정, 자기부정, 자기 희생과 같은 본능들의 가치"(20쪽)는 질문해서도 안되는 것이었다. 어떤 면에서 '동정은 너무나도 과대평가된 새로운 현상'(20쪽)에 불과하다.

도덕에 대한 이러한 질문은 근본에 대한 질문이기에 두렵고 무섭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도 그 심연의 문을 열려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이러한 공포와 불안은 사실 약자들과 그들을 대변하고 있는 체계에 의해서 심겨진 것은 아닐까. (기존의 철학과 정신분석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성에 대한 질문'을 포함하는가에 있다는 프로이트의 말을 다시 새겨봐야할 것 같다.)

하지만 니체가 말했던 것처럼 이러한 의문을 스스로 던져본 사람은 "모든 종류의 불신, 의혹, 공포"와 함께 "어마어마하게 새로운 전망이 열리고, 새로운 가능성이 현기증처럼"(21쪽) 그를 사로잡게된다. <도덕의 계보> 서문을 읽으면서 나는 니체가 호메로스의 영웅들과 비극을 살펴보면서 강자와 약자, 귀족적 급진주의라는 새로운 철학을 언급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민주주의에 대한 니체의 지적이 어떤 위치에 있는가도 살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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