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Ⅱ> 낭독을 마쳤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이 책을 읽는 동안 거의 전반적으로 몸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낭독을 하면서 몸에 남은 흔적이 거의 없는 느낌이다. 혼돈 속에서 책을 읽었고 다 읽고 난 뒤에도 혼란스러웠다. 잡스러운 메모들의 기록이었을까?
니체가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을 쓰기 전에 썼던 책들은 이와 같은 경구 스타일이 아니었다. 첫 책이었던 <비극의 탄생>(1872)은 지루하게 느껴질 정도의 속도를 가지고 있는 그리스 비극에 대한 논문이고, <반시대적 고찰>(1876) 역시 전형적인 논문의 형식을 띄고 있다. 이 책을 쓰면서 니체는 그동안 자신에게 큰 영향을 주었던 바그너, 쇼펜하우어에게서 멀어져갔다. 아니 그들의 철학과 음악을 뚫고서 자유로운 인간이 되기를 실험하고자 했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Ⅰ,Ⅱ가 그 실험의 결과였던 것 같다. 이전과 다르게 짧은 경구들로 이루어진 글들은 단순히 지성적으로 자신을 바꿀 뿐 아니라 신체적으로 전혀 다른 자신을 조직하려는 계속된 투쟁이었던 것 같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Ⅱ>는 두 개의 장으로 되어 있는데, 2장 처음과 마지막은 '방랑자'와 '그림자'에 대한 대화로 되어 있다. 그렇다면 방랑자란 누굴까? 아마도 위버멘쉬에 이르는 중인 니체 자신을 말하는 것 같다. 방랑자란 자유정신에 이른 사람이고 또한 그 와중에 있는 사람이다.
"어느 정도 이성의 자유에 이른 사람은 지상에서는 스스로를 방랑자로 느낄 수밖에 없다. ... 그는 그때 이미 어두운 빛 속에서 뮤즈의 무리들이 그의 곁에서 춤추며 산의 안개 속을 지나가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 후에 그가 조용히 오전의 영혼의 균형 속에서 나무들 사이를 거닐면, 그 나무 꼭대기와 우거진 잎에서 좋고 밝은 것들, 즉 산과 숲 그리고 고독 속에 살고 있는 자유 정신들의 선물이 던져진다. 자유정신들은 그처럼 어떤 때는 경쾌하고 또 금방 생각에 잠기는 현자, 방랑자 그리고 철학자들이다. ... 그들은 오전의 철학을 찾고 있다." (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Ⅰ> 450쪽)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Ⅰ,Ⅱ은 '자유정신'을 탐구하면서 자신의 사유를 실험하고, 새로운 신체를 얻기 위해서 니체가 혼돈 속으로 스스로 들어가서 마주친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방랑자는 자신의 터전을 떠난 사람이고 또한 그 목표가 정해져 있지 않은 사람이다. 그는 자신 속에서 우글거리는 다른 목소리(그림자)를 듣고 그들과 투쟁하면서 자유정신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더 작은 목소리들"은 이전에 귀기울이지 않던 내면의 욕망, 무의식의 충동들이라고 할 수 있다. 햇볕과 함께 생겼다가 사라지는 그림자처럼, 내면의 그림자는 이성의 조명과 함께 태어나고 죽는다.
방랑자 : 말소리가 들리는군. - 어디에 있는 거냐? 너는 누구냐? 나자신이 말하는 것과 거의 같은데, 다만 내 목소리보다는 더 작은 목소리 같군.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Ⅱ> 217쪽
방랑자는 마지막에서 '황금의 암호'를 발견한다. 위버멘쉬에 이르는 길. 인간이 "동물처럼 행동하는 것을 잊어버리도록 하기 위해 많은 굴레"가 필요했다. 그런데 이 굴레는 역설적으로 "맑은 공기와 자유로운 운동"을 막고 있다. 이제 다시 굴레를 제거해야 한다. "도덕적, 종교적, 형이상학적 관념들"이라는 "무겁고 의미 있는 오류"들을 제거해야 한다. 그리고 바로 지금이 그 적당한 때이다.
이후에 니체는 <아침놀>, <즐거운 학문>을 거쳐 <차라투스트라>를 쓰게 된다. 영원회귀의 사상, 위버멘쉬, 힘에의 의지와 같은 개념들은 공중에 떠 있는 개념들이 아니다. 니체가 스스로의 신체로 겪으면서 조형해낸 물질적 산물이기도 하다. 다르게 된다는 것은 생각을 바꾸는 일이 아니다. 삶의 리듬들을 바꿔내는 일들이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이라는 책이 혼란스럽고 하나로 잡히지 않는 이유다. 우리 또한 이 책을 읽으면서 그 혼란을 마주하고 덮혀져 있던 욕망들이 모두 다 들고 일어나도록 해야 한다. 그럴 때에야 비로소 자유정신의 방랑이 시작될 수 있다.
(양평군립미술관 2024년 뉴 앙데팡당 신진작가 전시회 : 한소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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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6
자신을 상실하는 것 - 비로소 자신을 발견했을 때, 우리는 때때로 자신을 상실하고 또다시 발견하는 법을 터득해야 한다 : 그가 사상가라는 것을 전제로 한다면 말이다. 즉 사상가에게는 하나의 인격에 묶여 있는 것은 항상 해롭기 때문이다.
350
황금의 암호 - 인간에게는 그들이 동물처럼 행동하는 것을 잊어버리도록 하기 위해 많은 굴레가 씌워졌다 : 그리고 실제로 인간은 다른 모든 동물보다 더 온순하고 지적이며 명랑하고 신중하게 되었다. 그런데 오랫동안 그에게 씌워진 굴레 그리고 맑은 공기와 자유로운 운동의 결여로 인간은 고통받고 있다 : - 이러한 굴레는, 여러번 되풀이해서 말하지만 도덕적, 종교적, 형이상학적 관념들이 가지고 있는 무겁고 의미 있는 오류를 말하는 것이다. 이 굴레의 병 역시 극복했을 때 비로소 최초의 큰 목표, 즉 동물로부터 인간의 분리라는 목표가 완전히 달성될 것이다. - 이제 우리는 이 굴레를 제거하는 일을 할 적당한 때에 서 있다. 그리고 그때는 극도의 주의가 필요하다. 그리고 오직 고귀하게 된 인간에게만 정신의 자유가 주어질 자격이 있다 ; 오직 그에게만 삶의 경쾌함이 가까이 다가와 그의 상처레 향유를 발라 줄 것이다. ; 그가 가장 먼저, 자신은 기쁨을 위해 살고 있지 그 어떤 다른 목표를 위해서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할 자격을 가진다. 4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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