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송소희의 새로운 노래들을 처음 듣게 되었습니다.
역시 요즘은 국악이 최고로 힙한 음악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이런 생각을 하다가 요즘 국악이 왜 이렇게 힙하게, 자유롭게, 마치 무의식의 해방감을 만끽하는 것처럼 들릴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건 아마도 무의식과 연결되어 있는 듯.
막스 베버는 <음악사회학>에서 인류의 문명들은 모두 5음계를 가졌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융성한 문명을 가졌던 지역에서 모두 5음계를 썼다는 점과 도덕성을 연결시키는데 아주 흥미롭습니다. 우선 5음계는 아마도 우리 신체의 형태와 크기에 연관이 있을 것 같은데, 더 주목하고 싶은 것은 반음을 쓰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생각해보면 너무나 당연하기도 합니다. 온음과 달리 반음은 신체적 변이를 더 많이 느끼게 하거든요. 지금도 반음계(크로마틱) 쓰여진 음악을 들으면 아주 감정적이 됩니다. 대표적으로 반음계를 잘 사용했던 드뷔시 음악은 듣는 순간, 힘이 풀리고 몽롱한 느낌. 평소의 이성적이며 긴장했던 순간이 풀어지는 느낌을 갖게 됩니다. ^^;;
근대의 음악들은 대부분 온음 중심이었고, 이런 음악을 듣게 되면 감정적이기보다는 (물론 음악 자체가 정서적이지만 한계 내에서 그건 허용된 변이) 이성적이고 의식적인 생각과 행동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항상 이렇게 이성적이고 의식적으로 살아가게 되면 한 순간도 긴장을 풀지 못하는 것입니다. 한 번도 쉬지 못하는 정신이 되느거죠. 이럴 때 반음계 혹은 미끄러지는 듯한 음들을 들으면 우리의 의식은 신체적으로(본능적으로) 긴장을 풀게 됩니다.(라고 생각)
국악의 특징이 바로 여기 있습니다.
국악 역시도 5음계를 쓰지만, 민요나 판소리를 들어보면 모두다 정확하게 그 음을 내기보다는 '미끄러지는 듯한' 소리를 냅니다. 그렇게 때문에 지금도 국악을 악보로 적는 것은 거의 의미가 없죠. 그 '미끄러짐'이 국악인데, 악보(문자)로는 그 '미끄러짐'을 적을 수 없기때문입니다. 국악은 항상 스승에게, 도제식으로 배울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여하튼, 그래서인지 요즘은 국악을 들으면 (물론 훌륭한 소리와 음악성은 기본), 긴장감이 풀어지고 무의식적인 나를 방출하는 기분이 듭니다. 무의식은 어떤 면에서 아주 신체적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신체성을 잃어버리면 정신 역시도 무너지게 됩니다. 이런 점을 승화시켜서 드러내는 것이 바로 예술!
그래서 국악 중에서도 굿음악을 들으면 주술적인 의식을 치르는 것처럼 정화의 기분을 느끼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굿음악을 예술적로 잘 풀어낸 그룹들이 꽤 있는데 작년에 직접 콘서트에 가봤던 64ksana의 음악 추천합니다. 왜 이런 음악콘서트에 젊은 친구들이 열광하는지 이해하게 됩니다.
64ksana 음악 한번 꼭 들어보세요. ^____^
이전의 글도 한번 읽어보시면.
정신분석과 예술
무당굿과 한국예술
https://youtu.be/Zbo7UY8dxh8?si=YlPJc4kAgISv_2A9
https://youtu.be/8STADdZ0hac?si=42ldCojoBEJn3fRk
https://youtu.be/geZxqPP_n2g?si=jXIbQeWmieWXa13C
https://youtu.be/eiji1Cz1Bmk?si=P8hW7pPsdvkZOm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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