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정신분석학까지 공부해야 하나?" -.-;;;
2025년은 '라캉을 중심으로' 공부하겠다고 했는데, 프리(pre)시즌이라고 할 수 있는 '프로이트로 돌아가자'의 신청자가 많지 않다. 정말 중요한 공부라고 생각하는데 다들 관심이 없는걸까 아니면 "인문학 공부가 중요하다고 하지만, 정신분석학까지 공부해야 하나. 그것도 난해하다는 라캉의 정신분석학을." 혹시 이런 의심을 갖고 있는 건 아닐까.
낯설고 어렵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사실 우리는 거의 매일 다양한 방면에서 정신분석학과 마주치고 있다. TV채널만 틀면 나오는 오은영박사는 물론이고 수많은 프로그램들, 드라마 심지어 예능까지도 심리적인 부분과 무의식적인 부분에 대한 이야기로 만연하다. 그런데 우리의 삶이 이렇게 심리학, 정신의학, 정신분석학에 둘러쌓여 있으면서도 정작 무의식이 무엇인지 제대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 무의식을 아는 것이 왜 이렇게 중요해졌을까? 정신분석학이 '무의식'에 대한 탐구라면 결론적으로 정신분석학은 주체의 문제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20세기 이후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철학자-예술가 니체(1844~1900)는 거의 말년에 <이 사람을 보라>라는 특이한 자서전을 썼다. 흥미로운 것은 "어떻게 사람은 자기 자신이 되는가?"라는 이 책의 부제다. 사람이 태어나면 자연스럽게 나 자신이 되는것 아닌가 생각할 수 있는데, 니체는 자기 자신을 구성해야하고 실험해야 한다고 말한다. 니체는 프로이트(1856~1939)와 비슷한 시기에, 아니 조금 더 이른 시기에 무의식의 중요성을 파악했고, 그러면서 이 무의식적 주체를 구성하는 실험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이성이 아니라 감성, 의식이 아닌 무의식, 언어가 아닌 비언어적 예술을 강조했던 니체.
니체가 철학적, 예술적으로 무의식에 대해 썼다면 프로이트는 최초로 무의식을 발견하고, 본격적으로 무의식이 어떻게 존재하며 구성되는지를 탐구했다. 그리고 라캉은 '프로이트로 돌아가자'라는 슬로건을 가지고 말 그대로 평생에 걸쳐 무의식의 메커니즘, 구성에 대한 세밀한 탐구를 이어갔다. 중요한 것은 무의식이 발견된 이후 '주체'의 문제다.
프로이트-라캉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주체의 문제는 당연히 이성과 합리, 의식의 문제였다. 어떻게 하면 좀 더 건강한 자아를 갖고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하지만 빙산의 아래부분으로 일컬어지는 거대한 '무의식'이 발견된 이후 알게 모르게 자아는 가면이자 타자의 이름(아버지의 이름)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문자의 발명으로부터 시작된 주체성이 점점 더 커진 결과다. 문자의 발명 - 텍스트(visual text)의 발명 - 그리고 디지털 텍스트로의 변화까지. 주체성이 높아졌다는 것은 속마음과 행동의 간극이 커졌다는 뜻이고, 신경증을 비롯한 정신병이 모두에게 일상이 되었다는 뜻이다. 내면의 복잡성이라고 할 수 있는 자아 정체성이 높아지면서 역설적으로 '무의식적 충동' 또한 점점 더 높아졌다.
부모님의 말을 한 번도 어긴 적이 없고, 또한 자신이 속한 조직, 국가의 법과 규범을 잘 지키며 나름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데도 이상하게 채워지지 않는 부분이 있다. 부모, 조직, 국가, 법, 규범은 모두 나의 특이성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프로이트-라캉은 조금 위험하게 들리는 죽음충동, 공백을 이야기한다.
철학이 삶의 지혜라면 지금은 무의식을 탐구하지 않고서는 지혜로운 삶을 살기 어려워진 시대다.(고 생각한다) 문학, 예술을 비롯해서 무의식이라는 말은 여기저기서 들리지만 사실 '무의식'이 어떻게 구성되고, 존재하고, 작동하는지 거의 알지 못한다. 니체가 말년에 '나는 어떻게 나 자신이 되는가'라고 물었던 질문은 지금 2025년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질문이다. 니체식으로 보면 심연을 들여다보는 것은 두렵고 무서운 일, 사실은 불가능한 일이다. 다만 함께 긴장감을 가지고 공부하면면서 서로가 무너지지 않도록 격려하다 보면 니체가 물었던 질문에 따로-또같이 답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프로이트-라캉을 중심으로, 무의식에 대한 탐구를 중심으로 좋은 친구를 만나기를 기대해본다.
다음주에는 홍보글 2탄을 써보겠습니다. ^^
지금 라캉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 2- 정신분석과 예술
라캉(1901~1981) & 프로이트(1856~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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