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루스트를 기억하며 - Reynaldo Hahn “À Chloris”
마르셀 프루스트는 마흔이 넘는 나이에 쓰기 시작해서 단 하나의 소설을 썼다. 4000페이지가 넘는 소설이지만(국일미디어 11권, 펭귄클래식 12권, 민음사 13권(예정)) 이 방대한 소설에서 그가 말하려 하는 바는 간단하다. 일상의 아름다움, 매번 반복되지만 그 안에서 표현되는 ‘차이’들에 대한 발견. 그래서 그에게 삶은 예술적이어야 했고, 그에게 예술이란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자기 자신이 경험한 세계에 대한 표현이어야 했다. (그래서 프루스트는 진부한 표현에 거친 언어를 담아서 욕하곤 했다.)
그의 소설에 거대한 사건은 없다. 소설 전체에 걸쳐 드레퓌스 사건이 나오고 마지막 권에서 1차 세계 대전이 나오지만 이러한 사건(?)들은 전경이 아니라 단지 배경으로 나타날 뿐이다. 프루스트는 자신의 책에서도, 일상의 생활 속에서도 그리고 좋아하는 문학, 미술, 음악 작품 속에서도 남들이 주목하지 않는 작은 부분들에 주목한다. 한 번도 눈길받지 못했던 그림의 한 부분, 누구도 표현하지 않았던 방식의 묘사들 그리고 음악!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많은 음악 작품들이 나오지만 교향곡이나 협주곡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다. 대부분의 작품들은 작은 소품들이나 실내에서 연주할 수 있는 곡들이 대부분이다. 좋아하는 곡의 형식이나 내용들은 곧바로 프루스트의 소설과 연결되는 듯 하다.
레날도 안의 À Chloris라는 곡을 처음 들을 때도 딱 그렇게 느꼈다. 3분이 채 되지 않는 짧은곡이지만 글자가 아닌 음악으로 프루스트의 마음을 느끼게 해준다. 물론 레날도 안은 프루스트의 사랑하는 관계이기도 했고 죽을 때까지 어이지는 우정을 나눈 친구이기도 했다.
오르내리는 처음 나오는 4개의 음들은 <잃어버린~>의 주인공인 마르셀이 홍차와 마들렌을 먹으면서 어떻게 할머니의 사랑을 되찾게 되었는지, 게르망트가의 정원 포석에 부딪히면서 다시 체험하는 베네치아와 어머니를 기억나게 한다. 프루스트는 문자를 통해서 이러한 자신이 감각한 세계를 보여주었지만, 레날도 안은 음악 소리 자체로 자신이 감각한 세계를 우리에게 전달해주고 있다.
처음부터 마지막 부분까지 오르내리는 이 4개의 음을 통해서 사소한 것, 일상의 아름다움, 떨림은 말해주는 것 같다. 특히 마지막 부분에서 다시 반복되는 부분과 마지막 부분은 시작과 끝에 그리 목매지 말라는 이야기를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짧은 길이, 떨림 있는 모티브, 피아노 한 대로 표현할 수 있는 형식 자체가 프루스트를 떠올리게 하는 이유인 것 같다.
https://www.youtube.com/watch?v=ih6UCcIvE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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