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프루스트 읽기

다시 읽을수록 빛을 발하는 책 - 게르망트쪽

by 홍차영차 2022. 7. 19.

다시 읽을수록 빛을 발하는 책, ‘게르망트 쪽’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가장 길다는 '게르망트쪽'을 다 읽었습니다.

마르셀에게도 낯설었겠지만, 유럽인도 아니고 귀족(?)같은 존재를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어선지 저에게도 낯설었습니다. 5권에서 빌파리지 부인의 살롱에서 펼쳐지는 말과 행동이 참 이상하다고 느꼈는데, 6권에서 수백페이지에 펼쳐지는 게르망트 사교계의 기호들은 익숙한 듯하면서 전혀 이질적이어서 난감했다는.

2022년 지금도 많이 쓰는 똑같은 말과 행동(기호)인데, 지금과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니면서 통용되는 것을 보면서 100년전 서유럽 귀족들의 사교계는 지금 우리와는 전혀 다른 정신구조의 인간들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똑같은 기호이지만 그 체계가 다르기에 같은 기호가 전혀 다른 의미와 목적을 보이면서 쓰인다는 점!

한 편으로 귀족들이 보여주는 가식적인, 앞에서 칭찬하고 뒤에서 다른 소리를 하는 겉과 속이 다른 면모는 지금 우리에게도 아주 익숙합니다. 2022년에는 귀족(?)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가면을 쓰고 서로를 대하고 있으니까요. 계급이 무너지고 모두가 평등해졌다고 하지만, 역설적으로 모두가 가면 속에 숨어 버리면서 누구도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지 못하는 세계가 된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게르망트 부부의 모습은 매일 매일 화려한 살롱을 드나들고, 자신의 살롱을 아름답게 꾸미고 사람들을 초대하고 수많은 말들과 행동을 토해내고 있지만, 한 번도 '삶 그 자체'를 살아가지 못한 것 같아 불쌍해보이기도 합니다.

'게르망트쪽'에는 수백페이지에 걸쳐 귀족 살롱의 모습이 묘사됩니다. 처음에는 집중해서 보려고 하지만, 백페이지 이백페이지가 넘어가면서는 '여긴 어디, 난 누구'라는 생각이 올라오죠. -.-;;; 그런데 신기한 것은 다시 읽고, 또 다시 읽을수록 이전에 보이지 않던 '보석'들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는 점입니다. 어떤 소설은 한 번만 봐도 충분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프루스트의 책은 다시 읽을수록 이전에 발굴되지 않던 길이 보이고, 어두컴컴한 숲에 묻혀 있는 보물들을 보게 됩니다. 

아쿠아샘이 인용한 문구들은 이전에 두번씩 읽었는데도 완전히 '새로운 문장'이었고, "이렇게 아름다운 문장이 있어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쿠아샘 말대로 마르셀의 인상깊은 이야기들이 여기 저기 숨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다시 펼쳐보고 싶다는 욕망!

'할머니의 죽음'을 주제로 썼던 신짱샘의 이야기에 우리는 각자 자신의 기억과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소환했습니다. "나는 왜 이렇게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지 못할까"라는 생각과 함께. 기쁠 때 기쁘다고 말하고, 슬플 때 슬픔을 표현하는 능력을 모두 잃어버린 것 같다는. 그래도 프루스트를 읽으면서 조금 더 자신에게 다가갈 수 있는 것 같아서 좋았어요. 각자의 '와사비 과자'를 떠올려보았습니다.

문제적 남자였던 '샤를 뤼스'에 대한 이야기에서는 사랑론과 함께 최근의 페미니즘 이야기까지. 거기서 동성애에 대한 이야기까지 확대되었습니다. 프루스트의 책은 한 마디로 '사랑과 예술'에 대한 4000페이지 담론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 이전에 스완의 사랑, 마르셀의 사랑을 썼던 멋진나무샘이 '샤를뤼스와 마르셀'의 오묘한 관계를 풀어줘서 좋았다는. 사랑은 성별/젠더가 아닌 내가 그 사람에게 느끼는 '그 사람다움'이라는 말이 마음에 많이 남네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