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에서 비극이라는 형식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은 아폴론 덕분이다?
그동안 그렇게 열심히 <비극의 탄생>을 읽고 나서 무슨 딴소리인가.
소크라테스는 지식과 통찰에 대한 전대미문의 이러한 새로운 존중을 가장 예리한 말로 표현했다. ... 대정치가, 연설가 시인, 예술가들과 비판적으로 대화를 나누면서 도처에서 '알고 있다'는 착각에 마주치게 되면서,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고 인식하는 유일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 저 유명인사들 모두가 자신의 작업에 대해서 올바르고 확실한 통찰을 갖지 못한 채 오직 본능만으로 자신의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단지 본능만으로'라는 이러한 표현으로 우리는 소크라테스적인 경향의 핵심을 건드리고 있다. 소크라테스는 이러한 표현으로 기존의 예술과 기존의 윤리 모두를 단죄하고 있다. 그가 검토의 시선을 던지는 곳마다 통찰의 결여와 망상의 지배가 포착되었다. ... 소크라테스는 단독적인 한 개인으로서 경멸과 우월에 가득 찬 표정으로 아주 새로운 종류의 문화, 예술, 윤리의 선구자의 입장에서 하나의 세계 속으로 ... 걸어 들어갔던 것이다. (니체 <비극의 탄생> 아카넷, 173~174쪽)
<유고(1870~1873)>의 강의에서도 니체는 반복해서 비극의 핵심이 '디오뉘소스적 도취'라고 주장했고, <비극의 탄생>에서는 좀 더 종합적인 분석을 하면서 '디오뉘소스적 충동'이 없었다면 비극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비극의 탄생>을 촘촘하게 읽게 되면서 새롭게 마주친 사실은 아폴론적인 질서와 조형예술이 없었다면 고대 그리스 아테네에서 비극이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분명 니체는 소크라테스라는 특별한 비(非)신비가를 기점으로 세계가 바뀌었다고 말한다. "덕은 지식이다. 죄는 오직 무지에서 나온다. 유덕한 자는 행복한 자이다."(183)라는 소크라테스의 명제들이 정착하면서 낙천주의적 변증론이 힘을 얻었고, 이후로부터 이전과는 "아주 새로운 종류의 문화, 예술, 윤리"(174)가 생겨났다. "논리적 천성이 일종의 이상 발육을 통해서 과도하게 발달"(176)했다는 것은 더 이상 소크라테스만이 가진 특성이 아니라 소크라테스 이후의 많은 이론적 인간들이 갖게 된 특징이 되었다. 논리적 충동은 이제 간단히 제압할 수 없는 수준으로 커졌고, 소크라테스 이후 이론적 인간들에게 세상의 모든 현상들은 인과적으로 설명되어야만 했다. 놀랍게도 니체는 이러한 학문이 궁극적으로 마주치게 되는 것은 학문(인식/논리)의 한계이고, 그렇게 때문에 학문은 메커니즘적으로 예술과 신화를 지향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물론, 1870년대에 니체가 도달한 예술과 신화의 형태는 바그너의 음악극이었다.
예술가는 진리의 베일이 아무리 벗겨져도 그렇게 벗겨진 후에도 여전히 숨겨져 있는 것에 매혹당한 시선을 고정시킨다면, 이론적 인간은 내던져진 베일에서 기쁨과 만족을 느끼며 그의 최고의 기쁨은 자신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성공적인 베일 벗기기의 과정 자체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가장 정직한 이론적인 인간인 레싱은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진리 그 자체가 아니라 진리를 찾는 행위 자체라고 감히 말했던 것이다. ... 오만한 것은 아니었지만 과도하게 정직했던 레싱이 이러한 고립된 인식 옆에 소크라테스라는 인물을 통해서 처음으로 세상에 나타나게 된 의미심장한 망상이 존재한다. 이러한 망상은 사유가 인과율의 실마리를 따라서 존재의 가장 깊은 심연에까지 도달하고 존재를 인식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수정할 수도 있다는 저 확고한 믿음이다. 이러한 숭고한 형이상학적 망상은 본능으로서 학문에 주어지며, 학문을 거듭해서 그것의 한계에까지, 즉 학문이 예술로 전환될 수밖에 없는 한계로까지 이끌어간다. 학문은 이러한 메커니즘에서 원래 예술을 지향하는 것이다. 190~191
학문의 사명이란 존재를 이해 가능하고 정당한 것으로 나타나게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 논거가 충분하지 못할 경우에는 궁극적으로 신화도 사용되어야만 한다. 신화는 학문의 필연적인 귀결이며, 아니 오히려 학문의 목적인 것이다. 192
'학문이 예술과 신화를 지향하게 된다'는 것은 소크라테스 이후 비극이 쇠퇴해가는 시점에 대한 역설적인 분석이다. 비극이 호메로스의 서사시와 아르킬로코스의 서정시가 결합되면서 나온 형태이고, 니체의 관점에서 보면 이러한 비극은 아이스퀼로스에서 정점을 이루고 소포클레스를 거쳐 에우리피데스에서 해체된다. 당연히 이러한 추세는 비극에서 점점 더 큰 역할을 맡게 된 음악과 대비되는 논리적인 대화(학문) 덕분이다.
그런데 이번에 소크라테스에 대한 니체의 분석에서 주목하게 된 부분은 소크라테스 이후 비극의 쇠퇴가 아니라 비극 이전의 맥락에서 어떻게 비극이 '탄생'하게 되었는가였다. 분명 비극은 서사시와 서정시를 결합시키고 그 두 가지를 보완하는 플러스 알파를 가지고 형성되었다. 그렇다면 비극이 바로 이 시점에, 도시 국가 아테네에서 '탄생'하게 된 이유가 뭘까? (사실 이러한 논의 자체도 이론적 인간의 논리적 충동이자, 진리에 대한 의지라고 봐야한다.)

'문자와 정신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또다시 하지 않을 수 없다. 문자 이전에 개인, 정신, 자아, 소유와 같은 개념들은 없었다. 당연히 사람들이 있었지만 이 사람들은 집단의식을 가진 일부였고, 집단의식과 떨어져 '자기 인식을 가진 개인'들은 존재하지 않았다. 문자 이전의 인간들은 '신화적 정신공간'을 가지고 삶을 살아갔다. 문자 이전의 집단적 인간들에게는 소크라테스가 "먼지 속에 쏟아 부었다는 마법의 술"(175)이란 아주 익숙한 것이었고, 마법적(신화적) 힘을 인정하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을 불가능했다. 그때는 의식과 무의식이 분리되지 않은, 자아와 주체가 일치하는 일종의 원형적 인간 모습을 갖고 있었다.
문자의 발명 이후에 점차적으로 타자와 다른 자기를 인식하면서 개인의식이 생겼고, 다른 사람과 다른 생각을 할 수 있고, 그 생각이 나의 소유라는 지점까지 이르게 된다. 문제는 문자라는 것은 일종의 배제를 통해서만 나타난다는 점이다. 니체가 언급했던 아폴론적인 조형예술의 특징을 떠올려보면 된다. 니체가 인용한 스콜라 철학자의 정의가 이 점을 아주 잘 드러낸다. "개념들(문자)은 사물 이후의 보편이지만, 음악은 사물 이전의 보편이고, 현실은 사물 속의 보편"(203)이라는 것을 떠올려보자.
나는 집에서 기르는 고양이를 '미미'라고 부른다. 하지만 미미라는 이름(문자)은 사물 그 자체로서 존재하는 고양이가 아니다. 하지만 내가 그 수많은 고양이중에서 집에서 기르는 고양이를 부르려면 이름(문자)이 필요하다. 고양이를 '미미'라고 부르는 순간, 살아있는 고양이는 죽고 그 이름만 남는다. 아폴론적인 조형예술, 질서, 법칙들은 모두 이와 같은 특징을 갖고 있다. 문자나 개념은 사물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잉여적 특성들을 모두 포함할 수 없다. 수많은 잉여들을 배제할 때만 문자, 개념, 형상으로 나타낼 수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비극 탄생, 학문이 메커니즘적으로 예술과 신화를 지향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이해하게 된다. 아무리 인과적으로, 과학적으로 설명하려고 해도 닿을 수 없는 부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어떤 마법적인 힘으로 그는 이 마법의 술을 먼지 속에 감히 쏟아버릴 수 있는가? 인류 가운데 가장 고귀한 인간들의 영혼의 합창단이 부르짖는 다음과 같은 소리를 들어야 하는 반신은 누구인가? "슬프도다! 슬프도다! 그대는 이 아름다운 세계를 억센 주먹으로 파괴했도다. 세계는 무너지고 부서진다!"
소크라테스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는 열쇠를 제공해 주는 것은 '소크라테스의 다이모니온'이라고 불리는 저 기이한 현상이다. 그의 거대한 지성이 흔들리기 시작하는 특수한 상황에서 그는 그러한 순간에 들려오는 신적인 목소리를 통해서 확고한 발판을 얻었던 것이다. 이 소리는 항상 무엇인가를 하지 말라고 경고하는 방식으로 들려온다. ...... 모든 생산적인 인간에게는 본능이야말로 창조적이고 긍정적인 힘이고 의식은 비판적이고 경고하는 역할을 하는 반면에, 소크라테스에게는 본능이 비판자가 되고 의식이 창조자가 된다. 정녕 결함으로 인해 생겨난 괴물이 아닌가! 끄뿐 아니라 우리는 소크라테스에게는 모든 신비주의적 성향이 기괴할 정도로 결여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따라서 소크라테스는 특별한 비신비가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신비가에게는 저 본능적 지혜가 지나치게 발달되어 있는 것처럼 소크라테스에게는 논리적 천성이 일종의 이상 발육을 통해서 과도하게 발달되어 있다. (니체 <비극의 탄생> 175~176쪽, 아카넷)
기원전 8세기경 호메로스의 작품들이 문자로 기록되었다. 완전하지는 않더라도 고대 그리스 문자가 발명되고 사용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바로 이때부터 문자를 사용하면서 배제되는 부분이 발생했다는 뜻이다. 그렇게 300~400년이 지나고 나타난 것이 도시 국가 아테네였다. 수백년 동안 그리스 지역의 패권을 갖고 있던 스파르타가 아니라 아테네에서 비극이 탄생했을까? 왜냐하면 아테네는 특이하게도 로고스(logos) 중심으로 형성된 직접 민주주의(demos-kratia)의 세계였기 때문이다. 당시에 다른 도시 국가들이 과두정치나 전제정치를 하던 것과 달리, 수많은 토론과 세미나, 수사학이 넘쳐나던 아테네는 직접 민주주의라는 생소한 정치체제를 통해서 에게해의 패권을 갖게 되었다.
아테네인들은 로고스 중심으로 이뤄낸 자신들의 정치-삶의 방식에 일종의 구멍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스인들은 문자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디오뉘소스적 생명력 혹은 충동을 잉여적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직면하면서(face to face) 그 생명력과 충동을 대응하는 기예(ars)를 발명해냈다. 그게 바로 비극이다.
물론 비극 이전에도 서사시, 서정시라는 문학/문화 혹은 예술이 있었지만 비극이야말로 최초의 예술형식이라 해도 좋을듯하다. 예술이란 이렇게 아폴론적 세계의 등장 이후에 문자와 형상으로는 덮지 못하는 구멍에 대응하기 위한 기예이기 때문이다. 이후의 사태는 니체가 <비극의 탄생>에서 보여줬던 그대로다. 비극 이전의 상황을 고려해보면 <비극의 탄생>에서 니체가 비극의 핵심은 대화가 아니라 음악이라고 주창하는 이유를 쉽게 알 수 있다.
비극의 탄생은 아폴론 덕분인가 아니면 디오뉘소스적 도취때문인가.
만약 문자가 발명되지 않았다면, 아폴론적 세계가 그리스 아테네에 퍼져 있지 않았다면 '비극이라는 새로운 형식'은 나타날 수 없었다. 하지만 디오뉘소스적 충동 혹은 생명력은 비극의 정수임에 틀림없다. 한 마디로, 아폴론적 질서와 형상들이 세계를 망쳤다고 절망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문자가 발명되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이렇게 불안해하고, 예술을 낯설어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불평할 이유도 없다. 아폴론으로 대변되는 문자적 질서가 사물 그 자체를 드러내지 못하면서 잉여들을 배제해버렸지만, 그 사이의 간극들이 강력한 압력으로 작용하면서 새로운 예술형식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으니까 말이다.
3년 전쯤인가 문자와 언어가 가진 한계에 대해서 허우적거리면서 절망하고 있을 때, 프루스트의 소설과 랑시에르의 글, 블랑쇼의 에세이, 그리고 고이케 마사요의 시론을 통해서 힘을 얻었던 적이 있다. 그 때 아래의 글을 썼는데, 정말 암흑속에서 겨우 발견한 한 줄기 빛이었다. 이번에는 '겨우' 살아가게 하는 한줄기 빛이 아니라 좀 더 든든하게 살아갈 수 있는 더 근원적인 생명력을 발견한 듯하다. 그리고 니체는 바로 이런 과정을 통과하면서 '예술적 소크라테스'(186)인 차라투스트라를 발명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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