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론
철학, 예술 그리고 정신분석의 상관관계
‘문자와 정신공간’의 변화에는 3번의 중요한 변곡점이 있었는데, 첫번째는 자음/모음으로 이뤄진 문자의 탄생이다. 두번째는 12세기경에 띄어쓰기와 마침표와 같은 기술로 완성된 현대의 책(visual text)과 같은 형태로의 발전이다. 마지막으로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디지털 텍스트로의 변화라고 할 수 있다. 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자아라고 하는 내면의 복잡성이 지금과 같은 정도로 급격하게 높아지게 된 시점은 바로 텍스트의 발명 이후라고 할 수 있다.
서양역사로 보면 기원전 800년경에 최초의 문자가 발명되었고, 이로부터 300~400년 정도 지나면서 최초의 철학자(philia+sophia)라는 소크라테스가 나타났다. ‘문자와 정신공간’ 측면에서 보면 철학이란 문자가 나타나면서 나타난 ‘속마음과 행동’ 사이의 간극을 메우려는 시도로서 나타났다. 소크라테스 이후의 모든 철학을 이렇게 이해할 수 있다.
문자가 탄생한 이후에 내면의 복잡성이 급속도로 높아지지 않았을까. 고대 그리스 아테네 시대는 조금 특별하게 logos를 중심으로 세워진 도시국가였기 때문이다. 또 하나. 이때부터 두번째 변곡점까지 의식의 다양성이 넓어지기는 쉽지 않았다. 왜냐하면 개인정신은 어떤 개념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지는데, 12세기까지 거의 모든 읽기는 낭독이었고, 텍스트의 숫자도 그렇게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텍스트의 종류도 많지 않았고, 텍스트를 혼자서만 읽을 수 있는 (묵독) 능력을 가진 사람을 거의 없었다.
문자의 발명부터 중세기 끝날때까지 내면의 복잡성은 그리 높지 않았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겪었던 속마음과 행동의 간극은 다양한 마법적, 신화적, 종교적 의례를 통해서 해소되었다. 하지만 데카르트의 선언 이후에 개별적 주체성이 급속히 높아졌고, 과학과 이성으로 무장한 개인들은 더 이상 신화, 마법, 종교를 믿을 수 없게 되었다. 문제는 여기에서 발생한다. 이성의 언어만을 신뢰하고, 인과적 사고만을 믿는 과학의 인간들에게 속마음과 행동 사이의 간극은 더 커져갔다. 그렇다고 중세인들처럼 마법적인 의례들을 할 수도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근대인들을 구제한 것이 바로 예술이다. 돌이켜보면 현재와 같은 다양한 예술의 실험이 시작된 것은 데카르트의 선언 이후의 일들이다.
마지막으로 19세기, 20세기에 정신분석도 같은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다. 점점 넓어지고 있는 의식과 무의식의 간극, 스스로의 욕망이 무엇인지, 자기도 모르게 나를 이끌고 있는 충동들이 무엇인지 이성적으로 파악하는 과정이 필요해졌다. 신을 믿을수도 없고, 예술적 활동도 하지 못하는 똑똑한 사람들이 찾는 마지막 창구가 바로 정신분석학이다. ‘속지 않는 자들이 방황한다’는 라캉의 말을 다시 새겨보아야 한다.
한 마디로, 현대는 ‘철학, 예술, 그리고 정신분석의 트라이앵글’ 속에서 자기 삶을 잘 살펴봐야 한다. 철학, 예술, 그리고 정신분석은 특별한 사람이나 혹은 병자에게 필요한 것이 아니라 21세기를 살아가는 누구에게나 요구되는 필수적인 생존기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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