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 괴담회>,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의 이야기>, <당신이 혹하는 사이>, <과몰입 인생>, <알쓸신잡>, <알쓸범잡>, <풀어파일러>, <용감한 형사들>, <그녀가 죽었다> 등등.
최근 몇년 사이에 급속하게 늘어난 TV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들 모두는 '이야기'를 해주고 '듣는다'라는 공통된 특징을 갖고 있다. 아마도 전체 TV프로그램들을 살펴본다면 이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을 차지할 것이다. 또한 유튜브의 많은 영상들이 주로 이야기를 들려주고나 주고 받는 것으로 이뤄졌다. 그런데, 상상하는 모든 것을 보여줄 수 있는 기술을 갖고 있는 첨단의 시대에 왜 사람들은 옛날 이야기를 듣는것처럼 이렇게 이야기를 듣는 프로그램들을 좋아하게 됐을까? 보는 시대에서 다시 라디오에서 드라마를 듣는 시대로 역행하는 걸까?
한마디로 말해서, 스펙타클한 영상들이 역설적으로 우리의 상상을 제한하기 때문이다.
정신적이라고 생각하는 상상과 감정은 신체와 분리될 수 없다. 그렇다면 뭔가를 보고 웃고 슬퍼하고 분노하는 것은 신체적인 감각, 신체의 감각과 깊게 연결되어 있다. 그런데 너무나 사실처럼 보이는 그리고 실제 현실보다도 더 멋지게 보이는 영상들은 오로지 신체에서 오로지 시각에만 영향을 준다. 스펙타클한 영상들로 차고 넘치는 상황에서 이제 시각은 웬만한 자극에는 반응하지 않는다. 감정이란 신체적 변이라고 할 수 있는데, 시각적인 자극이 더 이상 신체적인 변이를 생산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우리는 헐리웃의 입체적인 형상보다 여전히 미야자키 하야오, 신카이 마코토의 비현실적인 그림을 더 좋아한다. 왜냐하면 이 그림들은 눈만을 자극하는 것이 아니라 비사실적이고 2차원적인 그림은 3차원을 넘어서는 다양한 자극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우리의 다른 감각들과 상상력은 이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더 크게 작동한다.
두번째로 기승전결의 구조로 된, 혹은 이러한 구조를 변경(결-기승전)을 통해서 형성된 서사(narrative)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그동안의 영화, 영상 작업은 나름의 이야기 구조를 영상으로 펼쳐주는 방법이다. 이러한 방식과 영화라는 형식은 (선형적) 시간이 아주 중요한 요소로 작동한다. 너무 오래된 이야기이지만 브루스 윌리스가 유형이야라는 이야기를 알게 되면 <식스 센스The sixth sense>를 볼 감흥이 사라진다. 그런데 현재 영화를 보느 구조는 이러한 선형적 시간을 유지하기 어렵다.
넷플릭스로 대표되는 새롭게 영상/영화를 보는 구조에서 누구나 너무나 쉽게 선형적 시간이라는 장애물을 걷어낼 수 있다. 즉, 참을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다. 궁금하면 바로 끝으로 가서 사건이 어떻게 해결되는지, 누가 범인인지, 결혼은 하는지, 주인공이 죽는지 확인할 수 있다. 영화를 보는 환경이 바뀌었기 때문에 더 이상 기승전결의 내용으로 감흥, 쾌락을 갖기 어려워졌다. 범인이 누구인지 도저히 알 수 없다는 상황 속에서 다음 시간을 기다리면서 점점 더 그 (영화적) 상황 속으로 빠져드는 것이 중요했다. 그러면서 다양한 상상들이 펼쳐지고, 이를 위해서 신체적으로도 다양한 감각들이 동원된다. 하지만 이제는 누구도 이러한 상상의 에너지를 쓸 필요가 없다. 지금 바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더 자극적인 이야기, 꼬이고 꼬인 이야기를 생산할 수 있겠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영화를 보는 감흥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반면에 이야기를 듣는 것은 처음 말했던 시각만으로 제한되었던 감각이 활용되면서 조금 더 신체적인 자극을 받게 된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다양한 상상력이 펼쳐지기 때문에 단순하게 시각이나 청각에만 머물지 않고 온갖 신체가 반응하는 역동을 맛볼 수 있다.
또한 영화에서도 역시 기승전결 이야기나 화려한 영상보다는 다양한 감각을 살아나게 하는 시도들이 펼쳐진다. 아주 지루하게만 보이는 평범한 일상들에 카메라를 들이밀고 거기서 펼쳐지는 아주 사소한 차이들을 보여줄 수도 있고, 스펙타클한 영상을 의도적으로 줄이면서 영화를 보면서 시각 이외의 다른 감각들이 깨어나게 할 수 있는 방법도 있다. 수동적 격동이 아닌 작은 차이를 스스로 발견하는 능동적 경험을 주는 영화들.
신기한 것은 이렇게 시대가 바뀌고 있지만, 텍스트가 가진 힘은 여전하다는 것. 아니 이렇게 스텍타클한 영상에 지친 사람들일수록 텍스트가 주는 잔잔한 힘에 더 감동받게 된다. 화려한 영상들이나 기가막힌 이야기가 주는 정념들(수동,passion)이 아니라 텍스트를 읽으면서 내적으로 생성되는 변화를 일으키는 텍스트.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텍스트의 시대, 문학의 시대, 읽기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이후에 영화를 왜 볼 수 없는지, 영화를 볼 수 없는 신체에 대해 조금 더 써보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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