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드락길, 통새미, 검질기다, 몽따다
<조각난 지혜로 세상을 마주하다>를 읽나서서 건진 단어들이다.
한글로 된 책인데 영어 원서를 읽듯이 사전을 찾아봐야 하는 책, 김영민 샘의 글을 읽는 특징이다. 물론, 여기서 건진 것은 단어들만이 아니다.
김영민 선생님의 글은 이상한 기운이 있다. 읽을 때마다 자리를 고치게 되고 마음을 바로잡게 한다. 문장 하나 하나 단어 하나 하나를 보면 거기엔 그 어떤 정념적인 것 하나 없다. 하지만 간결한 문장들과 적확한 단어를 읽다보면 "자기구제의 공부길"에서 내가 얼마나 벗어나 있는지 오롯이 느끼게 된다. 마음 속에 서리가 내리는 느낌이다.
이번에 읽은 책은 10번의 강연글을 모은 책이었다. 이번 책에서 인상적인 것은 - 최근에 내가 관심을 많이 갖고 있어서 그럴 수도 있지만 - 정신분석학적인 표현들이었다.
사람의 마음은 형체가 없으므로 그 마음에 얹히는 도구/매체에 의해서 조형되거나 변형된다. 말도 그렇긴 하지만, 글이 정교화되고 아름답고 풍성해짐에 따라 사람의 마음도 이를 닮아 간다.
정신에는 따로 길이 없다. 그러므로 특별히 개념의 길, 글의 길로써 정신 속에 갖은 길을 닦고 잇고 융통하는 것이다. 산속의 좁은 자드락길은 자주 걷고 가꾸지 않으면 곧 소실된다. 길의 흔적을 잃은 숲은 멀고 위험하고 아득하다. 마찬가지로 사실에 바탕한 정확한 기억을 쟁여가고, 그 기억을 활용해서 글이 이어지지 않으면, 정신 속의 길 역시 소실되고 만다. 실력의 밑절미를 이루는 한 부분은 개념들과 글로써 정지整地하고 개통開通하며 융통시킨 정신 속의 길들인 것이다.
... 글을 다만 내심을 표현하는 도구쯤으로 여겼던 초보자의 생각에서 벗어나야만 글쓰기의 공부가 시작된다. '글을 쓰면서 공부한다'고 했지만, 마치 언어성과 인간성의 관계를 탐색하는 게 인문학의 기본이 되는 것처럼, 글쓰기와 공부하기의 관계고 인문학적 공부의 열쇠를 이루는 한 부분이다.
김영민 <조각난 지혜로 세상을 마주하다> 4강 쓰기, 읽기, 말하기, 듣기: 공부길의 한 풍경 80~81쪽
"사람의 마음은 형테가 없으므로 마음에 얹히는 도구에 의해서 조형된다"라는 문장이 곧장 눈에 들어왔다. 여러번 이야기했던 '문자의 발명 이후에야 정신이 탄생했다'는 말과 상통하는 것 같다. (자기 인식이라는) 정신이 탄생했다고 곧바로 자기가 조형되는 것은 아니다. 말이 아니라 "글의 길로써 정신 속에 갖은 길"을 닦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산 속의 자드락길'이 금새 사라지는 것처럼 정신의 형체는 조형되지 않는다.
"언어성과 인간성의 관계를 탐색하는 게 인문학"이라는 말에도 공감하게 된다. <김영민의 공부론>을 읽었을 때도 좋았지만 이번에 읽은 책에서 느낀 것은 확실히 '언어성과 정신'에 대한 이야기들이 깊어졌다는 느낌이다. 책 본문에서도 몇 번 인용했는데, <집중과 영혼>이라는 책이 이 부분에 대한 탐구였던 것 같다. 소장만 하고 그저 몇장 읽었을 뿐인데 차근 차근히 읽어보고 싶다.
'정신이 사물을 벗어나려' 할 때 표현이 이루어진다. ... 표현은 또한 해석이기도 하다. 표현은 실재 그 자체가 아니기 - 실재의 존재론적 위상과 무관하게 - 때문에 해석일 수밖에 없고, 표현이 실재와 버성기는 오랜 시행착오를 겪는 중에 그 해석은 '해석학적 이치'에 순응하게 된다. ... 프로이트( 그리고 라캉)의 경우에는 이 이치를 밝히는 지점이 (꿈의) '형식'이다. ... (프로이트를 좇아) 무의식의 주제를 표현하기 위해서 꿈의 '형식'이 활용된다고 했지만, 이를 돌려 말하자면 (라캉의 말처럼) '분석은 무의식으로 나아가기 위한 우회'인 것이다.
나는 이처럼 정신이 사물을 벗어나려 할 경우 그 행로나 결과는 '형식적'일 것(즉 형식을 이룰 것)이라고 짐작한다. ... 정신적 존재인 인간이 어느새 사물의 상태에서 벗어나고 책의 세계, 인터넷의 세계, 그리고 인공지능의 세계로 나아가는 도정에서 가장 중요한 계기는 언어의 보편성이었을 것이다.
김영민 <조각난 지혜로 세상을 마주하다> 8강 정신과 표현 : 표현주의 존재론과 정신 진화론에 관하여 166~167쪽
"정신이 사물을 벗어나려 할 때 표현이 이루어진다."라는 말은 마치 들뢰즈의 '되기'처럼 느껴졌다. 언어의 보편성에서 인간이 정신을 갖게 되었지만, 사물을 벗어나지 못한 정신은 무의식을 제대로 표현할 수 없다. '정신이 사물을 벗어난다'는 것은 자기 소외가 아니라 그 반대다. 왜나하면 "만약 사물이 사물일 뿐이며, 그래서 그것이 사물을 벗어나지 못할 때 그것은 표현 표정이 되지 못한다."(164쪽)고 말하기 때문이다. 들뢰즈의 '되기'처럼 여기서 나오는 '표현'이라는 것은 언어와 행동간의 간극을 해소시키기 위한 일상 기술이라 할 수 있다. '정신이 사물을 벗어나려 할 경우 형식을 이룰 것'이라는 것 역시 이런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몇 부분만 이야기했지만 어디를 읽어도 '자기 구원으로서의 구제'가 어떤 것인지 느껴지고, 좋은 스승의 따뜻하면서도 충직한 '거리의 파토스'를 느끼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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