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는 풍차를 보고 거인이라고 생각해서 돌진하는 돈키호테'
어릴 적 문고판으로 본 돈키호테는 이런 기억으로 남았다. 그런데 실제로 읽어보니 이 장면은 <돈키호테>의 모험을 시작하자마자 나오는 첫번째 사건에 불과했다. '불과했다'라는 말은 풍차-거인 사건보다 더 큰 모험이 있다는 말이 아니라 단순한 모험을 넘어선, 특히 텍스트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아주 흥미롭다는 말이다.
"결국 그는 이런 책들에 너무 빠져든 나머지 매일 밤을 뜬눈으로 꼬박 새웠고, 낮 시간은 멍하게 보냈다. 이렇게 거의 잠을 자지 않고 독서에만 열중하는 바람에 그의 뇌는 말라 분별력을 읽고 말핬다. 기사 소설에서 읽은 전투나 결투, 부상, 사랑의 속삼임, 연애 번민 그리고 있을 수도 없는 황당무계한 사건과 마법과 같은 모든 조류의 환상들이 그의 머리를 가득 채웠다. (68쪽)
... 정말이지 그는 이제 분별력을 완전히 잃어버려, 세상 어느 미치광이도 하지 못했던 이상을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것은 명예를 드높이고 아울러 나라를 위해 봉사하는 일로, 편력 기사가 되어 무장한 채 말을 타고 모험을 찾아 온 세상을 돌아다니면서 자기가 읽은 편력 기사들이 행한 그 모든 것들을 스스로 실천해 보자는 것이었다. (69쪽)
는 이제 분별력을 완전히 잃어버려, 세상 어느 미치광이도 하지 못했던 이상을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것은 명예를 드높이고 아울러 나라를 위해 봉사하는 일로, 편력 기사가 되어 무장한 채 말을 타고 모험을 찾아 온 세상을 돌아다니면서 자기가 읽은 편력 기사들이 행한 그 모든 것들을 스스로 실천해 보자는 것이었다. (69쪽)
우선 돈키호테는 "책들에 너무 빠져서 ... 거의 잠을 자지 않고 독서에만 열중하는 바람에 그의 뇌는 말러 분별력을 잃"어버렸고, 현실과 텍스트 사이의 간극이 사라져버렸다. 현실에 있는 현상들이 책에 제대로 나와 있는가가 아니라 책에 쓰여진 것들이 현실에 제대로 있는가 생각한다. 모험을 시작할 때도 책에서 묘사된 그대로 기사들의 모습과 준비, 시종과 자신이 따르는 공주가 필요했다. 수많은 편력기사에 대한 책들이 그렇게 이야기했으니까. 책에 묘사된 물건이 없으면 직접 만들기도 하고 상상으로 구성해내기도 한다. 농부 여인에 불과하고 한 번도 본 적없지만 둘시네아는 공주가 되고, 본인은 라만차의 기사인 돈키호테가 된다. 시종이 필요하니 같은 지역에 있 사람에게 요청하고 나중에 섬을 다스리게 해주겠다고 보증한다.
계속 읽다보면 <돈키호테>가 단순한 모험이야기로 치부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야기를 하는 화자가 작품 속에서 다시 돈키호테 이야기를 쓴 작가 이야기를 한다. 화자는 작가(세르반테스 자신) 역시도 돈키호테 이야기가 제대로 남겨져 있지 않다는 사실에 놀랐다고 말하면서. 여기에서도 이 이야기는 가상의 인물(이지만 실제라고 주장하는 인물)이 쓴 책을 작가(세르반테스)가 발견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책을 시작하자마자 계속해서 "믿을 만한 자료에 의하면" 이라든가 "그저 그에 관한 거짓말만 없으된 될 것이다"라는 말이 등장하는 것을 보면 아직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완전히 거짓된 이야기'는 가능하지 않았던 것 같다. 완전한 거짓말이라는 것은 문자의 발명 이후 중세를 거쳐서 거의 완전한 자기인식 - 자기와 자신의 분리 -이 가능해야 하기 때문이다. 거의 비슷한 시기에 데카르트가 이에 대한 철학적 작업을 완수하고 있었다.
아직은 2부까지밖에 못읽었지만 <돈키호테>에서는 텍스트와 텍스트 바깥, 현실과 텍스트 사이에 큰 장애물이 없는 듯 보인다. 자신이 쓴 텍스트를 진실(?)이라고 믿고 현실에서 행동하기도 하고, 또 현실에서 들은 이야기들이 자연스럽게 텍스트 내부에도 전해진것처럼 쓰여지는 것 같다. 1권 전체를 다 봐야 할 것 같지만 하여튼 왜 푸코가 이 텍스트를 <말과 사물>에서 거론하는지를 살짝 알 것만 같다.
그런데 유감스러운 점은, 이 이야기의 작가가 바로 이 순간 이 대목에서 이 싸움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끝맺었다는 사실이다. 지금까지 그가 적어 온 것들 외에는 더 이상 돈키호테의 무훈에 관한 기록을 발견하지 못했다며 용서를 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을 쓴 제2의 작가 또한 그토록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망각의 법칙에 맡겨져 있다는 것을, 그리고 라만차의 천재들이 이 이야기에 아무런 관심도 가지지 않아 이 유명한 기사를 다루는 그 어떤 서류도 책상이나 문서 보관실에 남겨두지 않았다는 사실을 믿고 싶지 않았다. (134쪽)
돈키호테를 정신분열증자라고 생각하면서 그냥 재미난 모험이라고 볼 수 있지만 <돈키호테>가 보여주는 텍스트와 정신공간의 관계는 지금 우리의 정신구조를 형성하는 모습과 상당히 비슷하다는 생각도 든다. 우리의 정신공간을 구성하는 대부분은 아마도 텍스트를 통해서 구성되었을 것이고, 자신이 '진실'이라고 가정한 것들을 현실에 그대로 적용하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은 텍스트(visual text, 현재의 책)과 다른 영상이나 디지털 텍스트가 더 많은 영향을 주고 있고, 이러한 달라진 기술/도구가 어떻게 우리의 정신공간과 행동방식을 바꿀지는 아직은 두고 볼일이다. (..... SF 소설을 봐야하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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