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테는 우리 인간에 관한 것은 거의 다 말했어요."
"제 친구 알프레드 켐프는 오스발트 슈펭글러가 <서양의 몰락>에 관한 학설을 몽땅 괴케의 <파우스트>에서 가져왔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말했다. "그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에요. 소위 많은 학자들이 시인의 세계를 다른 학문 영역으로 바꾸어 놓고 명성과 가치를 얻고 있어요." <카프카와의 대화> 구스타프 야누흐, 158쪽
"건강한 사람에게 인생은 언젠가 반드시 죽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식으로부터 무의식적으로 아무도 모르게 도망치는 것을 의미하죠. 질병은 언제나 경고인 동시에 힘겨루기예요. 그래서 질병과 고통, 고난은 신앙심의 가장 중요한 원천이기도 하죠." 210
... "진정한 예술은 모두 기록이며 증언이죠." 211
"창작은 발견보다 쉬워요. 현실을 그 본래의, 가능하면 광범위한 다양성 속에서 묘사하는 것은 아마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울지도 몰라요. 평범한 얼굴들이 마치 비밀에 싸인 곤충 떼처럼 우리 곁을 달려 지나가고 있어요." 233
"기도, 예술과 학문적 연구 작업은 하나의 화원(火源)에서 타오르는 서로 다른 세개의 불꽃에 지나지 않아요. 사람들은 지금 주어진 개인적인 의지의 가능성을 벗어나려 하고, 자신의 하찮은 자아의 한계를 뛰어넘으려고 하죠. 예술과 기도는 그저 어둠에 내민 손에 지나지 않아요. 사람들은 헌신하기 위해 구걸하고 있어요."
"그러면 학문은?" "기도와 동일한 거지의 손이에요. 사람들은 하찮은 자아의 요람 속에 존재를 깊이 파묻기 위해서 소멸과 생성 사이의 어두운 전호 속으로 돌진하죠. 학문, 예술과 기도가 이런 일을 해요. 그래서 자기 자신 속으로 가라앉은 것은 무의식으로의 하강이 아니라 의식의 밝은 표면에서 어렴풋이 느낀 것을 들어올리는 거예요." 236
카프카에게도 역시 문학은 무의식과의 대면이고, 가려져 있던 관계성을 밝히고 드러내는 것인듯 하다.
그래서 한번도 자신의 무의식과 직면하지 못한 사람에게 죽음은 공포로 다가오고 계속해서 도망치는 삶, 어디에 숨어도 안심되지 않고,누구도 알 수 없는 심판처럼 느껴진다. 고통과, 질병이 중요한 이유다. 질병과 고통은 언제나 징후로서 작용한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면 고통은 그저 고통으로 끝나버린다.
"창작이 발견보다 쉬운" 이유이기도 하다. 현실과 괴리된(?) 창작은 의외로 쉽다. 무의식으로부터 도망치려는 다양한 시도들이 가능하다. 하지만 "발견"은 고통스러울 뿐만 아니라 어렵고 희귀하다. 평범한 표면에 비친 빛줄기와 무늬들을 해석하는 작업, 강도를 발견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예술은 모두 기록이며 중언"이라고 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실 감춰진 것은 없다. 시간을 들여서 세밀하게 관찰하다보면 보인다. 관찰된 현상을 어떻게 하면 있는 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내가 관찰한 그 현상과 징후를 어떻게 표현할지가 관건이다. 색감, 음색, 단어들을 어떻게 배치하고 표현할 것인가.
기도와 예술이 필요한 이유다. "게토가 된 세계"에서 벗어나기 위한 시도들. "하찮은 자아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시도들. 신을 잃어버린 이후 각자의 무의식은 무서운 지옥이 되어버렸다. 특별한 몇몇 사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예술이, 기도가 필요한 이유다.
카프카는 기도와 예술, 학문이 "하나의 화원(火源)에서 나온 서로 다른 불꽃"이라고 했다. 그 중에서도 학문에 대한 비유가 눈길을 끈다. 학문이 기도와 동일한 거지의 손이라고 하지만 이야기를 배치적으로 보면 학문은 그 중에서도 아주 표면적인 작업이라는 느낌을 준다.
그럼에도 진리, 이성, 주체를 중심으로 형성된 우리들에게 이런 모든 시도들은 "무의식으로의 하강"이 아니다. 자기가 대면했다고 생각하는 무의식이란 "의식의 밝은 표면에서 어렴풋이 느낀 것"에 불과하다.
카프카에게도 기도와 예술은 거의 동일선상에 있는 듯 하다.
둘 다 도무지 알 수 없을 것 같은 "어둠에 내민 손"이지만 이런 노력들은 분명하게 내면의 무의식들을 비이성적이고 비의식적으로 대면하게 하고 뭔가를 생성한다. 학문은 기도와 예술이 그려낸 것들을 이성적이고 명료한 말들로 풀어낸 것일 뿐이다. 높은 명성과 가치를 얻은 많은 사람들인 실상은 "시인이 경험한 세계"를 자신들(학문)의 언어로 번역한 것뿐이라는 말을 다시 새겨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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