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이미지 수사로 읽는 클래식> 특강 1강을 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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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강은 클래식의 기본이라고 하지만 아무도 이야기해주지 않는 부분들을 다뤘다. ^^
도레미파솔라시도의 기본적인 음계부터, 균등분할음계, 선법이 어떻게 다른지, 화성과 대위를 낱말퍼즐로 설명하는 것도 흥미로웠다. 그런데 이번에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서양의 '기보법'에 대한 이야기와 윤리적인 음과 비윤리적인(?) 반음에 대한 이야기였다.
서양음악의 특징으로 하모니Harmony를 말하면서, 서양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음, 떠다니고, 흘러다니다 사라지는 음을 땅에 고정시키려고 했다는 이야기. 여기에서 내가 항상 관심을 갖고 있던 개인/자아/정신의 발견과 기보법의 발전이 꽤 깊숙히 연결되어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보법의 발전이 '자아의 탄생'과 연결된다는 것은 그리 허무맹랑하지 않다. ^^; 왜냐하면 고대그리스 연구의 고전이라고할 수 있는 <초기희랍문학과철학1>(헤르만 프랭켈)이나 <정신의 발견>(브루노 스넬)에서 집단의식으로부터 삐져나오는 '개인(정신)'의 탄생은 문자의 발명과 아주 깊게 연결되어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 연구자들은 한결같이 상고시대에는(소크라테스 이전) '개인'이 없었다라고 말한다. 이 말은 전체로부터 분리되어 자기를 인식하는 개인을 말한다. 즉 이 시대에 내 생각은 집단의 생각과 같았고, 나에게 떠오르는 생각은 그저 흘러다니는 자연의(나무, 숲, 동물 혹은 그리스 신)의 명령이나 계시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흘러다니는 생각을 고정시킬 수 있는 문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생각을 소유한다는 것은 상상 밖의 일이었다. 갑자기 독창적인, 악독한, 선한 뭔가가 떠오르면 이건 내 생각이 아니라 질투의 신이나 지혜의 신 혹은 전투의 신이 나에게 내려준 것이었다.
기원전 7~8세기경 그리스에서 문자를 쓰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집단)과 다른 자신을 의식하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흘러다니는, 공중에 떠다니는 생각들을 문자로 고정할 수 있었고, 개인적으로 소유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그렇게 문자로 고정된 생각을 자기자신이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바로 여기에서부터 개인의 속마음과 자아가 형성되기 시작한다.
정신의 발전에서 더 놀라운 발전은 현재의 책과 같은 텍스트Textus가 만들어진 11~12세기다. 이전에 그리스문자(물론 한문이나 한글도)에 띄어쓰기나, 쉼표, 마침표, 단락의 구분이나 페이지는 없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해서 문자가 적혀져 있다. IAMNOTTHATSATISFIEDWITHMYRESULTSBUTTHEREISNOOTHEROPTIONIHAVETODOITOVERANDOVER. 이걸 보고 바로 읽기는 쉽지 않다. 만약 문장이 수백개가 된다면? 문장을 읽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다른 사람이 소리내서 읽어줄 때 가능하다. 11세기 텍스트의 발명을 통해서 개인/자아/정신/속마음이 급속도로 세분화되기 시작한다. 물론, 인쇄의 발전이 한몫을 했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렇게 개인이 다른 사람과 다른 자기의식(정신)을 갖게 되었고, 지금은 과도하게 자신을 의식하는 시기에 들어섰다. 니체가 19세기 말에 "의식이 겸손해져야 하는 시기"라고 말한 것도 이와 연결된다. (니체가 보기에 모든 의식은 거짓이고, (타자의) 눈치를 보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음악특강과 관계(?)없어보이는 정신(속마음)의 발견에 대해서 너무 많이 썼다. -.-;;; 왜냐하면 악보의 발전이 바로 문자의 발전처럼 음악에서 자기표현(정신의 발견)과 연결되어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클래식에서 화성에 대한 법칙을 처음으로 만들었던 것이 루이 14세의 궁중 악장인 라모였다는 사실을 되새겨보자. 어떤 체계 안에 개인을 세우고, 그 체계와 규칙 속에서만(?) 자유로울 수 있는 개인(음악)의 발명! 이게 우리가 흔히 말하는 200년 정도의 클래식 음악의 전성시대가 아니었을까.
하-모-베 시대에 악보법이 점점 더 발전한 것은 사실이겠지만, 이때의 악보법(발전)은 전체적인 체계(국가/종교, 화성) 속에 잘 들어맞는 음악의 생산이었던 것 같다. 특강에서 이야기했던 근대의 조율법인 '평균율'도 이와 연결이 되는 것 같다. 바흐가 평균율클라비어를 쓴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국가와 화성 속에서 자신을 증명하면서 살아가는 존재!
19세기 후반, 개인들은 종교, 국가, 가족의 해체 속에서 자신을 어떻게 해야할지, 어떤 정신적 틀 속에서 자신을 세워야하는지를 고민해야 했다. 이제 모든것은 자기 자신에게 주어진 문제가 되어버렸다. 악보가 점점 더 세부적이고 구체적인 방법들이 들어가고, 이제 4박자라는 한 마디라든가, 악보의 규칙 자체를 무너뜨리는 시도들이 나타난 것도 이와 맥락을 같이 하는 것 같다. (맞나? -.-;;;)
19세기 후반부터 철학이나 다른 예술에서도 의식에 대한 과도한 의존을 깨려는 시도들이 있었는데(무의식, 의식의 흐름, 줄거리 없는 문학, 인상파, 추상화), 무조로 만들어진 현대음악이나 그림인지 조감도인지 모를 현대악보는 바로 이런 과도한 개인의식, 어쩔 줄 몰라하는(어떻게 자기가 자기가 되는지 모르는) 개인들이 고민이 들어있던 것 같다.
(여기서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서양에서는 기보법이 아주 구체적이고 세분화되었던 것 같은데, 다른 곳에서는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중국이나 우리나라 기보법을 보면 확연하다. 이런 차이가 자아(정신)의 구성에 영향을 주었던 것 같다.)
써놓고 보니 뭔말인지. 하여튼 서양에서 악보의 발전은 분명 개인(정신)의 발명과 연결되어 있을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든다.
문명화된 공동체가 온음으로 이루어진(도,레,미, 솔, 라) 5음계를 썼고, 이는 윤리와 연결된것 같다고 말한 막스 베버의 말도 흥미롭다. 인간이 존재했던 어디에서나 쓰고 있다는 도레미파솔라시도와 온음/반음을 윤리/비윤리로 나눴다는 것은 분명 신체성과 연결되어 있을 것 같다. 다만... 쓰다보니 조금 지쳐서 이건 다음에 생각해봐야겠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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