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금요일 오후에 걸으면서 유태평양의 판소리(심청전 중 한가락)를 들었습니다. 국악라디오나 유튜브의 국악TV에서, 민요나 가야금 산조만 듣다가 우연찮게 판소리를 들어보게 되었죠. (개인적으로 유태평양은 민요보다는...판소리가 훨씬 좋은 것 같네요. )
걸으면서 듣는데 신기하게도 20분 정도되는 판소리가 너무나 재미났습니다. 내용을 알고 있으니, 내용 자체보다는 유태평양의 소리 자체에 집중할 수 있었고, 마지막 방아타령 부분에서는 정말 신명나더라구요. 판소리를 잘 듣지도 않던 내가 어떻게 판소리를 즐길 수 있을까 생각하다보니 오페라에 대한 생각까지 이어졌습니다.
만약 오페라가 그리스 비극을 원형으로 생각한다면, 오폐라를 즐기는 것과 판소리를 듣는 방식이 상당히 비슷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스 비극의 초기 형태는 대화가 나오지만 그보다 앞선 것이 바로 소리(음악)였기 때문이죠. 그리고 그리스 비극 이전에 있었던 호메로스의 이야기들은 판소리와 거의 비슷한 형태의 소리꾼들에 의해서 전해졌습니다. (이렇게 연결해도 되나라고 생각하실 수 있지만... ^^;;;)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호메로스의 이야기들(일리아스, 오뒷세이아), 그리스 비극, 판소리는 당시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진 내용이었다는 겁니다. 사람들은 내용보다는 소리 자체에 집중하면서 차이를 즐겼고, 장면 장면(특히나 비극적인)의 감정(정동)에 공감하는 것이 핵심이었습니다. (비극이나 오폐라, 판소리나 마당극은 그것을 보고 듣는 사람들의 정서가 분출되는 곳이기도 하고, 또한 시대의 새로운 정서를 함께 맛보고 경험하는 자리이기도 했던것 같네요.)
아마도 한 명의 소리꾼이 호메로스의 이야기를 전하다가 이러한 형태가 그리스 비극(연극)으로 변화했던 것 같고, 판소리의 경우 역시 혼자서도 하지만 상황에 따라서 여러명의 소리꾼들이 직접 마당극을 하기도 했던 것이 아닐까.
소리꾼/비극/오페라는 물론이고, 판소리/마당극에서도 핵심은 내용(대화/스토리/기승전결의극적전개)이 아니었고, 그 자리에서 정서적인(신체적인) 공감을 일으키는 것이 중요했을 것 같아요. 고대 그리스에서 그리스 비극은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도시)국가 적으로 시민들이 공통정서를 갇는 아주 중요한 매개체였습니다. ^^
다시 오페라 이야기로 들어오면,
심청전이든 수궁가든 흥부전이든 우리가 듣고 읽지 않아도(?) 그 내용을 몸에 새겨진 것처럼 알고 있듯이, 유럽사람들 역시 오페라의 내용들을 이렇게 알고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그러니까, 내가 심청전의 한 대목을 들으면서 곧바로 반응했던 것처럼, 그들 역시 흥미로운 아리아와 래치타티보에 곧바로 들어갈 수 있었던 것 같네요. 기악곡들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오페라는 그 내용을 미리 잘 알고...그리고 들어보는게 중요한 것 같네요.
오폐라를 잘 즐기려먼 내용을 숙지해야 하는구나라는 단순한 이야기를 좀 길게 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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