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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과 예술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by 홍차영차 2020. 11. 5.

템포 아다지오의 사랑과 우정

: 앙리 르페브르 <리듬분석>





리듬분석가란 무엇인가? 리듬분석가가 되어보지 않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오랜만에 16회 모두를 정성들여서 보게 된 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대상 삼아 리듬분석을 시도해본다.






빨리감기와 건너뛰기가 불가능한 드라마

<달동네>(1980)의 똑순이가 기억 속에 있는 것을 가만해보면 나는 드라마 경력(?) 40년이 넘는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내가 본 드라마와 영화들 대부분에서 핵심은 이야기의 전개였다. 결말을 알게되면 중간 과정을 보는 것이 싱겁거나 쓸데없다고 느껴졌다. 가령, 오래전 영화이지만 나이트 샤말란의 <식스 센스>의 재미는 ‘브루스 윌리스가 사실은 죽은 사람’이라는 반전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야기의 전개 과정이나 주인공들의 한 마디 한 마디보다 비밀, 극적인 반전, 반전의 반전, 이야기의 구조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시대가 되었다. 여기에 초고속인터넷으로 언제 어디서든 원하는 영상을 볼 수 있게 되었기에, 예전처럼 더 이상 본방사수도 필요없어졌다. 한 마디로 지금 우리는 ‘빨리감기와 건너뛰기’ 시대를 살고 있다. 스토리 라인이 점점 더 복잡해지면서 이제는 시청자가 이야기의 구조를 따라가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반동적으로 사람들은 아주 단순하고, 아무런 내용도 없는 짧은 이야기, 일명 짤이라는 영상에 취해가고 있다. 바로 이런 시기에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이하 <브람스>)가 방영되었다.

하지만 <브람스>는 2020년의 시대 상황을 반영하면서도 전혀 다른 리듬을 방출한다. 분명 <브람스>에도 스토리 라인이 있지만, 반전의 매력보다는 이야기를 풀어가는 과정에 집중한다. 또한, <브람스>는 트렌디한 말맛을 추구하지 않을 뿐 아니라 말로서 말하지 않는다. 즉, 직접적인 사실 전개보다 비유적이며 음악적인 표현을 보여주려고 노력한다.

쇼팽 콩쿨에서 1위 없는 2위를 차지한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준영, 어릴 적 천재적 바이올리니스트라는 말을 들었던 부호 정경, 그리고 경영대를 졸업하고 바이올린과 사랑에 빠져서 4수를 하면서 다시 바이올린을 시작한 송아, 그리고 뉴욕 오케스트라에 들어갈 정도의 실력을 갖춘 현호. 4명의 남녀라고 하면 사랑과 질투, 그리고 배신과 같은 식상한 이야기가 나올 수 있었지만 <브람스>는 달랐다. 흔한 사랑과 우정의 이야기가 될뻔한 드라마가 ‘빨리감기와 건너뛰기’를 불가능하게 하는 전개를 통해서 지금과 다른 템포와 리듬을 형성한다. 왜냐하면 이야기의 전개가 말이 아닌 음악(적)으로 표현되기 때문이다. 음악공부를 하지 않아서 음악을 모른다고 할 지 모르지만 우리는 모두 음악적이기 때문이다. 음악은 보이지 않는 것 같지만 누구나 들을 수 있고 느끼고 있는 본능적 방식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상대방의 음색, 표정, 몸짓 하나에서도 수많은 음악을 읽어낼 수 있다. 이렇게 <브람스>는 말보다 훨씬 감각적인 현전을 보여준다. 아무리 많은 말을 쏟아낸다 하더라도 전해지지 않는 것들이 한 번의 연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나오는 ‘좋아한다’, ‘사랑한다’는 말에는 무게가 실릴 수밖에 없다. 정신분석이 아니라 리듬분석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템포 아다지오의 긴장감

앙리 르페브르는 하나의 리듬이 자기의 고유한 리듬을 드러내는 방식은 다른 것과의 비교를 통해서 가능하다고 말한다. 차이를 통해서 드러나는 자신만의 특성! 이런 면에서 <브람스>는 기존의 드라마들과 전혀 다른 템포를 갖고 있다. 지금까지의 드라마들은 이전보다 빠르다는 것, 자극적이라는 것을 작품의 중요한 요소로 내세웠던 것 같다. 우리의 이야기는 알레그로, 비바체를 넘어 프레스토의 템포로 전개된다고 말하듯이. 하지만 <브람스>는 처음부터 끝까지 템포 아다지오를 고수한다. 하지만 그냥 ‘천천히’가 아닌 느린 전개 속에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다. 작은 음악 하나, 대사 하나도 놓치지 못하게 만든다.

똑같은 슈만의 트로이메라이(꿈, 몽상, 환상) 연주란 없다. 절대적인 동일성은 없고, 매번마다 다른 표현으로 드러난다. 십여년 동안 자신을 후원해준 재단 이사장의 손녀인 정경이에게 녹음해준 트로이메라이는 사랑하지만 그럴 수 없는 현실을 녹여 담은 준영이의 연주였다면, 우발적인 사건인 입맞춤 이후의 트로이메라이 연주는 현실을 직시하면서 정경이를 떠나보내는 연주였다.

이야기의 전개도 그렇지만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준영이와 송아의 말투와 태도 역시 템포 아다지오로 표현된다. 그렇다고 지금 직면해야할 문제들을 뒤로 미루지 않는다. 천천히 그렇지만 확실하게 표현하고, 느리지만 빠르게 행동한다. 사랑헤서든 일에 있어서든.



이분법적 사랑과 삼항의 우정

<브람스>의 전체 주제는 심플하다. 29살 남녀의 사랑과 우정 - 이분법적 사랑에서 삼항의 우정으로 가는 여정! 그러면서 각자는 각자가 자신 현실과 위치를 정면으로 바라보면서 자신을 길을 가게 된다. 여기에 악인도 선인도 없다.

이분법적 사랑으로만 생각할 때 예중, 예고 시절부터 친구였고 연인이었던 준영, 정경, 현호는 사랑이 깨진 이후에 서로 어떤 방식으로도 관계를 이어갈 수 없다. 하지만 이분법적 사고를 넘어서 삼항으로 서로를 바라볼 수 있을 때, 각자가 사랑이라고 우정이라고 바라보았던 것 밑에 놓여 있는 스스로를 이루는 리듬들을 정면으로 마주쳤을 때(face to face) 더욱 견고해진 절망의 심연을 넘어 우정으로 갈 수 있었다.

이분법적 사랑의 틀을 깨고, 삼항의 우정으로 갈 수 있었던 것 역시 입맞춤이라는 사건과 송아라는 새로운 친구의 출현으로 가려졌던 각자의 독특한 리듬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새로운 사건과 새로운 사람 - 음악을 전공하고 있지만 모두에게 좋은 점수를 받아야 한다는 부담감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따라 새롭게 바이올린을 전공한 송아는 작지만 강자였고, 느리지만 확고한 리듬의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느린 발걸음이 더 큰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



해피엔딩도 새드엔딩도 아닌 무구(無垢)의 엔딩!

준영과 송아가 사랑하면서 끝났다는 면만을 본다면 전형적인 해피엔딩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송아는 다른 학과를 졸업하고 4수나 하면서 진지하게 사랑했던 바이올린을 완전히 포기하면서 다른 길로 들어섰고, 준영은 오래된 친구들이자 맘 속의 연인이었던 정경과 현호와의 단절을 통해 관계를 전혀 다르게 만들어야 했다.

드라마를 보면 송아는 항상 친구와 후배들에게 배려하고, 손해보고, 무시당하는 것 같다. 하지만 송아는 강자다. 준영과의 사랑에서도 느리지만 명확하게 자신의 마음을 전달하고, 말이 아닌 모든 것에서 준영과 정경 사이의 관계를 현전으로 파악하고 직면한다. 송아는 그 마주침을 피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주 어렵게 들어간 바이올린을 놓아줄 때 역시, “내가 사랑했었지”라는 슬픔 속에서가 아니라 “너(바이올린)와 함께 했던 그 모든 순간이 참 행복했다.”라고 말하면 또다시 새로운 길을 걸어갈 수 있었다.



템포 아다지오의 <브람스> 우연이 아니다. 항상 빠르게, 빠르게만 외쳐대는 시대이기에 이런 갈증이 더했다고 생각된다. 사실 류보리 작가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는 알고 있지 않은가. 삶에는 말로서 표현되지 못하는 것이 많으며, 빠르게 한다고, 더 많이 말한다고 해결되지 않는 것들이 더 많다는 것을. 1년에 수많은 프로그램들과 드라마들이 나오지만 <브람스>는 분명 다른 것들과 다른 자신만의 ‘리듬’을 생산하는 데 성공한 것 같다. 잊지 말자. 템포 아다지오의 세계도 꽤 아름답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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