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체력, 생활인문학
: 다른 40대의 탄생!
2017, 2018년 퇴근길인문학을 지나면서, 특히 시즌4에서 진행한 “개인과 공동체”라는 세미나를 마치면서 직장인이 혹은 생활인이 인문학을 공부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일까라는 것에 대해 좀더 생각하게 되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퇴근길인문학은 바로 공부를 통해서 일상을 유지할 수 있는 리듬과 기술을 구성해가는 과정”이었던 것 같다. 물론 여기서의 기술이란 자격증을 요구하거나 시험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너무나 쉬워보이는 생존 기술에 가깝다. 예를 들어 친구를 사귀는 법, 싸웠을 때 화해하는 법, 관계를 망치지 않으면서 화를 내는 법, 일할 때 최소한의 자존감을 유지하는 법, 돈에 대해 투명해지는 법과 같이 사소해보이는 것들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일상을 살아가는 데는 이런 기술(철학)이 절실한데 어디에서도 이런 기술을 가르쳐주는 곳이 없다. 또한, 이건 가르쳐준다고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부딪히고 실험하면서 알게 되는 것이기도 하니까.
(2018 축제, 퇴근길인문학팀의 국악합창)
우리는 일상생황을 유지하는데도 아주 기본적인 '생활체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다이어트도 하고, 헬스장에 가서 뛰기도 하고, PT(전문가)와 운동을 시작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4주만에 10kg을 빼고 싶어하고, 단기간에 무리해서 근육을 만들어 보여주고 싶어한다. 하지만 정작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초콜릿 복근도, 잘록한 55 사이즈도 아니다. 일을 하고, 친구를 만나고, 계단을 오르내리고, 아이와 함께 놀고, 가족 혹은 친구와 즐거운 대화를 할 수 있는 정도의 기본체력이 아닐까?
인문학 역시 이런 방식으로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단기간에 빠진 살은 요요를 불러온다. 더욱 더 살이 찌게 되고, ‘해도 안되니 그냥 먹고 싶은거 먹자!’ 뭐, 이런 심정으로 포기해버리게 된다. 인문학 공부 역시 마찬가지다. 공부에 “4주만에 알려주는 인생을 바꾸는 기술”같은 것은 없다.
매일 매일 팔 굽혀펴기를 하고, 아침 저녁으로 스트레칭을 하며, 하루에 15분씩이라도 걷기를 꾸준하게 하는 것이 일주일/한 달에 한 번 헬스장에 가서 3~4시간 운동하는 것보다 낫지 않을까? 운동이 몸에 붙는 시간이 필요하고, 운동이 왜 좋은지도 실감하는 과정도 필요하다. 어쩌면 이런 의미에서 공부는 평생 함께 해야할 친구이며, 그런 친구를 만드는 좋은 계기가 되는 것 같다.
인문학 공부는 특별한 사람들만 하는 것이 아니다. 일상 생활의 리듬을 유지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러니 모든 사람이) 공부해야 한다. 왜냐하면 앞서 ‘사소해 보인다’고 말한 일상기술을 살아가면서 배울 공동체가 해체된 지 오래이고, 이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함께하기의 기술’은 ‘믿기 어려울만큼 놀랍고 어렵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2011년에 <다른 10대의 탄생>이란 책이 나왔다. 김해완이란 친구가 학교를 그만두고, 인문학 공동체(수유+너무)에서 생활하면서 다른 길을 만들어 가는 성장과정을 보여주는 책이다. 그리고 2019년에는 <다른 20대의 탄생(가제)>이란 책을 문탁에서 준비중이다. (기대됩니다. ^____^) “대학을 안 가고, 못 가고, 자퇴한” 20대 친구들이 문탁네트워크에서 새로운 20대의 삶을 구성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책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다들 알다시피 2019년 현재 이제 이런 친구들의 모습과 방식은 그리 낯설지 않고, 신기하다고만 생각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제 ‘중고등학교-대학교-기업-정년퇴직’이란 ‘정상적’이라고 생각한 길은 더이상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이 길에서 버티기보다는 새로운 길, 다른 길을 만드는 것이 더 낫다고 혹은 이런 길로도 삶을 구성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아다.
그.런.데. 퇴근길인문학에서 직장인들과 함께 공부하면서 이런 ‘다른 삶의 방식’을 구성하려는 시도는 10대, 20대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달라진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40대, 50대 조금 더 나아가 60대, 70대에게도 만만치 않게 됐으니까요. 예전과 달리 이직과 퇴직은 30대, 40대에 일어나고 있으며 50, 60대에 퇴직했다 하더라도 30~40년의 삶을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야 할지를 고민해야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제 다른 40대의 탄생, 다른 50대의 탄생, 다른 중년(노년)의 탄생을 실험해야 하지 않을까? ^^
그럼, 어떻게 할까요? 엄청난 철학적 깨달음을 위해서 ‘산’으로 들어가야 할까요. 어쩌면 그럴수도. -.-;; 하지만 우리들 중 대다수는 도시에서 삶을 구성하고 있고, 이 곳은 배경으로 살아가려고 한다. 그렇다면, 정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 도시 가운데에서 함께 고민하고 사소한 이야기를 나눌 ‘친구들’을 만들고, 그 친구들과 함께 새로운 길을 ‘실험’일 수밖에 없습니다. 공동체가 무너지고 있다고 하지만 정작 지금이야말로 공동체가 절실하게 필요한 시대이지 않은가. 친구가 없는 삶, 실험하지 않는 삶에서 어떤 의미를 발견할 수 있을까?
이야기가 길어졌다. 하고 싶은 말은, 인문학을 공부하는 것은 우리가 일상 생활을 유지하는데 필수적라고 여기는 ‘생활체력’처럼 기본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특히 도시에서 살아가고 있다면. (사실 현대의 농촌 역시 도시적 욕망을 품고 있기 때문에 농촌에서도 공부가 필요할지도.) 그리고 공부를 통해서 얻게 되는 것은 삶의 지혜인 동시에 이런 점을 공감하는 친구들이어야 한다. 이런 공부에 ‘요요’가 오지 않도록, 우리의 일상을 잘 유지하고 계속해서 함께 공부해나가면 좋겠다.
<곰에서 왕으로>에서 보았던 것처럼 대칭성 사고에 대해서 고민하면서 추운 겨울을 잘 쉬면서 지내시고 내년에도 공부로 만나기를 기대해본다. 아듀, 2018퇴근길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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