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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호메로스

호메로스읽기(2) - 트로이아 전쟁의 초상

by 홍차영차 2015. 10. 7.

트로이아 전쟁의 초상<일리아스

-호메로스 읽기(2) -


호메로스의 서사시는 두 편밖에 없다.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 단 두편의 이야기이지만 각각의 이야기는 서로 다른 사람이 쓴 것처럼 다른 소재와 세계관을 보여준다. <일리아스>가 10년째를 맞이하는 전쟁에서 매일매일 동료들의 죽음을 마주치면서 어떻게 죽는 것이 잘 사는 것인지를 고민했다면, <오뒷세이아>는 트로이아 전쟁 이후 거짓과 속임수가 판치는 모험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좋은 삶인지를 이야기한다.  두 편의 이야기가 다르다고 하지만 사실 두 이야기는 모두 희망이 없어 보이는 막막한 상황 속에서 자신의 삶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호메로스의 답이라고 할 수 있다. 

먼저 <일리아스>의 내용을 간략히 설명해 보자. <일리아스>는 10년동안 치뤄진 트로이아 전쟁을 다루고 있다. 10년간의 전투를 설명하려면 엄청난 양과 복잡한 이야기를 상상하겠지만, <일리아스>는 단 4일간의 전투만을 그려주고 있다. 그리고 호메로스는 이 4일간의 전투와 아킬레우스라는 분노를 통해서 지난 10년의 상황을 모두 정리해 준다. 즉 아킬레우스가 왜 분노하게 되었으며 그의 분노가 어떻게 사라지게 되었는지가 <일리아스> 이야기의 전체이다. 한 가지 더. 아쉽게도 우리에게 익숙한 사건이자 트로이아 전쟁을 그리스군의 승리로 이끈 트로이아 목마는 <일리아스>에 나오지 않는다.



루벤스 - 파리스의 심판


<일리아스> 이전 - 파리스의 심판

그러면 트로이아 전쟁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일리아스>는 트로이아 전쟁에 관한 서사시인데, 정작 <일리아스>에는 왜 트로이아 전쟁이 시작되었는지 그 이유가 설명되지 않는다. 책의 중간 중간 어렴풋이 설명되기는 하지만 그 근본적 원인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일리아스>에 직행하기 전에 그 이전 이야기를 살펴보자.

트로이아 전쟁의 발단은 역시 아킬레우스와 관련되어 있다. 아킬레우스의 아버지인 펠레우스와 여신 테티스의 결혼식이 있었는데, 당시는 인간과 신이 함께 교류하던 시기여서 대부분의 신들이 여기에 초대되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곳에 초대받지 못한 여신이 있었다. 바로 불화의 여신 에리스이다. 에리스는 결혼식에 초대되지 못한 것에 화가나 그들을 골탕먹이기로 한다. 여신이 한 일은 간단한 일이었다. ‘황금사과’ 하나를 결혼식 가운데에 던진 것!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라는 말과 함께. 여기에 세 여신이 황금사과의 주인이 자신임을 주장했는데, 바로 헤라, 아테네, 아프로디테이다. 그런데 누가 가장 아름다운 여신인지에 대한 선택은 아이러니하게도 신이 아닌 인간 파리스에 의해 결정되었다. 파리스는 결국 아프로디테를 선택했다. 그는 헤라가 제시한 아시아의 통치권, 아테네가 주겠다는 지혜와 승리보다는 아프로디테의 선물인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에 더 마음이 갔던 것이다. 한 가지 안타까운 사실은 그 여인이 유부녀였다는 점. 그리고 그리스에서도 강력한 라케다이몬의 왕인 메넬라오스의 아내였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트로이아 전쟁은 메넬라오스의 아내였던 아름다운 헬레네를 트로이아의 왕자 파리스가 납치하면서 시작된다. 헬레네를 구하기 위해 메넬라오스는 그의 형, 아가멤논을 그리스 연합군의 수장으로 하여 트로이아를 공격하게 된다. 다시 말해 트로이아 전쟁은 그리스 지역 전체 연합군과 트로이아 전체와의 싸움이었다.


아킬레우스의 분노로 시작하는 <일리아스>

<일리아스>는 트로이아 전쟁 10년차에 벌어진 아킬레우스의 분노로부터 출발한다. <일리아스> 1권, 이야기를 시작하자마자 주인공 아킬레우스가 트로이아 전쟁에 참여하지 않기를 선언한다. 이후 아킬레우스가 전쟁에 다시 등장하는 것은 전체 24권의 후반부인 18권이다. 조금 이상하지 않는가? 이야기는 시작했는데 보고싶은 주인공이 계속해서 나오지 않는다니. 여하튼 <일리아스>는 이렇게 시작한다.

아킬레우스는 왜 분노했을까? 당대의 최고 영웅의 분노라고 하면 엄청난 ‘사건’이 있었을 것이라고 상상한다. 하지만 그가 분노하게 된 것은 자신의 전리품, 여인 브리세이스를 빼앗겼기 때문이다. ^^; 그 원인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전쟁 10년차에 그리스군에 흑사병이 돌았다. 흑사병을 내린 아폴론 신을 진정시키기 위해서는 아가멤논이 자신의 전리품이었던 소녀 크리세이스를 놓아주어야 했다. 아폴론의 사제였던 그녀의 아버지에게. 이에 아가멤논은 그녀를 대신하여 아킬레우스의 여인, 브리세이스를 빼앗아버린다. 여기에 화가 난 아킬레우스는 그의 어머니 여신 테티스에게 복수를 호소하고, 자신은 전쟁에 참여하지 않기로 한다.


메넬라오스, 파리스, 디오메데스, 오뒷세우스, 네스토르, 아킬레우스, 아가멤논 :트로이아 전쟁의 영웅들


그리스의 최고 용사 아킬레우스가 전투에 나오지 않자 트로이아 측은 자신감을 갖고 전쟁에 임했다. 헥토르를 위시하여 트로이아인들은 그리스군이 타고 온 배에 불을 놓기까지 했다. 앞서 말했듯이 주인공은 자리를 비웠다.  그 사이 그리스군에서는 주연 같은 조연으로 디오메데스, 아이아스, 오뒷세우스가 부상을 입으면서까지 분전하지만 조연은 조연일 뿐, 그리스의 전세는 점점 기울어진다. 바로 이때 아킬레우스의 시종이자 절친인 파트로클로스가 아킬레우스를 대신하여 전장에 나서기로 결심한다. 아킬레우스의 무구를 입은 그의 모습은 적들에게 엄청난 공포를 주었고, 전세는 순식간에 뒤집혔다. 파트로클로스는 잠시 동안의 승리에 취하게 되었고 무리하게 트로이아 성곽까지 진격하다가 헥토르의 손에 죽게 된다. 파트로클로스의 죽음은 <일리아스> 이야기 전체의 전환점이기도 하다. 다른 어떤 것에도 누그러들지 않던 아킬레우스의 분노는 자신의 절친, 파트로클로스의 죽음이라는 더 큰 분노로 덮히게 된다. 드디어 그는 전쟁에 복귀하기로 결심한다. 18권에 이르러서야 드디어!


<일리아스>, 공동체적 우애로 끝맺다

전쟁에 복귀한 아킬레우스는 분노한 맹수처럼 적들을 몰아내고 헥토르와의 싸움에서도 승리한다. 그리고 헥토르를 죽이고 난 후 아킬레우스는 친구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그의 장례식 기념 경기를 주최한다. 전차 경주, 창 던지기, 달리기, 권투시합 등. 여기에서 우리는 지금까지 내려오는 그리스의 전통, 올륌픽의 기원을 경험하게 된다. 아킬레우스는 참가한 모든 사람에게, 그리고 참가하지는 못했지만 그럴만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에게 어마어마한 상품을 나누어 준다. 전리품때문에 아가멤논과 싸웠던 것을 생각하면 이런 점은 조금 이상하게 여겨진다. 

헥토르에 대한 복수와 장례경기까지 치뤘음에도 아킬레우스의 슬픔은 가라앉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또 다시 헥토르의 시신을 전차에 메고 파트로클로스의 무덤 주위를 돌면서 그의 시신이 먼지 속에 더럽혀지도록 했다. 지나친 분노는 선을 넘게 만드는 법. 올륌포스의 신들은 더 이상의 시신모욕은 안된다고 생각하여 헥토르의 시신을 그의 아버지에게 돌려주기로 결정한다. 제우스는 테티스에게 부탁해 아킬레우스의 뜻을 움직하게 한다. 이후 트로이아의 왕 프리아모스는 신들의 결정을 듣고 스스로 아무런 무장 없이 헥토르의 몸값을 가지고 아킬레우스를 찾아간다. 프리아모스는 아킬레우스에게 자식을 잃은 아버지의 슬픔을 호소했고, 프리아모스의 호소는 아킬레우스에게 파트로클로스를 잃은 슬픔을 생각나게 만들었다. 서로의 슬픔에 그들은 공감했고, 함께 슬퍼하고 통곡했다. 한 사람은 헥토르를 위해, 다른 사람은 파트로클로스를 위해. 결국 아킬레우스는 프리아모스의 요청을 받아들이고 헥토르의 시신은 트로이아로 돌아가게 된다. 이렇게 <일리아스> 서사시는 헥토르의 장례식과 함께 끝이 난다.




<일리아스>가 남긴 질문들

<일리아스>는 4일간의 전투로 10년간의 전투를 정리해주는 그 완벽한 구조와 아킬레우스라는 영웅을 통해 인간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던지고 있다. 하지만 <일리아스>를 읽다보면 현재의 관점으로 이해가지 않는 부분들이 꽤 많이 나타난다. 목숨을 걸고 싸우는 전투에서 단지 전리품을 빼앗겼다는 이유만으로 전투에 참가하지 않는다니? 또한 아킬레우스는 자신이 빼앗겼던 전리품보다 휠씬 많은 보물들을 제시하면서 화해의 손짓을 내미는 아가멤논의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무엇때문일까? 

또 한 가지. 죽음에 대한 헥토르와 아킬레우스의 태도이다. 헥토르는 분명 아킬레우스와의 싸움을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다음 기회를 기다리지 않고 아킬레우스와 정면 대결을 펼쳤다. 이제까지의 전투를 보면 누가 봐도 아킬레우스가 이길 것이 뻔한 상황이었다. 헥토르는 왜 나중을 도모하지 않고 죽음으로 나아간 것일까? 아킬레우스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 역시 자신이 헥토르를 죽이게 되면 트로이아 전쟁에서 죽게 될 것이라는 것을 어머니 테티스, 자신의 명마인 크산토스의 입을 통해서 익히 알고 있었다. 헥토르와 아킬레우스의 선택은 도대체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전리품의 의미와 헥토르, 아킬레우스가 보여준 운명(죽음)에 대한 선택은 현재의 논리로 보면 아주 어리석어 보인다. <일리아스>에 나타난 인간들은 실리적인 이익에 매여있지 않은 것 같다. 또한 죽음을 향해 돌진해 나가는 듯한 어리석은 모습을 보여준다. 정말 호메로스 시대의 인간들은 자신의 이익을 계산하지 못할 정도로 어리석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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