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철학/푸코

[주권없는학교] 주체의 해석학 - 1

by 홍차영차 2013. 10. 1.

 

 

좌충우돌 푸코 읽기! -한번도 되어보지 못한 나 되어보기

 

푸코가 이런(?) 사람인지 몰랐다. 이 책을 읽기 전에 내가 알고 있던 바는 <광기의 역사>, <성의 역사>, <감시와 처벌>라는 특이한(?) 주제로 책을 쓴 사람 정도였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철학자*라기보다는 정신분석학자라는 생각을 더 많이 하고 있었다. [주권없는학교]의 세미나에서 읽는 책으로 지정되어 있어서 그저 읽기 시작하였는데, 몇 개의 강의를 읽으면서 왜 이 책은 한 번에 읽지 않고 여러번 나누어서 세미나를 진행하는지 알게 되었다. 빈약한 사전 작업 덕분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제목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주체라는 말 자체도 추상적으로 느껴지는데, 첫 강의에서 푸코가 이야기하는 책의 주제가 주체와 진실과의 관계라니. 진실은 또 뭐란 말인가 역시 너무나 추상적으로 느껴졌다. 무작정 읽어가려니 의미 파악도 되지 않을 것 같고 한 문장 한 문장을 읽는 것도 고되게 느껴져서, 사전 작업을 좀 더 강화해 보기로 했다. 멀리 갈 것 없이 책 끝부분에 포함되어 있는 강의 상황’(프레데릭 그로)‘07.5월에 쓰여진 그린비 편집장(이재원)의 리뷰를 찾아 읽어 보았는데, 짧은 내용이지만 이 책을 독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나처럼 푸코의 글을 처음 읽는 분들은-실제 출간된 책이라면 좀 더 이해하기가 용이할 것으로 생각되지만-‘주체의 해석학처럼 사후에 그의 강의를 출간한 책들을 읽을 경우는 더욱이나 세밀한 사전 작업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푸코는 서구의 근대적 주체가 형성된 메커니즘 분석을 시도하고 있다. 그는 현재의 주체가 자기인식이라는 개념에 예속되어 불안정한 상태에 있는 것으로 보았다. 푸코는 이와 같이 규율, 시장원리 등의 통치 원리에 순종하는 자기 통제의 주체가 되는 것을 원한 것이 아니라, 그런 통치 원리에 의거하지 않고 자기에 의한 자기를 구축하는, 현재 존재방식을 거부하는 새로운 주체를 그리고 있다. 그래서, 그는 자기가 자기와 맺는 관계의 형식을 그 자체로 분석하기 위해서 고대 그리스를 재독서 하였고, 여기서 새로운 주체 형성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개념으로 자기 배려를 가져오게 된다. 웬 뜬금없는 자기배려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푸코는 소크라테스, 플라톤, 세네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와 같은 고대 그리스, 로마시대를 면밀하게 재독서 하면서 현재 우리가 생각하는 자기 배려와는 전혀 다른 자기 배려의 모습을 보여준다.

 

플라톤의 <알키비아데스>를 통해서 배려해야 할 자기란 무엇이며, ‘배려란 무엇인지 이야기 한다. 푸코가 보기에 자기란 행위 주체로서의 영혼이며, 배려란 자기 수련, 자기 점검, 타인의 시선시선부터 해방, 자기 존중의 모든 행동 양식들을 체화하기 위해 자기 자신을 목적으로 자기로의 전향/회귀하기 위해 자기 자신을 변형하는 것이다. 실천적 측면에서의 자기 수련이 핵심적 요소로 나타난다.

 

결국 푸코가 주체의 해석학을 통해서 이야기 하려는 것은 자기 배려개념을 통해 현재 주체의 모습이 유일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기 배려는 새로운 주체 형성의 방법 중 우리가 숙고할만한 하나의 예일 뿐이지 정답이 될 수는 없다. 우리들 각자는 지금 형성되어 있는 개인의 유형에 예속되지 않고, 자기를 하나의 예술작품-정해지지 않은 유일무이한 것-으로 만들 수 있도록 새로운 형태의 주체화에 도전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런 모습을 위해 우리는 부단히 자기 삶의 새로운 형태를 모색하고 변경하는 과정을 지속해야 할 것이다. 두려워하지 말자! 다른 사람과 똑같은 길을 걸을 필요는 없다. 다른 생각을 가지고 나만의 길을 만들어 가는 것, 자신의 삶을 유일하고 독특한 예술 작품으로 만들어 가는 것, 한번도 되어보지 못한 나 되어보기! 흥미진진하지 않은가?

 

 

2013. 10. 01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