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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푸코

가장 개인적인 것이 사회적인 것이다

by 홍차영차 2020. 5. 12.

가장 개인적인 것이 사회적인 것이다

: <성의 역사 3권: 자기 배려>




각자의 독특성을 인정하는 세상이 가능할까. 이는 독특성을 지닌 개인에게는 물론 사회에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독특성의 인정이라는 말은 살짝만 비틀어져도 부도덕한 행위, 비상식적 태도는 물론이고 음란하고 변태적인 모습으로 보여지기도 하며, 또한 사회가 용납할 수 없는 광기의 모습으로 표출될 때도 있기 때문이다.



  




알튀세르의 광기와 푸코의 광기

1980년 알튀세르는 자신의 사랑하는 아내를 죽였다. 그것도 자신의 손으로. 이후 그는 정신병을 진단받았고 몇년 동안 아무것도 생산하지 못했다. (사실 더 놀라운 사실은 말년에 다시 글을 써냈다는 점이다.) 지성적인 면모와 ‘다시 자본을 읽자’라고 말하면서 마르크스주의를 새롭게 만들었던 통찰력을 보여준 알튀세르에게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었을까?

많은 사람들은 알튀세르(의 광기)와 푸코(의 광기)를 교차하면서 독특성(광기)에 대한 사회성으로의 용해성을 이야기한다. 어떻게 개인적인 것이 사회적인 것이 될 수 있을까? 너무나 개인적이어서 함부로 말하기 꺼려지는 모습들이 어떻게 사회적인 보편성을 띨 수 있을까?

알튀세르는 광기에 무너졌다고, 푸코는 이러한 광기를 ‘미학’으로 승화시켰다고 말해진다. 동성애자 푸코라는 면모를 너무 부각해서도 안되지만, 그의 지성의 실천에서 이 면모를 빼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푸코는 평생 자신의 이런 모습과 사회를 겹쳐보면서 삶의 방식을 만들려고 노력했음에 틀림없다. 여러가지 말들로 푸코를 묘사할 수 있지만 초기의 <광기의 역사>, <감시와 처벌>에서부터 마지막의 <성의 역사>까지 모든 것은 권력인가 주체인가의 문제보다 더 밑에 있는 가장 개인적인 문제를 사회 속에서 살펴보려는 시도라고 생각된다.

푸코가 <성의 역사 1권: 지식에의 의지>를 쓴 것이 1976년이었다. 그리고 8년간의 공백을 거쳐서 1984년에 갑자기 <성의 역사 2권:쾌락의 활용>과 <성의 역사 3권: 자기 배려>를 출간했다. 하지만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이 바로 1982년 콜레주 드 프랑스의 강의인 ‘주체의 해석학’이다.

동성애적인 모습에 대한 고민이 이때 생겨난 것은 아니지만 분명 1982년의 강의를 통해서 푸코는 자신에게 가장 개인적인 문제를 해결할 어떤 실마리를 찾아냈다. 자기 자신을 하나의 미학적 작품으로서 드러내면서 살아가는 삶으로서의 자기 배려! 푸코가 말했듯이 이는 자신의 단순한 상상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고대 그리스 - 로마 제적 - 중세를 거쳐 20세기까지 넘어오는 오랜 사회적 전통 속에 있었(음을 발견해 냈)다.



성의 역사는 성(만)의 역사가 아니(었)다

알튀세르와 다르게 그는 자신의 문제를 자신에게만 묶어두지 않고, 사회적인 문제로 바라보면서 자신과 세계를 이어줄 수 있는 실마리를 마련하려고 온생을 바쳤다. (알튀세르가 부인의 죽음 이후에 자살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쾌락의 활용>, <자기 배려>에서는  ‘주체의 해석학’ 이후의 논의 혹은 실천 방법을 찾아내기 어려웠던 것 같다. 분명 이 두 권의 책은 ‘성의 역사’를 말하고 있지만 점점 푸코가 논의하는 것은 자신이 결론지었듯이 단순한 ‘성의 역사’가 아니라 ‘자기 배려’의 역사의 한 부분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아직 읽어보지 못했지만) 이런 이유 때문에 4권에서 앞선 논의들에 대한 부정을 언급하게 되었던 것 같다. (4권을 읽어봐야 할 이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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