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학] 16세기 문화혁명 by 야마모토 요시타카 (동아시아)
근대 과학은 왜 유럽에서 시작되었는가라는 근본적 문제제기에서 시작된 이 책은, 유럽의 과학발전이 어떻게 이루어졌는가를 단순히 연대기적으로 정리한 문화역사 책 중에 하나라기보다는 르네상스 시기와 갈릴레오, 케플러, 뉴턴으로 대표되는 17세기 과학 혁명을 이어주는 16세기를 새로운 관점으로 볼 수 있도록 방대한 자료들을 객관적인 증거들로 탈바꿈시켜서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은 16세기에만 집중해서 세밀하게 묘사하지는 않는다. 다양한 학문 분야를 소개하면서, 저 멀리 그리스 철학부터 시작해서 17세기 과학혁명 시대까지를 포함하여 16세기 문화상을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 저자가 16세기에 주목한 이유는 다른 시대와 달리 그 시기는 학자들이 아닌, 직인 기술자, 예술가, 상인들에 의해서 기술이 과학을 이끌었던 시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직인들과 상인들은 15세기 중엽에 발명된 인쇄술과 속어 사용이 점차적으로 일반화되면서 자연스럽게 학문을 주도할 수 있게 되었다.
저자가 정리해 놓은 내용은 단순히 과학, 기술 분야에만 머무르지 않고 의학, 해부학, 식물학, 광산업, 야금술, 수학, 기계학, 천문학, 언어 등 시대 전체의 문화를 대변한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의 막대한 양의 자료들을 다루고 있다. 책을 읽다 보면 일본에서 자란 일본인으로서 어떻게 유럽 문화를 이런 엄청난 작업을 할 수 있었을까 존경심이 들기도 하는데, 그의 경험을 보면 조금은 이해가 되기도 한다. 도쿄대 물리학과를 졸업하면서 차세대 노벨상 수상 후보라는 찬사를 듣기도 했지만, 1960년대 일본의 가장 격렬했던 학생운동을 겪게 되었고 이후로는 대학이 아닌 재야에서 외로운 학문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리고, 이 책을 내기 전에 쓴 ‘자력과 중력의 발견’(한국어판, 과학의 탄생)은 20년간의 노력 끝에 세계적 수준의 책을 낼 수 있었고, 이러한 꾸준한 연구와 이런 성과는 아마도 재야에서 행해졌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우리나라와 동일한 관점으로 비교할 수는 없겠으나,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 나라 역사에 다시 한번 아쉬움이 남는 것은 인쇄술로 인한 파급 효과이다. 우리나라는 세계 최초 금속활자 발명이라는 크나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지만 ‘책벌레들 조선을 만들다’의 저자가 언급했던 것처럼 최초 발명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발명으로 우리는 무엇을 추구했는가 하는 점이다. ‘16세기 문화혁명’ 전체를 보면 의학, 수학, 천문학, 언어 등 거의 모든 분야의 발전의 가장 핵심 되는 요소로 거론되는 것이 바로 인쇄술의 역할이었다. 우리나라와 달리 인쇄의 주체가 민간인의 손에 맡겨졌기 때문에 당시 지배언어였던 라틴어 서적은 당연하게 다수 출판되었으며, 게다가 상업적으로 많은 독자를 가질 수 있는 각 나라의 속어(프랑스, 독일어, 영어, 네덜란드어, 이탈리아어)로의 출판이 시대에 맞추어 점점 가속되었던 것이다.
* 세계최초 금속활자 인쇄본 : 직지심경요체 (1377년), 쿠텐 베르크의 성서(1455년)
언어 부분만 간단히 살펴보면, 라틴어에서 분기된 각 나라의 속어들이 다양한 지역 방언에서 하나의 통일된 속어(모국어)로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인쇄된 책은 결정적인 요소가 되었다. 인쇄업자 입장에서는 가장 많이 팔릴 수 있는 방언(언어)으로 출판하는 것이 당연했고, 자연스럽게 다수 출판된 언어는 다양한 방언의 통합 과정에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인쇄술 자체가 학문발전 뿐만 아니라 모국어의 형성에도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니 당연하다고 생각되면서도 참 놀랍게 여겨지지 않는가?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우리의 인쇄술이 국가가 아닌 민간인의 손에 넘겨졌다면 학문의 발전을 비롯하여 정치, 경제, 사회의 많은 것들이 바뀌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책이 두껍다 보니 한 가지만 더 언급하고자 하는데, 학문에 있어서 정신과 기술의 균형 문제이다. 유럽도 동양과 마찬가지로 몸으로 하는 일은 무시하는 경향이 많았고 정신적인 부분에 더 많은 가치를 두었다. 다시 말해, 노력자(勞力者)보다는 노심자(勞心者)를, 방법론 보다는 존재론에 더 큰 의미를 두고 당시의 삶을 살아왔다.
16세기만 해도 당시 지식인들은 법학, 신학만을 학문 중의 학문이라고 생각하였으며, 의학 역시 이러한 학문의 반열에 들기 위해서 실험이나 경험보다는 신학, 법학에서 사용하는 진리개념이나 교수방법을 적용하려고 하였다. 이러한 배경 가운데 현대인의 관점으로 보면 말이 되지 않겠지만, 의학에서조차도 의사는 손을 사용하여 직접 수술하는 것은 천시하여 모든 수술은 당시 의사라고 여겨지지 않던 외과의사와 이발외과의에 맡겨졌으며, 실제적인 해부 같은 것은 감히 상상도 하지 않았다. 즉, 실험을 통한 경험보다는 고대 히포크라테스나 갈레노스의 문서에 더 큰 의미를 두고 있었다. 법을 다루고 영혼을 다루는 데에도 자유학예(교양) 부분을 기본으로 공부하고 이후 전문분야인 법학을 생각했던 것처럼, 어찌 보면 생명을 다루는 의학에 있어서도 보이는 부분보다 보이지 않는 부분을 앞서서 집중한 것이 조금은 이해가 되기도 한다.
당시에 일반적인 교양 학문들을 중요시하고 기술보다는 정신문화에 집중하는 모습이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으나, 이제는 과도하게 기술 중심으로 치우쳐 과학을 신앙으로 받들면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보면 이제는 다시 본질에 대한 질문으로 돌아갈 때가 된 것 같다. 무엇이 더 중요하다기 보다 21세기는 정신과 기술의 균형을 맞추어야 할 때인 것 같다.
이 한 권의 책으로 유럽의 모든 것을 알게 되었다고 말할 수 없지만, 이 책은 유럽의 역사 특히, 과학사의 첫발을 떼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안성 맞춤이라고 생각된다. 800페이지가 넘는 이런 책을 읽어나가는 것이 쉽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 하지만, 내가 그랬던 것처럼 관심 있는 친구들과 함께 읽고 토론해가면서 읽어간다면, 나와는 다른 사람들(타자)은 통해서 자신은 생각지도 못했던 새로운 시각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또한, 책을 함께 읽는 즐거움과 힘을 경험하게 될 것을 확신한다.
2013. 08.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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