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 by 프란츠 카프카 (문학동네)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은 묘한 책이다.
그의 책에서는 일반적인 현실을 벗어난 어떤 특이한 모습이 하나도 나타나지 않는다. 단지 그레고르 잠자가 잠에서 깨어났을 때 그가 갑충과 비슷한 벌레의 모습으로 변했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상상이나 비유가 아닌 진짜 단단한 등껍질을 가지고 무수히 많아 보이는 다리를 가진 벌레로 변해버린 그를 누가 감당할 수 있을까? 그가 아끼고, 가족 중에서 유일하게 대화가 가능했던 여동생도 결국은 계속되는 ‘현실’적 압박을 피해갈 수 없었다. 그는 이제 가족들에게도 그렇게 변해버린 ‘짐’과 같은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상상이 가는가? 벌레로 변해버린 나. 하지만, ‘변신’에 나타난 상황적인 묘사나 분위기는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나에게 그리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분명히 열심히 일하고 성실한 모습으로 지내왔지만, 계속해서 자신의 능력을 의심하고 한 번의 실수도 참아주지 못하는 사회. 다른 사람들과 조금 다른 꿈과 기준을 보여주었을 때는 그 가족이라도 빨리 그의 정신을 ‘고쳐’야 한다는 생각으로 전혀 소통할 수 없게 된 우리들의 현실. 아마 그들에게는 이런 모습이 벌레와 같이 보일지도 모르겠다.
벌레로 변해버린 초기에 그레고르는 대화를 통해서 충분히 소통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자신의 외적인 모습이 변했더라도 말이다. 하지만, 가족을 포함해 누구도 그가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으며, 점차 그는 자신의 말을 잃어버렸고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 그리고, 그의 가족들은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아니 가족의 ‘짐’이 되었던 ‘벌레’가 죽어버린 후에야 안심하고 가족의 새로운 미래를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분명히 우리의 세상 속에는 이렇게 우리와 혹은 나와 다른 소통 방식을 가진 사람이 있는 것이 당연할 텐데, 가족과 사회 속 누구도 이를 인정하려 하지 않는 것 같다. 정도와 기준을 벗어난 것은 차라리 죽음으로 덮어버리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을 가진 듯이 말이다.
‘변신’은 나에게 두 가지 의미로 다가온다. 많은 사람들이 억압된 현실 속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벌레와 같이 변하게 되어, 그저 주어진 일을 하고 이런 현실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과 한 가지 목표만을 우리에게 강요하고 있는 현실을 인식했을 때에도 그러한 현실을 변혁하고 바꾸어나갈 수 있도록 변하지 못하는 무능력의 모습.
그래도 희망은 버리지 말자. 이러한 현실의 모습을 발견하고 우리에게 남겨진 카프카의 ‘변신’이 또한 우리에게 새로운 현실에 대한 변용의 능력을 갖게 하는 모티브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2013. 08.06
'북스토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17세기자연학] 물리학이란 무엇인가 (0) | 2013.08.31 |
---|---|
[17세기자연학] 16세기 문화혁명 by 야마모토 요시타카 (동아시아) (0) | 2013.08.17 |
[17세기자연학] 코페르니쿠스의 연구실 (0) | 2013.07.23 |
[17세기자연학] 새 물리학의 태동 by 버나드 코헨 (한승) (0) | 2013.07.17 |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by 조세희 (이성과 힘) (0) | 2013.07.09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