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하소서, 여신이여!"
낭독 첫 구절부터, 호메로스의 <일리아스>가 구술문화라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 호메로스가 지었다고 했지만 호메로스는 구전으로 전승되던 이야기를 엮어냈을 뿐이다. 트로이아 전쟁 이야기를 이런 방식으로 노래했던 것은 호메로스가 맞지만 이 노래를 들려주는 것은 호메로스가 아니라 '무사 여신'이다. 한 마디로 호메로스는 '무사 여신'이 자신에게 들려준 이야기를 노래했을 뿐이다.
그래도 결국 호메로스가 저자라는것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호메로스는 저자가 아니다. 그리고 구술문화에서 작품의 창작자라는 위치는 없다. 집단으로부터 분리된 개인이 없는데 어떻게 (개인)작가가 존재할 수 있겠는가. <오뒷세이아>의 첫 구절 역시 "들려주소서, 무사 여신이여!"로 시작한다는 걸 떠올려보면 좀 더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다. <오뒷세이아>에서는 조금 더 노골적으로 무사 여신에게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호메로스 시대와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호메로스의 신화를 이은 베르길리우스(기원전 70년)의 <아이네이스> 첫 구절을 보면 구술문화와 문자문화 사이의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난다.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는 여신에게 노래해달라고 기도하지 않고, '내가 노래하노라'라고 선언한다. 이야기를 하는 것은 더 이상 신이 아니라 개인이다. <아이네이스>는 구전으로 내려온 걸 적은 것이 아니라 로마의 정통성을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신화를 이용하여 베르길리우스가 구성한 것이다. 기원전 70년 정도이지만 이 때쯤이면 문자문화가 어느정도 확산되었고 집단의식에서 벗어난 개인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당연히 이제 이야기를 구성하고 아름답게 노래하는 것은 개인 - 베르길리우스의 역량이다.
노래하소서, 여신이여! 펠레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의 분노를.
아카이오이족에게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고통을 안겨주었으며
숱한 영웅들의 굳센 혼백을 하데스에게 보내고
그들 자신은 개들과 온갖 새들의 먹이가 되게 한 그 잔혹한 분노를!
인간들의 왕인 아트레우스의 아들과
고귀한 아킬레우스가 처음에 서로 다투고 갈라선 그날부터
이렇듯 제우스의 뜻은 이루어졌도다. (호메로스/천병희 <일리아스> 숲 1권 1~7행)
들려주소서, 무사 여신이여! 트로이아의 신성한 도시를 파괴한 뒤
많이도 떠돌아다녔던 임기응변에 능한 그 사람의 이야기를 (호메로스 <오뒷세이아> 1권 1~2행)
무기들과 한 전사를 나는 노래하노라. 그는 운명에 의해 트로이야의
해변에서 망명하여 처음으로 이탈리아와 라비니움의 해안에 닿았으나,
육지에서나 바다에서나 하늘의 신들의 뜻에 따라 숱한 시달림을 당했으니
잔혼한 유노가 노여움을 풀지 않았기 때문이다. (베르길리우스 <아이네이스> 1권1~4행)
반복해서 올려놓는 표인데, 아래의 문자와 정신공간을 보자. 서구유럽에서 문자의 발명은 보통 기원전 800전후라고 보고 이때 호메로스의 이야기가 최초로 문자화되었다고 본다. 그렇다면 호메로스의 이야기들은 구전으로 내려온 이야기들이고, 문자가 없었기 때문에 자신에게 떠오른 독특한 이야기들이나 개인이 내면에서 고뇌하는 것들은 모두 신들과의 이야기 혹은 신화적으로 표현되었다. 바로 이런 특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일리아스>다.

<일리아스>를 보면 1권의 아킬레우스가 아가멤논을 죽이려고 할 때, 아테나 여신이 등장한다. 신기한 것은 아테나 여신은 아킬레우스에게만 보인다는 점이다. 현대적 관점에서 보면 아킬레우스는 그냥 속으로 고뇌했던 것이다. "죽일 것인가 말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하지만 구전시대에 개인의 생각이란 것은 없기 때문에 아테나 여신이 내려와서 아킬레우스와 대화한 것으로 표현된다.(1권 188~222행)
또한 역병과 내분(아가멤논과 아킬레우스의 싸움)으로 낙담해 있던 그리스인들을 마음을 고양시키는 오뒷세우스 역시 "눈의 여신 아테나"가 오뒷세우스에게 임했기 때문이라고 나온다.(2권 166~187행) 이뿐만 아니다. 트로이아쪽에서 전투를 파리스가 전투를 하게 될 때 신의 전령인 이리스가 여기 저기를 다니며 개인의 속마음을 표현한다. (3권 121행 이하)
<일리아스>가 시라는 형식이기 때문에 읽기 어렵다고 했는데, 역설적으로 신화적 사고를 표현하기에 시적 형식만큼 좋은 것은 없다. 아니 시적 형식이 아니라면 어떻게 집단적의식으로서 신과 신화가 말하는 것을 표현할 수 있을까.
<일리아스>를 읽으면서 신화, 신들의 이야기가 어떻게 펼쳐지는지 보면서 구술문화의 사고방식/삶의 방식이 지금과 어떻게 차이나는지 살펴보면 좋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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