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관찰을 통해 꿈의 몇 가지 특성들을 알게 되었다. ...... 이렇게 해서 우리는 꿈이 철저히 자기 중심적이라는 것과 꿈의 현장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행하는 주인공이 항상 꿈꾸는 자 바로 그 자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우리는 이제 이런 사실을 수면 상태의 나르시시즘이란 말로 쉽게 설명할 수 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의 근본개념> '꿈-이론과 초심리학' 221쪽)

꿈-이론에 대한 문장을 읽다가 영화 <인셉션>이 떠올랐다. 특히 주인공 코브(디카프리오)가 새로운 꿈-설계자 아리아드네를 만나서 꿈을 보여주는 장면이 겹쳐졌다. (꿈-설계자 이름이 미로에서 테세우스를 구해준 아리아드네라는 것도 넘 멋지지 않은가.) 프로이트가 말한대로 "꿈은 철저히 자기 중심적"이기에 그 꿈의 주인공은 자신이다. 꿈에서는 자기 마음대로 공간을 휘어버리면서 도시를 접을 수도 있고, 팝콘 터지듯이 건물들을 터트릴 수도 있다. "수면 상태의 나르시시즘"이란 말이 딱 어울리는 장면이다. 물론 누구나 코브처럼 꿈을 다룰 수 있는 것은 아닐것이다. 마치 누구나 공중 3바퀴 돌기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닌 것처럼. (수련하면 가능할까?) 이번 주말에 프로이트 꿈-이론의 관점으로 <인셉션>을 다시 한번 보고싶다.
'꿈-이론과 초심리학(metapsychology)'이란 논문 제목만 보면 아주 따분할 것 같지만 그 내용은 아주 재미나다. 뿐만 아니라 일상의 삶에서 누구나 경험하는 '잠과 꿈'에 대한 아주 흥미로운 주장들이 펼쳐져 있다.
사실 꿈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1900년에 쓰여진 <꿈의 해석>에서 충분히 전개되었다. <꿈의 해석>만 보더라도 꿈이 왜 형성되는지 알 수 있다. 압축과 전위라는 꿈-작업의 원리, 무의식의 형성물로서 꿈 그리고 꿈이 수면을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소원충족을 통해서 잠을 잘 자게 한다는 것까지. 그렇다면 프로이트는 왜 <꿈의 해석>을 쓴지 17년이나 지나서 다시 '꿈-이론'에 대한 논문을 써야만 했을까. <꿈의 해석>을 쓴 이후 무의식에 대한 논의가 깊어지고 세밀해졌기 때문이다. 나르시시즘과 리비도의 관점을 도입하면서 '수면과 꿈'을 정신분석학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 논의에서도 앞선 논문에서 나왔던 (본능)충동(Trieb)과 억압을 빼 놓을 수 없다.
<꿈의 해석>에서도 그랬지만 프로이트의 위대성은 바로 그의 이야기가 아주 설득력이 높다는 점이다. 직접적으로 말한다면, 그의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고 매력적이라는 뜻이다. 꿈을 꾸지 않는 사람도 없고 잠을 자지 않는 사람도 없다. 누구나 경험하는 일인데 바로 이 일상적 경험에서 프로이트는 마치 능력있는 고고학자처럼 정신분석학적, 무의식적 흔적을 발견해낸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덧붙여 생각하자면, 사람들은 잠을 잘 때 옷을 벗는 행위와 비슷하게 자신의 정신을 벗어 자신들이 정신적으로 획득한 것의 대부분을 한쪽에 치워 둔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두 경우 모두에 있어서 사람들은 그들이 삶을 처음 시작했을 때의 상황과 아주 흡사한 상황에 들어서는 셈이 된다. 신체적인 측면에서 보면 잠은 평온함과 따뜻한 온기를 느끼고 자극이 없는 상태를 누리는 자궁 내의 거주를 재개하는 것과 다름 없다. (<정신분석학의 근본개념> '꿈-이론과 초심리학' 219~220쪽)
사실 이 문장들만으로도 수면과 잠에 대한 많은 비밀이 풀린다.
잠을 자려고 하면서 갑갑한 옷을 벗지 않고 자는 사람이 있을까? 당연하게 우리는 잠을 자기 전에 바깥에서 입던 옷을 벗고 편안하게 활동할 수 있는 옷으로 갈아입니다. 신체적으로 편안하게 자기 위한 당연한 방법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정신적으로도 편안하게 자기 위해서 벗어야 하는 정신이 있을 것이다. 너무나 당연하고 쉬운 추론이다. 여기서 벗어야 하는 정신은 바로 의식이 행하고 있는 억압의 강도를 낮추는 작업일 것이다. 조금 과장해서 말해보자면 아무것도 입지 않고 자는 것이 편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집으로 돌아와서는 의식적인 어떤 검열이나 억압들을 다 벗어 던지도 마구잡이로 충동이 원하는대로 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위의 문장들을 좀 더 깊게 살펴보면 후기에 프로이트가 죽음충동을 주장한 씨앗도 발견할 수 있다. 우리들도 '잠은 일종의 죽음'이라고 말하는데, '평온하고 자극이 없는 상태인 잠(죽음)'으로 돌아가려는 반복이 바로 삶이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신 신경증의 상태를 연구하다 보면, 우리는 각각의 경우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시간적 퇴행'의 예를 강조하게 된다. ...... 하나는 자아의 발달에 영향을 미치는 퇴행이고, 다른 하나는 리비도의 발달에 영향을 미치는 퇴행이다. 그런데 수면의 상태로 들어서게 되면 리비도 발달에 영향을 미치는 퇴행은 원초적인 나르시시즘의 상태를 다시 회복하려는 선까지 이르게 되고, 자아 발달에 영향을 미치는 퇴행은 환각 상태에서 소원을 충족시키는 단계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되는 것이다. (<정신분석학의 근본개념> '꿈-이론과 초심리학' 220쪽)
여기에서 프로이트는 정신 신경증 상태에서 '퇴행'이 일어난다고 말한다. (현대인들은 모두 대부분 신경증 환자라고 봐야 한다.) 즉 태어나는 순간부터 다시 '원초적인 나르시시즘'으로 퇴행하려고 하고, 자아 역시 유아 시절처럼 '환각 상태에서 소원 충족하려는 단계까지 퇴행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인간이란 태어나서 죽는 그 순간까지 계속해서 일종의 죽음 충동을 겪으면서 살아간다고 말해도 되지 않을까.
사실 이 논문에서 다루는 중요한 점은 잠과 꿈을 나르시시즘과 리비도 관점에서 해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제일 위에 인용한 부분을 보면 프로이트는 아주 당연하다는 듯 꿈을 "수면 상태의 나르시시즘"이라고 말한다. '나르시시즘 서론'을 보면 인간은 태어나서 어느 순간까지 자기 자신에게만 집중한다. 자기 몸을 만지면서 쾌락을 얻고 기쁨을 얻는다. 외부 세계에 대해서는 아직 잘 모르고 모든 리비도를 자기 자신에게 집중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외부 대상에 리비도를 집중하게 되면서 '원초적 나르시시즘'으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육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잠을 자면서 에너지를 얻어야 한다. 하지만 마치 어린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자궁에 있던 것처럼 '평온하고 따뜻한 온기를 느끼고 자극이 없는 상태'로 잠을 자는 것이 쉽지 않다. 현대인들의 기본 증상이 바로 불면증과 불안이 아니던가. 정말 편안하게 아무런 생각없이 한숨 푹 자는게 평생 소원인 사람도 많다. 수면을 방해하는 어떤 것들이 있다는 증거다. 바로 여기서 꿈이 나온다. 꿈은 이런 수면 방해를 막아내게 하면서 꿈을 꾸면서 계속 잠을 자게 한다는 것!
잠을 방해하는 원인은 아주 단순하다. 첫째 외부적 자극이고 둘째 내부의 자극이다. 물론 너무 시끄럽고 춥고 지독한 냄새처럼 외부적 자극이 문제가 될 때도 있지만 주로 수면을 방해하는 것은 내부의 자극이다. 쉽게 말해서 내부의 충동이 너무 강하면 잠을 자려고 해도 제대로 수면을 취하지 못한다. 요즘엔 뇌파를 통해서 숙면을 취하는가를 검사하는데 더 중요한 것은 자기 내부의 자극, 충동을 제대로 다스릴 수 있는가의 문제다.
리비도 측면에서 보면 "수면상태의 나르시시즘은 ...... 그 모든 표상에서 리비도 집중을 철회"(223)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만약 낮 동안의 어떤 잔재가 일정 이상의 리비도 집중을 유지한다면 잠을 제대로 잘 수 없다. 도식적으로 표현해보면 낮 시간에는 의식과 무의식 사이에 검열이 작동하면서 충동이 마음대로 의식으로 올라오지 못하도록 한다. '무의식에 관하여'에 나온 억압 메커니즘을 생각해보면 이렇게 억압된 표상은 리비도 철회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단순히 리비도 철회를 했다고 하더라도 그 표상이 의식의 표면으로 다시 올라오지 못한다고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필요한 것이 바로 프로이트가 말한 반대집중이다. 억압된 표상의 힘이 크면 똑같은 양만큼의 반대집중이 일어나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의식의 검열을 심하게 하는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피곤하고 지치게 된다. 자신은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 것 같지만 이런 저런 억압을 계속해서 하고 있으면서 반대집중으로 엄청난 에너지를 쓰기 때문이다.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은 이런 검열의 강도가 낮아지는 자신만의 공간을 가지고 있고, 또한 검열을 낮추는 자기만의 기술을 갖고 있다. 집으로 돌아오면 편안한 옷을 입고, 맥주를 한 잔 마시면 낮동안의 의식적 검열의 힘이 낮아지는 사람이 있다. 또 어떤 사람은 시를 한 편 읽으면 되고, 또 다른 사람들은 하루에 5km의 러닝이 필요하다.
간단히 다시 요약해보자. 꿈-형성의 작업은 바로 잠을 자려는 욕구에서 시작된다. 잠을 잔다는 것은 외부 대상에 집중되었던 리비도를 거둬들여서 원초적 나르시시즘 상태를 형성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때 무의식에서 억압된 부분이 수면을 깨고 올라오려고 하게 된다. 당연히 이 억압된 부분의 힘이 너무 크다면 불안해서 잠을 잘 수 없고, 수면을 포기하게 된다. 그렇지 않을 때는 '낮 동안의 잔재'와 소원충동이 꿈-소망을 이루면서 꿈을 꾸게 된다. 푹 잠을 자게 된다.
마지막으로 꿈이라는 것은 "소원 성취의 환상이 형성되면서 그것이 환각으로 퇴행하는 것"이다. 이게 바로 꿈-작업의 본질이다. 꿈-작업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꿈의 해석>이나 <정신분석강의>를 참조하시기를.
추가)
프로이트는 꿈-이론을 펼치면서 현실적인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서 "소원 성취를 위해서 환각(Hallucination)"을 경험한다고 말했는데, 라캉은 현실 자체가 모두 일종의 환상(Fantasma)이라고 말했다는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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