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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 세미나

특강모집) 멍때리기의 철학 - 의식에서 무의식의 철학으로 (8/22~)

by 홍차영차 2025. 7. 16.

 

모집) 멍때리기의 철학 - 의식에서 무의식의 철학으로 (8/22~)

: 철학, 예술, 정신분석의 트라이행글

 

 

 

첫 강의 : 8/22(금), 저녁 7:45 ~

 

 

2016년 가수 크러쉬가 ‘멍 때리기 대회'에 출전해 큰 화제가 되었다. 멍때리기 대회가 2014년에 시작했으니 벌써 10년이 넘게 진행되고 있다. 이제는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멍때리기 대회가 열린다. 그런데 특별한 기술도 능력도 필요 없을 것 같고 돈도 되지 않는 이런 대회는 왜 열렸을까? 많은 사람들이 평생 한순간도 정신적 긴장감을 놓지 못해서일 것이다. 뭔가 정신적인 쉼이 필요할 때 우리는 본능적으로 '멍때리는' 시간을 찾는다. 캠핑에 가서 불멍, 바다나 강을 찾아서 물멍, 등산을 하면서 숲멍에 빠진다.

 

정신적 긴장감은 왜 생길까? 속마음과 다른 의식적이고 이성적인 상태를 유지하려고 애쓰기 때문이다. 문자의 탄생 이후 흘러다니던 생각들을 고정시킬 수 있게 되면서, 겉모습과 다른 속마음을 갖게 되었다. 문자를 갖게 되었다는 것은 좀 더 명료하게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고, 속마음을 가지고 이성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문자화되지 않는 것들, 보이지 않는 것들, 측정되지 않는 잉여,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 것들은 무시되고 배제되고 있다. 문자의 발명과 함께 거짓(사회적 가면)이 삶의 조건으로서 필수가 되었다.

 

문자 이전의 구술성의 문화속에서 우리는 아직 몸의 사유 - 온 몸으로 세계를 감각하고 자신을 표현할 수 있었다. 종교적 성스러움, 자연의 신비, 부족과 개인의 위대함, 삶의 불가해성을 나타내는데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이 시대에는 성스러운 것을 있는 그대로 성스럽게 감각하고 받아들이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비문자적 세계를 비문자적으로 그대로 표현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문자가 발명된 이후 사람들은 모든 것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면서 세계를 속된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이제 보이지 않는 것은 없는 것이고, 측정할 수 없는 것을 무가치한 것이며, 말로 할 수 없는 감정과 무의식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팽배해졌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비문자적인 세계를 감각하면서 신체적으로 해소되지 않는 무의식으로 인해서 정신적인 불안을 겪게 되었고, 비문자적 세계를 보면서 비문자적으로 자신을 표현할 역량과 기술(예술)이 따로 필요하게 되었다. 2025년 현재 철학과 예술, 정신분석학은 이렇게 서로 중첩되어 있다.

 

본래 우리는 몸의 사유를, 예술적 독창성을 장착하고 태어난다. 하지만 너무 오랜 가뭄에 비틀어져버린 나무처럼, 과학적, 이성적, 통계적인 논리에 메말라버렸다. 이제 예술은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할 수 없다. 예술은 생존에 필수적인 일상기술이어야 하고, 정신분석은 자기 이해와 세계 탐구에 기본이 되었다. 지금과 다른 정신공간, 신체적 사고라고 할 수 있는 신화적 정신공간을 탐구하면서 각자에게 어울리는 멍때리기의 기술을 익혀보자.

 

회차별 강의 내용
1강 거짓말의 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 삶의 조건으로서 거짓
망치를 든 철학자 니체는 <즐거운 학문>에서 ‘의식은 일종의 질병’이라는 놀라운 주장을 펼친다. 인간의 가장 큰 특권으로 여겨진 이성과 의식에 대해 니체는 왜 그렇게 비판적인 주장들을 펼쳤을까?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이성적인 정신은 처음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다. 문자의 탄생 이후 자아와 정신공간은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무의식과 의식 관점에서 살펴본다.
주요 논의 : 문자의 발명이 인간 정신에 미친 영향, 의식의 탄생과 그로 인한 내적 갈등, 호메로스-푸코-이반일리치를 통한 정신의 발견, 정신분석과 예술


2강 문자의 발명과 속마음의 발견 - 문자와 정신공간의 변화
문자의 발명과 정신공간은 깊게 연결되어 있다. 문자의 발명과 함께 겉과 다른 속마음이 생겼고, 니체는 인간을 ‘자기 마음의 충동을 있는 그대로 전달할 수 없는 존재’라고 정의하면서 이 딜레마를 명확히 짚었다. 문자적 기술(문자-알파벳-전자문자)이 발전할수록 인간은 더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행동하게 되지만, 동시에 감정이나 무의식적 충동은 억압된다. 문자의 발명이 감정과 의식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심화시켰는지 살펴본다.
주요 논의 : 신화적 정신공간과 데카르트적 정신공간, 구술문화와 문자문화의 차이, 낭독과 묵독, 문자와 의식의 평행론


3강 무의식의 발견과 불안 - 무의식과 의식, 누가 나인가
문자가 없었던 시기에도 정신은 있었다. 문자의 발명과 함께, 어떻게 생생했던 오감의 우주가 시각중심적 세계로 변했는지 알아본다. 스피노자 철학을 중심으로 의식과 무의식의 관계에 대해 알아보고, 문자의 발명이 어떻게 현대인의 불안과 연결되는지 살펴본다. 마지막으로 예술과 신체적 사고를 통한 무의식의 해소 방법을 탐구한다.
주요 논의 : 무의식 활동과 자동기계, 시각중심적 근대 세계, 감각과 피부의 정신, 신경증과 불안의 기원 : 의식과 무의식의 갈등, AI와 정신공간


4강 예술은 나를 구원할 수 있을까 - 근대적 자아와 예술의 탄생
고대에는 삶 속에 예술, 정치, 사회, 문화가 모두 섞여 있었다. 놀랍게도 분리와 해체의 시대이자, 진리, 이성, 주체의 세계라고 불리는 근대 시대에 다양한 예술이 번성했다. 예술은 과학적이고도 이성적인 데카르트의 정신공간 속에서 억압된 무의식적 충동을 해소할 유일한 해방구가 되었기 때문이다. 개인의 정신적 긴장감을 해소하고 공동체 의식을 키우는 데 예술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알아본다.
주요 논의 : 자아의 형성과 예술의 관계, 생존욕구로서 예술, 문학/미술/음악에서의 변화 사례, 예술을 통한 무의식의 해방, 철학-예술-정신분석의 삼각형

◆ 일정 : 2025. 8. 22(금) ~ 9.12(금) (4회)

◆ 요일 : 매주 금요일 저녁 7:45 ~ 10:10

◆ 강사 : 홍차 (홍영택, 인문학실험실-루바토 연구원)

◆ 방식 : 온라인(줌) 특강

. 강의마다 강의원고가 제공됩니다. 프린트해서 보실 수 있습니다.

. 강의 진행 후 2주동안 강의를 다시 보실 수 있습니다.

◆ 정원 : 15명

◆ 회비 : 10만원

(카카오뱅크, 3333-06-0935912, 홍영택)

◆ 문의 : 홍차 (홍영택, 010-2611-5129)

◆ 신청 : 댓글로 신청해주세요. 회비입금이 되어야 신청이 완료됩니다.

인문학실험실-루바토 공부에 처음 참여하시는 분들은 댓글(혹은 문자)에 간단한 자기소개 및 연락처를 남겨주세요.

 

 

참고 서적

. 월터 옹 <구술문화와 문자문화> 문예출판사

. 이반 일리치 <ABC, 민중의 마음이 문자가 되다> 문학동네

. 마셜 맥루한 <구텐베르크 은하계> 커뮤니케이션북스

. 브루노 스넬 <정신의 발견> 그린비

. 애슐리 몬터규 <터칭> 글항아리

. 그레고리 베이트슨 <마음의 생태학> 책세상

. 호메로스 <일리아스>, <오뒷세이아> 숲

.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민음사

. 헤르만 프랭켈 <초기 희랍의 문학과 철학1> 아카넷

. 에릭 A. 해블록 <플라톤 서설> 글항아리

. 질 들뢰즈 <프루스트와 기호들> 민음사

. 이반 일리치 <텍스트의 포도밭> 현암사

. 이반 일리치 <과거의 거울에 비추어> 느린걸음

. 미셸 푸코 <주체의 해석학> 동문선

. 니체 <아침놀>, <즐거운 학문>, <선악의 저편>, <우상의 황혼> 책세상

. 스피노자 <에티카>

. 브루스 핑크 <라캉과 정신의학> 민음사

. 가타오카 이치타케 <라캉은 정신분석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학사

. 구도 겐타 <라캉과 철학자들> 구도 겐타

. 자크 라캉 <세미나 11> 새물결

. 질 들뢰즈/펠릭스 가타리 <천개의 고원> 새물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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